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 뒤덮은 '선거 현수막'에 얽힌 끔찍한 뒷얘기
국제사회 흐름과 거꾸로 가는 환경 정책을 견인하기 위해 22대 국회에서 시급하게 제·개정해야 할 자원순환 관련 법률을 제안한다. 기후위기 대응과 플라스틱 오염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일회용품과 플라스틱의 사용 규제를 강화하고, 순환경제사회로의 전환을 위한 세부내용을 담은 입법이 요구된다. 이와 관련한 제안을 여덟 차례에 걸쳐 연재한다. <기자말>
[허승은(녹색연합) 기자]
"선거 때 현수막이 너무 많이 걸리는 것 같아요. 안 걸 수는 없나요?"
"재활용하면 좀 나은 것 아닌가요?"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가요?
질문이 쏟아지는 것을 보니, 선거철임을 실감한다. 건물 절반을 뒤덮는 현수막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예비 후보자들은 대형 현수막을 제작해 얼굴과 이름을 내걸었다. 곧 선거운동 기간이 되면 선거 쓰레기는 쏟아질 것이다.
뒤돌아서면 버려지는 후보자들의 명함, 보지도 않고 봉투째 버려진 후보자의 공보물, 거리에 난립하는 후보자의 현수막, 선거철에만 입고 버려지는 옷과 어깨띠 등등... 선거철에 넘쳐나는 쓰레기 문제는 사실 새롭지 않다.
전 세계가 쓰레기 문제로 들썩이며 제도가 강화되던 시기에도 선거로 인한 쓰레기 문제는 예외였다. 2018년 4월, 선거 운동의 자유라는 명분으로 국회는 공직선거법을 개정해 게시 가능한 현수막 매수를 선거구 안 읍면동 수마다 1개에서 2배 이내로 확대했다.
그 결과 국회의원 선거에서 사용된 현수막이 1만3980매(2016년)에서 3만580매(2020년)로 증가했다. 선거 이후 당선자, 낙선자들이 내건 현수막까지 포함하면 현수막 쓰레기는 더 많다.
국회는 현수막 사용 확대를 위해 이미 여러 차례 공직선거법을 개정한 바 있다. 2010년에는 후보자의 선거사무소의 간판·현판·현수막의 수량을 제한하는 내용을 삭제했고, 2005년에는 선거사무소의 간판·현판·현수막 규격 제한을 삭제했다.
그 결과 후보자들의 선거사무소 건물을 뒤덮는 대형 현수막까지 게시할 수 있게 되었다. 현수막 도배를 법적으로 보장해 주도록 개악한 것이다.
▲ 현행 공직선거법에서는 건물을 뒤덮을 만큼 큰 현수막 게시가 가능하다. |
ⓒ 녹색연합 |
최근 환경부와 행정안전부(행안부)는 선거철 현수막에 대한 재활용을 지원해왔다. 현수막의 주성분은 플라스틱 합성섬유인 폴리에스테르라, 매립해도 썩지 않고 소각 시에는 다이옥신 같은 유해물질이 배출되기 때문에 재활용을 해야 한다는 이유다.
행안부는 2022년 대통령선거 이후 폐현수막 재활용 지원 사업으로 지자체 22곳에 1억 5천만 원을 지원했는데, 절반 이상이 장바구니와 청소마대자루를 만드는 사업이었다. 심지어 소각과 다르지 않은 시멘트 소성용 연료 활용도 있었다.
2021년 국회의원 선거의 폐현수막 재활용은 23.5%에 불과하고, 이 또한 현수막 다용도 주머니, 선풍기 커버, 청소용 마대 제작에 그쳤다. 인쇄한 잉크가 묻어 나올 수 있어 재활용하기 어렵고, 재활용품을 만들어도 현수막 재활용품에 대한 수요도 거의 없었다. 결국 재활용으로 포장한 또 다른 모양의 쓰레기일 뿐이었다.
선거 직후 현수막 철거도 지자체가 나서서 해야 하는데, 이는 수거 인력과 소각 비용을 지자체가 부담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철거 비용에도, 소각 비용에도, 이름만 재활용인 또 다른 쓰레기로 만드는 비용에도 모두 세금이 쓰이고 있다.
현수막 사용을 중단했던 때도 있었다?
마치 현수막을 통한 선거운동은 필수적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현수막 사용을 폐지한 적도 있었다. 때는 제2회 지방선거가 열린 1998년. 우리나라가 IMF 외환 위기를 겪던 시기다. 온 국민이 집안에 있는 금이란 금은 가지고 나와 금 모으기를 할 때니 돈이 적게 드는 선거에 대해 국민들의 기대가 높아졌다.
▲ 선거운동 기간에는 후보자의 현수막이 거리 곳곳에 게시된다. |
ⓒ 녹색연합 |
디지털시대, 선거운동에도 변화가 필요하다
"무턱대고 늘어만 가는 선거 홍보물량. 알뜰한 선거문화가 정착되지 않는 한 불필요한 쓰레기만 양산할 뿐입니다. (KBS, 1995.06.19)
"자원절약과 환경보호를 먼저 생각하는 선거, 선진정치의 출발점입니다." (KBS, 1996.04.13)
선거는 국민으로서 주권을 행사해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장이다. 유권자에게 후보자의 정책과 정보를 전달하고 투표를 독려하는 선거 홍보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다. 그러나 시민들은 지금처럼 쓰레기로 남는 홍보 방식이 기후위기 시대에 적절한 것인지, 국민의 세금이 더욱 가치 있게 사용되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 묻고 있다.
2022년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를 앞두고, 두 선거에서 발생할 주요 홍보물의 양을 온실가스 배출량으로 환산한 결과 2만8084 ton CO2e였다. 불과 2주간 사용되는 선거홍보물로 인해 발생한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5억 4천만 개의 플라스틱 일회용컵을 사용해 발생하는 배출량과 같았다.
선거철에 내걸린 현수막은 가히 공해라 불릴 정도다. 재활용도 안 되는 현수막의 소각을 최소화하려면 사용을 줄이는 수밖에 없다. 후보자에게 환경을 위해 자발적으로 줄여달라고 하면 될까? 그러면 한두 명의 사례가 만들어지는 데 그칠 것이다. 모든 후보자에게 적용할 수 있도록 제도화해야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확실히 줄어들 수 있다.
▲ 후보자들의 공약과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공보물. 유권자들이 보다 쉽고 편리하게 정보를 받을 수 있도록 온라인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
ⓒ 녹색연합 |
국회가 해야 할 일, 공직선거법을 개정하라
현재 적용되고 있는 현수막 게시를 금지해야 할 뿐 아니라 선거 사무소가 있는 건물이나 담장에 게시한 간판·현판·현수막의 규격이나 매수를 제한해야 한다.
또 후보자의 정책이나 공약이 담긴 공보물은 우편이 아닌 전자형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선거 전 전자형 공보물을 신청한 유권자들에게는 온라인으로 정보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도 선관위 홈페이지에서 후보자들의 정책과 정보를 확인할 수 있지만, 해당 지역의 유권자에게 문자 등으로 제공하면 될 듯하다.
온라인 공보물은 후보자의 홍보물 제작비를 줄일 수 있는 장점이 있으며, 예산이 부족해 유권자 전체에게 공보물을 제공하지 못하는 불평등한 선거 홍보에 대한 문제도 일부 해소될 수 있다. 물론 디지털 약자나 종이 공보물을 원하는 시민에게는 지금처럼 종이 공보물을 제공해 유권자의 알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프랑스는 친환경 재질의 종이를 사용한 홍보물 및 투표용지에 대해서만 선거비용을 보전하는데 재생 섬유를 50%이상 포함한 종이나 지속가능한 숲 관리 국제 인증을 받은 종이를 사용한 경우에 한한다.
21대 국회는 선거 홍보물 저감을 위한 내용을 담은 법률 총 9건을 발의했다. 그중 3건의 개정안이 전자공보물로의 전환을 담았고, 나머지는 선거 홍보물의 친환경 소재 사용이나 현수막 재활용에 대한 내용이다. 2021년부터 매년 전자공보에 대한 개정안이 발의되었으나 상임위에서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 선거홍보물 저감을 위한 노력은 국회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22대 국회에서는 공직선거법을 개정해 선거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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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 허승은은 녹색연합 녹색사회팀장입니다. 이 글은 녹색연합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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