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과 한국이 만나 빚은 아시아적 오컬트

김성호 2024. 3. 9.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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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의 씨네만세 661] <랑종>

[김성호 기자]

공포는 어디서 오는가. 대부분은 알지 못하는 것에서 온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나타날지 모를 위협으로부터 개체를 보호하는 것이 존속에 유리했기에 생명은 두려움이란 감정을 갖도록 설계되었는지도 모른다.

공포가 무지에서 비롯되는 감정이기에 공포영화는 어려운 작업이다. 무섭게 하려는 감독과 공포를 느끼길 원하는 관객 사이에선 치열한 수 싸움이 오고 간다. 영화는 관객이 알지 못하는 내용이나 방식으로 접근해야 하고, 공포에 몰린 관객은 그 공포를 완화하기 위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의심한다.

<랑종>은 아시아를 대표하는 공포의 대가 두 사람이 만난 결과다. <추격자>와 <곡성>의 나홍진이 제작을 맡았고, <셔터>의 반종 피산다나쿤이 연출했다. 이미 <곡성>에서 미신과 전통신앙, 무당, 기독교 등을 어루만진 나홍진의 관심을 얼마간 이어가며, 아시아 공포 1번지로 꼽히기에 무리 없는 태국으로 무대를 옮겼다.

두 개의 세계가 만나 장점만 합쳤으니, 공포물의 팬이라면 기대하지 않을 수 없는 작품이 됐다.
 
▲ 랑종 포스터
ⓒ (주)쇼박스
 
<곡성>보다 한층 더 나아갔다

무당은 공포영화에선 더없이 매력적인 소재다. 상술했듯 공포란 익히 알지 못하던 것에서 오는 법인데, 초현실적 세계를 다루는 무당의 행위를 제대로 이해하는 자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기 때문이다.

같은 견지에서 한국 관객에게 <랑종>은 <곡성>보다 한층 나아갔다. 적어도 <곡성>은 한국의 시골마을이 배경이었는데, <랑종>의 배경은 한국인 가운데 가본 이가 넉넉잡아도 채 100명이 되지 않을 태국의 시골마을인 것이다. 이런 곳에선 그저 길만 잃어도 눈물콧물 빼기 십상인데, 악령이 사람 몸에 들어 멀쩡한 이들을 위협하니 공포를 느끼지 않는 것이 더욱 이상한 일이다.

줄거리는 크게 중요치 않다. 무당이 악령이 깃든 조카를 지키기 위해 동분서주하며 퇴마의식을 준비하는 게 주요 얼개다. 영화가 전개되며 무당의 가족을 둘러싼 사연이 하나 둘씩 풀어지고, 클라이맥스인 퇴마의식까지 순식간에 내달린다.

숙주에게서 악령을 몰아내는 작업은 공포영화의 주요한 장르다. 이른바 오컬트 엑소시즘이다. 오컬트는 유령 등 초자연적 존재를 다루는 것이고, 엑소시즘은 숙주에 빙의된 악령을 물리치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엑소시스트> 시리즈가 유명한데, 한국에선 2015년 <검은 사제들>로 오컬트 엑소시즘 장르의 한국화가 충분히 가능함을 입증한 바 있다.

인간이 사는 곳이면 어디나 오컬트 엑소시즘이 있다. 뚜렷한 이유를 알 수 없는 정신질환은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됐고, 사람들은 제가 알지 못하는 것을 쉬이 악령에 쓰인 것으로 믿어버리곤 하였기 때문이다. 문제가 생기면 해결을 해야 하는데, 앎의 영역을 넘어선 문제는 대개 신부나 스님, 무당 같은 종교인의 몫이 되곤 하였다.

다시 말해 <랑종>이 채택한 오컬트 엑소시즘은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다.
 
▲ 랑종 스틸컷
ⓒ (주)쇼박스
 
페이크 다큐 문법, 다른 선택지는 없었을까?

제작진은 영화를 풀어가는 방식으로 페이크다큐멘터리를 채택했다. 사실을 취재한 다큐멘터리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연출되었다는 뜻이다.

영화의 첫 장면부터 페이크다큐가 시작된다. 태국 시골마을 무당 님(싸와니 우툼마 분)을 취재하러 왔다는 취재팀이 카메라 여러 대를 님과 주변인에게 들이댄다. 마침 님의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이 취재에 더욱 몰입하도록 이끈다.

페이크다큐를 선택한 이유는 명백하다. 관객을 낯선 공간 한가운데 던져놓기 위함이다. 태국 시골마을에서 펼쳐지는 초현실적 사건이 자칫 지나친 거리감을 줄까 우려한 선택처럼 보인다. 그래서일까. 영화는 관객과 그들이 보는 영상을 찍고 있을 취재팀을 같은 선상에 놓고, 위험으로부터 관객이 결코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 위기감을 강박적으로 심어주려 한다.

문제는 이 수법이 흔해졌다는 점에 있다. 2007년 <파라노말 액티비티>, 2008년 <클로버필드> 이후 너무나도 유명한 문법이 된 페이크다큐를 10년도 훌쩍 지나 꺼내든 선택은 식상하기까지 하다. 알지 못하는 것으로 시작해야 하는 공포물에서 익숙한 문법을 채택한 <랑종>의 한계는 러닝타임 내내 역력하게 드러난다.
 
▲ 랑종 스틸컷
ⓒ (주)쇼박스
 
분명한 단점에도 존중받아야 하는 이유

요컨대 <랑종>은 시작부터 분명한 장단을 지녔다. 소재와 배경은 대다수 관객에게 낯선 인상을 주기 충분하지만, 장르며 문법은 '흔해 빠졌다'는 표현이 지나치지 않다. 제작자의 역량은 소재와 배경보단 장르와 문법에서 드러난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랑종>의 선택이 안이하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인상적인 건 제작자 나홍진이다. <랑종>은 분명 미국과 유럽에선 흔하지만 태국에선 흔하지 않은 장르와 문법을 가졌다. 승부수는 딱히 대단한 노력이 필요치 않은 소재와 배경으로 띄웠다. 마치 미국에서 잘 나가는 카페 브랜드를 다른 나라로 그대로 옮겨와 흥행시키는 프랜차이즈 사업가를 보는 듯하다.

생각해보면 쉽지 않은 일이다. 여러 나라 영화인과 그들의 아이디어를 무차별적으로 빨아들이는 할리우드의 침공으로부터, 저들의 방식으로 당돌한 역습을 하는 영화인을 우리는 대체 몇이나 보았는가 말이다. 나홍진의 시도에 기꺼이 박수를 치고 싶어진 이유다.
 
▲ 랑종 스틸컷
ⓒ (주)쇼박스
 

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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