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에 권력이 개입... 커피 마실 여유가 사라졌다 [커피로 맛보는 역사, 역사로 배우는 커피]
[이길상 기자]
▲ 5.16 이후 다방 모습 |
ⓒ 연합뉴스 |
정확히 반세기 전인 1974년은 우리나라 커피의 역사에서 이런 여러 모습이 동시에 나타나기 시작한 암흑기의 출발 지점이었다. 커피 소비가 급격히 위축되고, 커피 맛은 최악이었으며, 커피라는 음료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은 급격히 쇠퇴하였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커피 암흑기는 여러 요인에 의해 만들어졌다. 우선 국내 정치의 불안이 커피 소비를 위축시켰다. 2년 전 유신헌법으로 영구집권의 바탕을 마련한 박정희는 1974년 1월 8일 유신헌법에 대한 비판이나 논의 자체를 금지하는 '긴급조치 1호'를 새해 선물처럼 선포하였다. 같은 날 긴급조치 2호를 선포하여 비상군법회의를 설치함으로써 정권에 저항하는 민간인의 죄를 군법회의에서 다루도록 하였다.
연두 기자회견에서는 남북 불가침 협정 체결을 제안하였다. 평화라는 가면을 쓰려는 안간힘이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지하철 1호선이 개통되던 이해 8월 15일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대통령 부인 육영수가 문세광에 의해 피살되었다. 사건 이후 온갖 루머가 난무하였다. 자유언론실천이 선언되고,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 출범하고, 민주회복국민회의가 출범하는 등 유신체제에 대한 저항이 본격화되었다. 커피의 주 소비자였던 중산층이 한가하게 커피를 마실 기분이 아니었다.
"커피 한잔 마시기도 어려운 세상"
경제적으로도 암울함이 극에 달했다. 전년도 10월 17일 제4차 중동전쟁의 여파로 아랍의 산유국들이 '오일 무기화'를 선언함으로써 제1차 '오일쇼크'가 시작되었다. 자고 나면 원유가격이 오르고, 이어서 원유 관련 제품 가격이 오르는 악순환이 시작되었다.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원유 수입에 의존하던 신생 산업국들의 경제가 뿌리부터 흔들리는 혼란이었다.
외화 부족 사태가 초래한 국가부도의 위기를 넘기기 위해 정부는 노동이 가능한 사람들을 북아프리카와 중동의 산유국에 건설노동자로 파견하였다. 커피를 마실 경제적 여유가 사라졌다.
1974년은 세계 정치사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사건이 연속적으로 벌어졌다. 당시 5대 강대국의 최고 지도자들이 이해에 모두 사라지거나 권좌에서 내려왔다. 미국의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탄핵 직전에 하야하였고, 서독의 빌리 브란트 총리는 귄터 기욤 사건으로 사임하였다. 브란트 총리의 비서였던 귄터 기욤 부부가 동독의 스파이였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프랑스의 조르주 퐁피두 대통령은 희소 질환인 매크로글로브린혈증으로 갑작스럽게 사망하였다. 일본의 다나카 가쿠에이 총리는 미국의 록히드사로부터 거액의 뇌물을 받은 사건으로 물러났고, 영국의 에드워드 히스 총리는 총선 패배로 퇴임하였다.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기에는 안팎으로 불안함이 큰 시절이었다.
늘 그랬듯이 애꿎은 커피가 희생양으로 등장하였다. 신년 초부터 언론에서는 '도심 다방들 커피값 인상,' '협정료 위반 다방 집중 단속,' '커피값 올리면 조처' 등의 소식이 끊이지 않았다. 전국의 경찰관들이 내핍생활 캠페인을 벌인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각 경찰서 게시판에 '커피를 마시지 말자'라는 구호를 써 붙였다. 신문에서 지적하였듯이 경찰관들이 어느 정도 호응하고 있는지는 의문이었다.
2월 9일 자 <조선일보>는 '탈낭비 시대, 위기 속의 가계를 절약으로 지키자'는 캠페인을 시작하여 정부 정책에 적극 호응하였다. 10회에 걸쳐 게재한 캠페인에서 주적은 커피 등 외래품이었다. 이 신문은 '다방 안가기,' '가더라도 설탕 덜 타 먹기,' '커피 한 잔 덜 먹기' 운동으로 정부의 가계 절약 운동에 동참할 것을 제안하였다. 다수 언론이 정부 정책을 비판하고 저항하고 외면하던 시절이었다.
급기야 보건사회부가 국산 차를 적극 개발함으로써 커피 소비를 줄이기로 하고, 그 방안으로 앞으로는 시중의 다방에서 커피 판매를 금지하고 커피 애호가를 위해 따로 커피하우스를 신설할 것을 검토키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정부가 주관하는 모든 회의에서는 커피 대신 국산 차를 대접하는 방안도 제시되었다. 한국부인회 총본부가 주최한 '소비 절약 아이디어 공모전'에 제출된 참신한 아이디어 중에는 당연히 '커피 대신 생강차나 귤차'로 추운 겨울을 나자는 안도 들어 있었다.
이래저래 커피는 낭비의 주범으로 지적받고, 구박받는 시절이 다가온 것이다. 원유 가격 상승이 불러온 고환율에, 고물가가 지속되었지만 커피 가격 인상은 허용되지 않았다. '삼분의 일 커피'가 유행했다. 가격은 정부 고시 가격인 50원 그대로지만, 커피가 잔에 1/3쯤 담겨 나오는 커피였다. 다방 업자들의 자구책에 소비자들의 불만은 커지고, 커피 향미는 하루하루 작아지고 있었다.
▲ 1974년 7월 4일 자 <조선일보> "국산 커피값과 독점기업" |
ⓒ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
커피 놓고 지시·통보·결의하는 희한한 시대
다방은 커피 마시는 곳이라기보다는 새로 등장한 장거리자동전화(DDD) 이용 장소, 혹은 고교야구나 프로복싱 시청 장소로 변하고 있었다. 1972년 서울·부산 간 자동전화 시스템이 도입된 이후 1973년에는 서울·인천 간, 그리고 1974년에 서울·대구, 서울·안양 간으로 그 범위가 확대되었다.
문제는 1974년부터 도입된 거리·시간에 의한 시외통화 요금 가산 방식이었다. 다방에 설치된 전화로 시내전화를 하는 척하면서 장거리 통화를 하는, 이른바 '위장 전화' 손님이 문제였다.
카운터의 레지에게 전화하는 손님을 감시하도록 시키거나, 아예 다이얼을 지키는 보이를 별도로 두는 업소도 생겼다. 그러면 손님들은 너무 인색하다고 불평을 해대는 바람에 이 또한 쉽지 않은 일이었다. 부산 남포동의 K 다방 주인은 한 달 통화료가 1만 2천 원 수준이었는데 DDD 전화 개통 첫 달에 7만 원이 나왔다고 불평을 털어놓기도 하였다(조선일보, 1974년 6월 14일 자).
1974년 청룡기 고교야구 결승전은 경북고와 경남고의 대결이었다. TV가 있는 다방은 입석 손님까지 받았고, 냉커피 한 잔에 150원을 받아도 불평하는 손님이 없는 진풍경이 연출되었다. 경남고가 9:7로 패하자 부산의 다방에서는 중계를 보던 손님들이 커피잔을 TV에 던지는 사고가 났지만 처벌받지는 않았다. 지역의 경찰들도 근무지를 이탈해 다방 TV 앞에 모여 소리를 지르던 시절이었다. 커피도, 다방도 변질되고 있었다.
전국의 다방 숫자는 1968년에 비해 6년 만에 두 배인 9556개에 달하여 다방 1만 개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커피 소비 억제를 위해 정부는 신규 다방 허가를 최소화하고, 주간 다실·야간 살롱 겸업은 금지시켰다.
이어서 1974년 12월 10일 보건사회부는 '다방 분위기 단속'을 선언하였다. 단속 대상은 다방에 별실 설치, 저속한 음악 혹은 생음악 연주, 착색조명으로 퇴폐적 분위기 자극 등이었다. 사람들은 음악을 저속과 비저속으로 나누는 기준이 무엇인지, 누가 그 기준을 정하는지, 왜 사람의 기호나 취미에 권력이 개입하는지를 묻기 시작하였다.
정부는 이해 12월 18일 커피 가격 자유화를 발표하였고, 전국다방조합연합회는 커피 한 잔 가격을 80원으로 할 것을 결의하였다. 커피 가격을 정부가 정하는 것과 연합회가 정하는 것에 무슨 차이가 있는지 모를 일이었다. 정부는 그런 결정을 취소하고 다방의 자율에 맡길 것을 지시하였다.
기호품인 커피를 놓고 지시와 통보와 결의가 난무하는 희한한 시대였다. 커피 가격이 80원으로 인상된 첫날 다방 손님은 평소의 20%로 감소하였다. 커피에 관한 신문 보도는 50% 이상 감소하였다. 물론 커피 맛은 그보다 더 저급해지기 시작하였다.
(<커피가 묻고 역사가 답하다>의 저자, 교육학 교수)
덧붙이는 글 | 참고문헌 <조선일보> 1974년 기사 일체. <커피세계사 + 한국가배사>(푸른역사,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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