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납득할 자료 필요”…의대 증원 통계부터 챙기는 尹, 왜
“국민 의료비는 511배 증가했는데 의사 수는 7배 늘어나는 데 그쳤다.”
“우리나라 의대 한 학년 정원 평균이 77명인데, 독일은 243명, 미국은 146명이다.”
지난 6일 의사 집단행동 관련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주재한 윤석열 대통령의 모두발언 중 일부다. 대통령이 정책의 큰 그림을 그리고, 부처 실무자들이 디테일을 챙기는 게 통상적인데, 이번엔 달랐다.
윤 대통령은 이날 A4 네 장 분량의 모두 발언 주요 단락마다 각종 수치를 거론하며 의대 정원 확대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의대 교육 질 저하 우려와 관련해 “울산 의대는 교원 1인당 학생 수가 0.4명, 성대 의대는 교원 1인당 학생 수가 0.5명에 불과하다”고 반박했고, 건강보험이 도입된 1977년 이후 변화한 의사와 변호사 수를 비교하며 “연간 배출되는 변호사는 57명에서 1725명으로 30배 늘었지만, 의사는 1380명에서 3058명으로 2.2배 증원됐다”고 통계를 인용했다.
처음부터 윤 대통령의 원고가 숫자로 가득했던 건 아니었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중대본 회의 전날 원고 초안을 본 뒤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통계를 제대로 넣어야 한다”고 참모들을 질책했다. 이후 수정을 거쳐 회의 당일 새벽 2시쯤에야 발표할 원고의 윤곽이 잡혔다고 한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이 과정에서 다른 선진국과의 의대 정원 비교 등 다양한 통계가 추가됐다”고 전했다.
윤 대통령이 통계를 챙기는 건 의대 정원 확대의 성패가 결국 국민 여론에 달렸다는 판단 때문이라고 한다. 의약분업(2000년)이나 원격의료(2014년), 의대 정원 확대 (2020년)를 추진했던 지난 정부도 국민 건강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의사들의 집단행동으로 번번이 무릎을 꿇었다. 의료 대란이 발생할 때마다 여론의 흐름이 정부에 부정적으로 흘렀기 때문이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국민이 의사를 늘려야 하는 이유를 납득해야 정책이 성공할 수 있다는 게 윤 대통령의 생각”이라고 했다. 일각에선 의대 정원 확대 문제가 장기화할 가능성도 염두에 둔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당장 의사들과 협상하기보단, 중·장기적 관점에서 의대 정원에 대한 우호적 여론을 형성하는 것이 우선이라 판단했다는 것이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불법 집단행동에 나선 의사들도 의대 정원 확대와 관련해 구체적 근거를 제시하며 반대해야 할 것”이라며 “단순 실력 행사만으로 정부가 물러설 것이란 생각은 오산”이라고 말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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