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난 오후반이래" 초등 입학생 100만명, 지금은 몇명? [그땐 그랬지]
오른쪽 가슴에 손수건을 단 코흘리개 개구쟁이가 두 손을 주머니에 콕 찔러 넣은 채 턱을 치켜들고 있습니다. 바로 뒤엔 바짝 긴장한 듯한 꼬마가 차렷 자세로 선생님을 쳐다보고 있는 이 모습은 1972년 3월 6일 자 중앙일보 7면에 실린 서울 남대문국민학교(서울 인구의 외곽 분산으로 도심이 공동화되면서 1979년 폐교) 입학식 모습입니다. 유치원이나 어린이집 등에서 사회 경험(?)을 일찍 시작하는 요즘 아이들과 달리 유아 돌봄 시설이 충분하지 않았던 당시엔 엄마 품에서 처음 벗어나는 시기가 국민학교(1996년 초등학교로 명칭 변경) 입학식입니다.
당시 기사엔 '올해 국민학교 신입생 입학식이 6일 전국의 각 국민학교 별로 실시됐다. 어린이들은 어머니, 언니들의 손에 이끌려 학교 운동장에 들어서 신기한 듯 두루 살폈고 담임 교사의 주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도 했다'고 쓰여 있습니다. '6일 하오 2시 거행된 입학식에서 처음 학생된 개구장이(현재 표준어는 개구쟁이)들이 싱글벙글 즐거운 표정을 지으며 선생님의 말에 따라 줄을 섰다'는 사진 설명을 보면 예나 지금이나 학교에 처음 가는 아이들의 설렘은 다를 리 없어 보입니다.
다음은 1968년 3월 5일 자 중앙일보 7면에 실린 '개구장이 입학식' 모습입니다. '전국 1백4만1천여명의 국민학교 신입생 입학식이 5일 일제히 거행됐다. 서울 시내 2백2개 국·공·사립국민학교 10만9천6백명의 신입생은 이날 입학식과 함께 학급을 짜고 담임 선생님을 맞았다'며 '엄마 손을 잡고 학교에 나온 꼬마들은 학생이 되는 즐거움에 마냥 부푼 듯 담임 선생의 지시에 큰소리로 대답하곤 했다'고 적혀 있습니다. 함께 실린 사진은 사립국민학교 입학식 모습인데 소위 있는 집(?) 자녀들이 다닌다는 사립학교라 그런지 1968년 3월이면 현대자동차가 설립된 이듬해로 국내 자동차 보급률은 6만 대수준. 국산차 첫 모델인 '포니'가 출시되기도 한참 전인데 입학식이 열린 학교 주변엔 '자가용 차가 줄을 서기도 했다'는 내용이 눈에 뜨입니다.
1981년 3월 5일 자 중앙일보 11면입니다. '골목길에서 제멋대로 뛰놀던 개구장이들이 5일 일제히 국민학교 입학식을 갖고 어엿한 학생이 됐다.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학교에 나온 어린이들은 선생님 지시에 따라 줄을 서거나 새 친구들과 뛰놀다가도 엄마 아빠를 놓칠 세라 금방 달려가 매달리기도 했다'며 이날 서울 시내 취학 어린이 수가 2백99개교에 18만2천3백94명이라고 보도하고 있습니다. 앞서 1968년과 비교하면 13년 동안 서울에 국민학교가 97개 늘고 1학년 입학생은 18만여명까지 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968년 기사에서 보듯이 56년 전 당시 전국 국민학교 입학생 수는 100만명이 넘었습니다. 전후 베이비붐 세대가 인구 증가를 견인하던 1960년 대지만, 그 많던 학생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반세기가 조금 더 흐른 올해 2024학년도 초등학교 입학생은 30만명대로 떨어졌습니다. 저출생 문제가 심각해진 지난 10여 년 동안 40만명대를 오르내렸지만, 올해는 이 마저도 무너진 겁니다. 이런 추세라면 2030년대로 가면 초등학교 입학생 수가 20만 명대로 떨어질 것이라고 합니다. 학생이 10만 명 줄면 한 학급에 20명씩이라고 가정할 때 교실 5000개가 사라지는 셈입니다.
지금으로부터 딱 40년 전인 1984년 3월 3일 자 중앙일보 7면입니다. 기사를 볼까요? '올해 국민학교 취학아동은 73만9천2백41명으로 지난해보다 1만2천5백24명이 줄었다'고 보도하고 있습니다. 40년 전에도 취학 아동은 조금씩 줄고 있지만, 1980년대 국민학교에서는 학생은 많고, 교실이 부족해 저학년의 경우 오전·오후 반으로 나눠 수업을 했습니다. 아이들이 넘쳐나던 콩나물시루 교실이 그리운 것은 아니지만, 오늘날 서울에서 조차 폐교되는 학교가 나오는 현실을 보면 저출생 문제가 여간 심각한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실제로 지난해 서울 광진구 화양초등학교가 40년 역사를 뒤로하고 학생 수 부족으로 문을 닫았고, 2020년에는 강서구 염강초등학교가 이미 문을 닫았습니다.
" 사라지는 학생들… 학교가 작아진다 "
2024년도 서울의 초등학교 취학 대상자는 5만9492명으로 전년(6만6324명) 대비 10.3% 급감했습니다. 취학 대상자가 5만명대로 떨어진 것은 올해가 처음입니다. 학령인구 감소에 따라 초등학교 학급수도 매년 약 500학급 이상 감소하고 있습니다.
나 홀로 입학식 또는 입학식이 사라진 학교도 있습니다. 이날 전국 157개 초등학교에서 신입생이 없어 입학식을 열지 못했습니다. 전북이 34곳으로 가장 많고, 경북 27곳, 강원 25곳, 전남 20곳, 충남 14곳을 기록했습니다. 지난해 4월 1일 기준 전국 초등학교가 6175개교인 점을 고려하면 2.5%에 해당하는 수치입니다.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서울지역 초등학교 전체 학생 수는 매년 1만2000명~1만7000명 줄어들어 4년 뒤인 2028년에는 30만 3412명까지 떨어질 전망이라고 합니다. 이는 특수·특별학급을 합친 것으로 이들을 제외한 일반 학생 기준으로는 20만명대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상합니다. 학교당 평균 학생 수도 올해 608명에서 2028년에는 496명으로 400명대까지 줄어듭니다.
학교가 점점 작아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도시 기준 전교생 240명 이하를 소규모 학교라 하는데 서울시교육청이 발표한 '2024~2028학년도 초등학교 배치 계획'에 따르면 2024년 69개, 2028년은 101개가 예상됩니다. 이는 서울 전체 초등학교 604개의 16.5%에 달하는 비율입니다.
전교생이 240명의 학교는 한 학년 정원이 40명으로, 20명이 한 학급이라고 보면 2개 학급만으로 운영된다는 얘깁니다. 이렇게 되면 한 반에서 축구팀 2개도 만들기 어려워집니다. 운동회나 현장 학습 등도 지장을 받을 수 있고 학교 단위 행사와 프로그램의 축소 및 폐지 등도 예상됩니다.
박남기 광주대 교육학과 교수는 "과거의 획일적이고 집단주의적인 행사는 크게 줄어들고 학생 개개인의 개성과 요구를 반영하는 행사, 학생 주도적인 행사가 늘어나고 있다"며 작은 규모의 학교에서는 "반 혹은 학년 단위 행사와 함께 전교 단위의 행사를 동시에 추진하여 학생들이 갖춰야 할 공동체 역량을 길러주길 기대한다"고 조언했습니다.
학교 간 통폐합도 예상됩니다. 교육부의 적정규모 학교육성 권고 기준에 따라 도시지역에 전교생 수 240명 미만 초등학교들은 통폐합 대상으로 분류됩니다. 서울시교육청은 3~4월 중에 통폐합 대상 학교를 발표할 예정입니다.
" 그래도 설레는 입학식… 개구쟁이들은 여전하다 "
"유치원 친구들과 헤어져서 슬펐는데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게 되어 너무 신나요"
2024년도 신입생 입학식이 열린 지난 4일 서울 양천구 갈산초등학교는 124명의 새 가족을 맞았습니다. 원도심의 학교들이 대부분 50여명 안팎의 신입생을 맞이한 것에 비해 많은 편입니다.
이날 주인공들이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교문에 들어섭니다. 부모님뿐 아니라 할머니와 할아버지, 이모·삼촌으로 구성된 대규모 축하 사절단도 왔습니다. 모두의 표정에서 긴장과 설렘이 보입니다. 교문 주변에 마련된 포토월에서 꽃다발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으며 입학을 축하하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이어 신입생들은 앞으로 신나게 뛰어놀 운동장을 지나 입학식이 열리는 강당으로 향했습니다.
강당 의자에는 신입생 한명 한명을 위한 축하 선물이 놓였고, 선배들로 구성된 오케스트라가 흥겨운 연주로 이들을 반겼습니다.
신입생 강서아(6)양은 "기분이 좋은 날이에요. 학교 다니면 체육 시간이 가장 기대되요. 친한 친구랑 같은 반이 돼서 기뻐요"라고 새로운 시작의 소감을 말했습니다.
입학식은 국민의례, 담임 선생님 소개, 교장 선생님 인사말 순서로 진행됐습니다. 공식석상(?)에 처음 서는 신입생들은 국민의례에서 주변을 살피며 왼손과 오른손을 번갈아 가슴에 올리는 귀여운 실수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애국가 만큼은 자신 있는지 우렁차게 불렀습니다.
이어지는 식순에 신입생들이 살짝 지루함을 느낄 순간, 교장 선생님이 신입생들을 위한 동화 한 편을 읽어줍니다. 제목은 '틀려도 괜찮아'.
"실수해도 괜찮아, 못해도 괜찮아, 울어도 괜찮아..." 이곳에는 '학교 엄마'인 담임 선생님들이 있으니 학교생활 실수해도 괜찮다는 내용입니다. 이어 "1학년 선생님들은 특별히 베테랑 선생님들로만 구성됐다"고 하네요. 교가를 합창하며 입학식은 마무리됐습니다. 처음 불러보는 신입생들이 입만 벙긋거리자 함께한 선배들이 큰 목소리를 보태줍니다.
이날 입학식에 참여한 한 학부모는 "1994년에 서울의 한 초등학교를 졸업했는데, 한 학년에 18반까지 있었어요. 교실이 콩나물 시루처럼 빽빽했죠"라면서 "그때 한 학년 수가 우리 아이 학교 전교생이랑 비슷하네요"라고 말했습니다.
강정현·장진영 기자(artj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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