'이태원 참사' 추모곡 뮤비, 이렇게 제작됐습니다

장성준 2024. 3. 9.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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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 해머링의 기타리스트이자 리더 염명섭의 'Panic Room' 뮤비

전국의 인디밴드들과 400여 편의 영상작업을 하였습니다. 그 변두리의 여정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글로 남겨보려고 합니다. <편집자말>

[장성준 기자]

정치 사회적으로 혼란한 시대에 살고 있음을 느낄 때가 있다. 바로 누군가의 외침이 묻혀버릴 때다.

얼마 전 읽은 이태원 유족들의 시위 현장 소식은 2년 전의 아픔과 고통, 가시지 않은 슬픔을 다시금 되뇌이게 하였다. 이 감정을 느끼는 것은 벌써 두 번째이다. 처음은 작년 이태원 참사 1주기가 다가오는 초가을이었다. 한 음악가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Panic Room' 뮤비를 제작하지 않기로 하다
 
▲ [M/V] Hammering(해머링) -Black Sea ⓒ 해머링

"감독님, 그 뮤직비디오는 만들지 않겠습니다."

염명섭. 밴드 해머링의 기타리스트이며 리더다. 인천과 홍대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메탈이라는 장르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아티스트 중의 한 명이다. 밴드활동 외에 기부 등의 사회활동을 하고 있으며, 신인 뮤지션의 육성과 자체레이블인 노머시컴퍼니를 통해 음반발매 및 공연과 경연대회를 유치하고 있다.

2023년 솔로앨범인 염력(Yeom Power, 본인의 성인 염-Yeom을 이용한 언어유희)을 발매할 때, 타이틀곡의 뮤직비디오를 만들며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당시 작업하기로 계약한 것은 두 곡이었다. 한 곡은 그간 해 오던 장르인 메탈의 대중화를 도모한 '염라대왕'이라는 사회풍자곡. 그리고 또 한 곡은 앨범을 준비하던 시기에 벌어진 이태원 참사 사건의 추모곡 'Panic Room'이었다.

사실 추모곡을 만든다고 했을 때에 주변에서 만류를 했다고 한다. 그 이전에 세월호 참사를 한탄하며 만든 곡인 'Black Sea'로 홍역을 앓았기 때문이다. 정치적인 노래라며 많은 구설수에 올랐기에 같은 일이 반복될까봐 걱정이 앞섰던 것이다.   
 
어둠 속 깊은 곳에 갇혀버린 그들
절망 속에 별이 되어버린 그 수많은 아이들
진실마저 침몰했다. 침묵은 더 이상 없다
분노는 파도처럼 일어나, 어둠을 걷어낸다 
 - Black Sea 

하지만 가까이에서 이태원 참사를 접한 당사자이기에 주변인들 이해 속에 곡은 완성됐고, 대신 모(母)밴드인 해머링이 아닌 개인 앨범에 수록하기로 했다.

전부 6곡이 수록된 앨범에는 많은 동료와 후배 아티스트들과의 작업을 거쳐 메탈을 베이스로 한 다양한 시도가 포함됐다. 게다가 메탈신-아니 인디신 전체에서 드물게 전곡의 영상화를 시도했다. 

팀을 이끌고 많은 행사를 주최하며 홍보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였기에 몇 안 되는 수단 중 영상화는 빠뜨릴 수 없는 것이었다. 많은 디자이너와의 작업으로 앨범발매 전 모든 곡의 영상화가 마무리 됐다. 

단 한곡을 제외하고. 바로 'Panic Room'이었다. 앨범발매 쇼케이스를 한참 지나서도 감감무소식이던 그로부터 연락이 온 것은 넉달이 지난 후. 하지만 그 내용은 영상의 제작중지 통보와 양해였다.

이유는 충분히 납득할 만했다. 세월호 참사를 다룬 'Black Sea'로도 무언의 압박을 많이 받아 고민이 많았는데, 'Panic Room'으로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가족도 있고, 직장도 있으며, 이제 갓 음악의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 회사를 설립하는 단계까지 온 그이기에 두려움은 더 컸으리라.

본래라면 나는 여기에서 더 진행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아쉬움이 남았다.

"일단 만들겠습니다. 그리고 이건 제 개인작업으로 하도록 하지요."

새벽에 장비를 챙겨 이태원으로 향하다
 
▲ [MV] 염력(Yeom Power) - Panic Room ⓒ 노머시컴퍼니

마음을 정하고 나니 작업에 속도를 내야 했다. 가능하다면 이태원 참사 1주기에 맞춰 결과물을 완성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세부적인 콘티는 생략하고 러프한 아이디어스케치와 구성을 노트에 써 내려갔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드론촬영을 신청하는 것이었다. 이태원의 좁은 골목과 넓은 하늘을 연결하는 연출이 필요했다. 당시 통상 1주일에서 2주일까지 걸리는 신청이었지만 서류 제출 후 반려되었다. 비행촬영 금지구역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콘티를 수정하고 지난 쇼케이스때의 자료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누군가 'Panic Room'의 노래가 시작되자 꽃을 무대에 놓았는데, 그 순간이 떠올랐다. 우연히도 내가 촬영중이던 근처라 화면에 담을 수 있었다. 뒤편의 스포트라이트만 남기고 조명이 꺼진 상태에서의 꽃은 그대로 완성된 영상의 오프닝에 사용됐다. 이어 이태원 골목에 조성된 추모공간이 철거된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그대로 새벽에 장비를 챙겨 이태원으로 향했다(내가 살고 있는 곳은 세종시다). 

아픈 마음에 미처 찾지 못했는데 미안한 마음이 컸다. 먼저 촬영한 것은 길건너에서 바라 본 골목길 방면이었다. 선뜻 다가가기에 마음이 무거워졌기 때문이었다. 

골목길 초입에는 언제 철거될지 모르는 보라색 벽이 있었고, 메모가 가득했다. 가능한 천천히 사람들이 남긴 안타까움을 화면에 기록했다. 새벽임에도 사람들은 가던 길을 멈추고 메모를 읽기도 하고 새롭게 글을 남기기도 했다. 골목길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계획해 두었던 부분의 촬영을 마쳤다.

촬영을 마치고 이틀 뒤. 그간의 꽃과 사람들의 마음이 담긴 메모들은 설치물로 바뀌어 있었다. 마음이 복잡했지만 차분히 마무리작업을 했다. 

완성된 결과물을 개인 SNS에 공개하기 전 곡의 저작자인 염명섭씨에게도 발송했다. 그로부터 슬픔만을 다루지 않으려는 것이 느껴진다는 말을 듣고 의도가 왜곡되지 않게 전달되었다는 생각에 안도했다. 그리고 뜻밖에도 이 영상은 염명섭 자신이 만든 레이블(회사)인 노머시컴퍼니의 채널에 등록됐다. 

"주변 눈치 보지 않고 음악을 하려고 컴퍼니를 만들 생각을 했으니까요. 처음 소신대로 밀고 나가려고 합니다."

오히려 나를 걱정해 주며, 그가 남긴 문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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