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구의 다 낡은 배낭, 입소문 탔다…日여행 특산품 된 이 가방 [비크닉]
■ b.멘터리
「 브랜드에도 걸음걸이가 있다고 하죠. 이미지와 로고로 구성된 어떤 브랜드가 사람들에게 각인되기까지, 브랜드는 치열하게 ‘자기다움’을 직조합니다. 덕분에 브랜드는 선택하는 것만으로 취향이나 개성을 표현하고, 욕망을 반영하며, 가치관을 담을 수 있는 기호가 됐죠. 비크닉이 오늘날 중요한 소비 기호가 된 브랜드를 탐구합니다. 남다른 브랜드의 흥미로운 디테일을 들여다보고, 그 설레는 여정을 기록합니다.
」
" “포터 오모테산도 매장에 탱커 재고 있나요?” " 최근 일본 여행 정보를 교류하는 온라인 카페에 심심치 않게 올라오는 쇼핑 질문입니다. 역대급 엔저로 일본 여행을 떠나는 이들이 늘면서, 쇼핑 난도가 올라가고 있습니다. 일본의 특산품이 ‘셀린느’가 됐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한국 관광객들 사이 인기 있는 브랜드가 일본 내에서 연일 품귀 현상을 겪고 있어요. 일본 대표 가방 브랜드로 통하는 포터 역시 일본에 가면 꼭 사와야 할 브랜드 중 하나로 꼽히면서 품절 대란을 겪고 있고요. 인기 모델인 탱커 시리즈는 서울은 물론 도쿄 시내 매장 여러 곳에서도 자취를 감추었다고 하네요.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새로운 학기와 계절이 시작되는 3월입니다. 이제는 학생도 아닌데 어쩐지 새 가방에 눈길이 가는 이유가 뭘까요. 눈치채셨겠지만, 오늘은 가방 브랜드 ‘포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손석구의 다 낡은 배낭, ‘남친 룩’의 정석 되다
평소 매고 다닐 튼튼하면서도 멋스러운 가방. 막상 고르려니 쉽지 않습니다. 명품은 부담되고, 그렇다고 너무 저렴한 가격대의 가방은 성에 차지 않으니까요. 중간 가격대의 품질 좋은, 너무 유명하지 않은 브랜드는 없을까?
지난 2022년 11월 배우 손석구가 한 잡지 촬영 현장에서 공개한 가방은 이런 조건에 딱 부합하는 제품이었습니다. 지금까지도 ‘손석구 포터 가방’으로 회자하는 바로 그 배낭이죠. 많은 물건이 담기는 실용적인 디자인이면서도 로고가 드러나지 않아 자연스러운 매력을 발산했던 수수한 배낭은 이른바 ‘남친 룩의 정석’으로 통했습니다.
이때부터였을까요. 2016년 국내에 진출했지만, ‘패션 잘알(잘 아는 사람)’ 사이에서나 유명했던 포터가 대중적 인지도를 쌓아간 것이. 여기에 지난해 일본 여행이 재개됐고, 포터는 일본 쇼핑 리스트 중의 하나로 주목받으면서 급격히 입소문을 타게 됩니다.
1인 1점, 구매제한까지 생겼다
실제로 요즘 들어 포터 공식 홈페이지에서 가장 자주 보는 문장은 “재입고 알람을 하시겠습니까?”입니다. 인기 모델의 경우 사려고 해도 재고가 없어 하염없이 입고를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죠. 지난 1일 찾은 서울 강남구 신사동 포터 압구정 플래그십 매장의 상황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휴일 아침인 데도 매장은 손님들로 북적였고, 계속해서 재고를 확인하는 전화로 분주했죠. 지난 2018년부터 이곳 매장에서 일했다는 김나리 매니저도 “요 몇 년 사이 브랜드 인지도가 확연히 높아졌음을 실감한다”고 말했습니다.
지난해 3월 발매된 런던 기반 스트리트 브랜드 ‘팔라스’와 협업 제품은 발매일 3~4일 전부터 매장 앞에 수십 명의 사람이 긴 대기 줄을 만들었습니다. 비슷한 시기 몬트리올 디자인 스튜디오 ‘JJJ자운드(JJJJOUND)’와의 협업 컬렉션 발매 날에는 공식 홈페이지 서버가 다운되기도 했죠. 해외여행이 막혔던 코로나19 시기에는 ‘리셀러(되파는 사람)’들의 타깃이 되기도 했습니다. 매장문이 열기를 기다려 ‘오픈런’을 한 뒤 인기 모델들을 수십 점씩 사가는 이들도 많았죠. 이 때문에 ‘1인 하루 1개’라는 구매 제한 규칙이 생겼고요.
‘일침입혼’ 장인정신, ‘근본 가방’ 만들다
알고 보면 내공 있는 브랜드, 포터의 시작은 무려 1935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창립자 요시다 기치조는 12세에 가방 장인이 되기 위해 도쿄로 상경해 가방 공장에 들어갑니다. 17세 되던 해 겪은 간토 대지진에서 천과 두 개의 밧줄을 이용해 많은 짐을 옮기는 경험을 했고, 이를 통해 ‘물건을 옮겨주는 도구’라는 가방의 본질을 깨달았다고 해요. 이후 1935년 29세의 나이에 설립한 ‘요시다 가방 제작소’의 목표는 오랫동안 애용하는 가방 만들기가 됐죠.
오래 사용하는 가방을 만들기 위해선 숙련된 장인들이 정성을 다해 만드는 튼튼한 가방이어야 했습니다. 고집스레 품질을 따지다 보니 곧잘 만든 가방으로 인정받았지만 정작 고객들은 어느 회사가 만들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는 점을 발견, 1962년 자사 브랜드 ‘포터’를 발표했죠. 호텔에서 가방을 가장 잘 알고 많이 만지는 사람(PORTER)에서 따온 이름이죠.
‘일침입혼(一針入魂)’은 포터를 설명하는 단어입니다. 바늘 한 땀에 영혼을 담는다는 의미로, 말 그대로 장인들이 ‘한 땀 한 땀’ 정성을 다해 만드는 가방을 지향합니다. 이는 말뿐인 슬로건은 아닙니다. 포터는 연간 2000여종 이상, 약 180만개(2016년 기준)의 가방을 생산하면서도 ‘메이드 인 재팬(Made in Japan)’을 고집하고 있습니다. 브랜드 규모가 커지면 인건비가 저렴한 해외로 생산 공장을 돌릴 법도 한데, 재단부터 봉제까지 모든 과정을 일본 내 장인들의 손에 맡기고 있죠.
협업은 나의 힘…. 브랜드 ‘힙’을 입다
물론 이 90년 된 가방 브랜드는 단순히 업력만을 내세우진 않습니다. 국내서 포터가 인지도를 넓히는 계기가 된 것은 역시 여러 브랜드와의 활발한 ‘협업’ 덕택입니다. 포터는 실로 다양한 브랜드와 협업 컬렉션을 내 왔습니다. 리바이스부터 발렌티노까지, 가구 브랜드 아르텍부터 에이스 호텔까지 다양한 브랜드·인물과의 공조를 통해 브랜드의 외연을 넓혀왔죠.
이런 협업 전략은 놀랍게도 패션계에서 협업이 그리 활발하지 않았던 지난 1990년대부터 시작됐습니다. 제조에 기반을 둔 회사여서 수월했을까요. 주로 도쿄의 유명한 편집숍과 손을 잡고 해당 숍만을 위한 특별한 컬렉션을 만들면서 점차 패셔너블한 이미지를 갖게 됩니다. 제조는 포터가, 홍보는 편집숍이 하는 식이죠. 마케팅 없이, 제조 역량만으로 포터가 이미지를 구축하게 된 비결입니다.
만들되, 팔지 않는다
" “광고가 아니라 상품이 말해준다.” " 브랜드 단행본 『요시다 기준』에 등장한 2대 사장인 요시다 테루유키의 말입니다, 그는 좋은 품질의 물건을 완성하는 장인에게 집중하는 것을 경영의 기본이라고 덧붙였죠. 수작업이지만 어디까지나 평범한 직장인들이 지불할 수 있는 금액대인 10만원~50만원 사이로 가격을 책정하고요. 이는 광고나 마케팅은 전혀 하지 않는 등 상품 개발 이외의 경비는 최대한 줄이는 방식으로 실현합니다.
요시다 포터의 고집스러운 철학은 요즘의 브랜딩 만능 시대를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흔히 브랜드 이미지를 만들어가는 작업을 ‘브랜딩’이라고 하죠. 요즘은 제조는 아웃소싱하고, 디자인과 기획 및 개발 역량에만 집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브랜드 정체성을 정교하게 다듬는 데만 집중하는 효율적 방식이죠.
제조의 제조에 의한, 제조를 위한 브랜드. 브랜드에도 여러 갈래가 있겠지만, 포터는 ‘제조에 근간을 둔 브랜드’를 자처합니다. 그런데 참 재미있죠. 브랜딩을 일부러 멀리하고, 제조에만 몰두했는데 이것 자체가 브랜드의 명성을 만들었으니까요. 단지 삶에 필요한 최고의 가방을 만든다는 고집. 어쩌면 요즘 브랜드가 늘 얘기하는 ‘진정성’을 가장 확실하게 획득하는 최고의 브랜딩 전략이 아니었을까요.
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성매매’에 망한 강남 그 건물…‘텅빈 방’이 1000억 올려줬다 | 중앙일보
- 3차례 쫓겨나더니…AV배우 '19금 페스티벌' 이번엔 압구정 발칵 | 중앙일보
- 대치동 황소학원 대표 "답지 버려라"…아이 명문대 보내는 비결 | 중앙일보
- 여배우 샤워도 하는 공간인데…현직 아이돌 매니저의 몰카 '충격' | 중앙일보
- "내 빚, 네가 갚은 것으로 해줘"…오타니 통역사의 뻔뻔한 부탁 | 중앙일보
- 550만 유튜버 "인천에 이슬람 사원 짓겠다"…주민 반발 예상 | 중앙일보
- 야구 경기 보던 걸그룹 멤버, 파울볼에 '퍽' 혼절…"정밀 검진 중" | 중앙일보
- 이효리·이상순 제주 카페 2년 만에 문 닫는다…"5월 영업 종료" | 중앙일보
- "현주엽, 방송 하느라 업무 소홀"…교육청, 휘문고 고강도 감사 | 중앙일보
- 상장도 안했는데 몸값 9조…등판 앞둔 ‘IPO 최강자' 누구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