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하이닉스가 못한 속도전…TSMC 日 공장, 2년만에 '뚝딱' 어떻게 가능했나[기업&이슈]
28개월 만에 '뚝딱' TSMC 日 공장
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못한 속도전
28개월.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대만 TSMC가 지난달 24일 일본 구마모토현에 세운 '1호' 공장을 공개하면서 세계가 주목한 것은 전례없는 '속도'였다. 2021년 10월 TSMC가 처음 일본 공장 건설 계획을 발표한 뒤 지난달 개소식이 진행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단 28개월. 보통 반도체 공장을 짓는 데 5년 이상 걸리는 것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광속'이다. 세계 반도체 업계는 TSMC와 소니, 중앙정부와 구마모토현 등 지방자치단체까지 모두가 그야말로 한팀으로 뭉쳐 만들어낸 성과라 평가하고 벤치마킹에 들어갔다.
① 국내선 5년째 못했는데…2년만에 '뚝딱' 가능했던 첫번째
TSMC는 2021년 10월 일본 구마모토현에 파운드리 공장을 짓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고 6개월 만인 2022년 4월 공장 건설 공사에 돌입했다. 일반적으로 반도체 공장을 짓기 위해서는 용지를 확보하고 정부 부처와 지자체가 인프라 구축 계획을 수립하며 이해당사자 간 의견 수렴을 하기까지 시간이 소요된다. 업계는 이 기간을 보통 2년 정도로 본다. 단, 장애물이 없는 경우에 한해서다.
SK하이닉스는 2019년 2월 120조원을 들여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했지만, 착공이 다섯 차례 이상 연기됐다. 결국 이 공장은 전력, 용수 등의 문제로 5년째 착공하지 못했다.
TSMC가 예상보다 빠른 착공에 돌입할 수 있었던 것은 일본 정부와 지자체가 '속도'에 초점을 두고 추진력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정부와 의회는 규제를 풀고 인허가 절차를 대폭 줄여 TSMC 공장 착공이 우선적으로 진행될 수 있게 도왔다. 특히 정부는 착공 전 TSMC에 지급할 보조금을 예산안에 넣어 금전적 문제를 빠르게 해결해줬다. 곧바로 반도체 지원법을 마련해 2021년 12월 임시 국회에서 개정안을 통과시켰고 착공 직전인 2022년 3월 1일부터 이를 시행, 이를 근거로 TSMC에 6000억엔이 넘는 보조금을 지급했다.
지자체도 발 빠르게 대응했다. 가바시마 이쿠오 구마모토현 지사는 착공 직전인 2022년 1월 니혼게이자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2021년 11월에) 기시다 후미오 총리와 하기우다 고이치 경제산업상에게 직접 인력 확보나 교통 정체 대책 등을 마련해달라고 요청했다"며 "현도 내가 주도한 반도체 산업 강화 추진 본부를 만들어 모든 청이 과제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TSMC는 일본에 2공장도 건설할 예정이다. 정부와 지자체의 신속한 지원을 바탕으로 연내 착공해 2027년 말 가동이 목표다. 일본 정부는 1공장 건설 당시 경험을 바탕으로 지난해 10월 반도체 공장 등을 짓는 용도로 농지를 전용할 경우 일반적으로 1년이 걸리는 수속 절차를 4개월로 단축하는 규제 완화를 단행키로 했다. 농지가 많은 구마모토에서 산업용지를 확보하기가 쉽지 않고 관련 절차가 오래 걸린다는 불만이 나오자 이를 해소하기 위한 조치다.
구마모토시도 TSMC가 2공장 건설 여부를 검토하던 지난해 다른 대만 기업의 요청을 받아 산업용지 확보를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고 한다. 지난해 4월 대만전자설비협회(TEEIA) 관계자들이 구마모토시를 방문해 "사업 진출을 하고 싶어도 토지가 없다"고 호소하자, 시가 직접 산업용지 수요를 확인해 공장을 지을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했다는 일본 언론 기록들이 있다.
②365일 24시간 풀가동…'불야성'이었던 공사 현장TSMC 구마모토 공장 건설 현장은 사실상 365일 24시간 체제로 밤낮없이 분주하게 돌아갔다. 현장 근로자들은 3교대로 일했고, 많게는 7000명 이상이 작업에 투입되기도 했다. 아사히신문은 "현지에서는, 공사가 멈춘 건 새해 첫날뿐이라는 말도 나왔다"고 전했다.
이처럼 반도체 공장 건설 과정에서 대대적인 속도전을 펼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이 업계의 대체적인 평가다. 국내의 경우 근로기준법상 주당 52시간 이상 근로하면 불법이고, 중대재해처벌법상 밤샘 근무 시 사망사고 등이 발생하면 발주사업주와 건설사업주가 형사처벌을 받는 만큼 이를 감안해 공사 현장이 돌아간다. TSMC의 또 다른 공장 건설 현장인 미국 애리조나의 경우에는 완공 시점이 당초 올해로 계획돼 있었으나 1년 연기됐다. 현장 근로자 부족, 관리 부실 등이 문제로 지적됐다.
속도전을 펼치는 과정에서 TSMC는 또다시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을 받았다. 정부는 경제산업상을 중심으로 구마모토 공장 건설이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는지, 차질을 빚는 부분은 없는지 등을 수시로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2022년 10월 니시무라 야스히 경제산업상이 공사 현장을 시찰했다. 당시 TSMC의 현지 자회사 JASM의 호리타 유이치 사장은 "기초 공사는 거의 끝났고, 빠른 속도로 팹(공장) 건설이 진행되고 있다"며 "통상 2~3년 걸리는 공사를 1년 반 안에 할 계획이며 예정대로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공장을 짓는 과정에서 주변 인프라 구축도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도로, 철도, 항공 등 교통 인프라부터 산업단지 구축, 공장 근로자가 거주할 주택 마련까지 함께 진행돼야 공장 건설 과정에서도 차질을 빚지 않고 완공 이후 곧바로 가동을 할 수 있다. 인근 지역이 전방위적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공사 현장 차량과 지역 주민들의 차량이 좁은 도로로 몰리면서 교통 정체가 발생하자 지자체에서 빠르게 도로 확장에 나섰다. 다나마시 등 일부 지자체는 산업단지 정비를 직접 맡는 것이 아니라 민간에 위탁해 속도를 내게끔 했고, 구마모토시는 TSMC 관련 기업 직원들이 거주할 주택 용지로 사용할 수 있도록 시유지를 민간에 매각하기도 했다.
③ 日 소니와의 협력, 빛 봤다TSMC가 일본 공장 건설을 위해 일본 대표 기업인 소니, 도요타자동차와 손잡고 합작 법인인 JASM를 세운 것 또한 공장을 빨리 짓는 데 주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TSMC는 공장 유치를 시도해온 일본 경제산업성에 2021년 소니와 협업하는 조건으로 일본에 진출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 경산성과 TSMC가 동시에 설득에 나서면서 소니가 이 프로젝트에 동참했다고 한다.
TSMC의 일본 첫 공장이 세워진 구마모토는 소니가 2001년부터 반도체 공장을 운영하는 지역이다. TSMC의 구마모토 공장 부지를 처음 알아본 건 소니였다. TSMC의 공장 건설 계획 발표 석 달 전인 2021년 7월 소니가 구마모토현 기쿠요초에 용지를 매입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고, 같은 해 9월부터 용지를 공장 부지로 조성하는 과정에 돌입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에 지역 주민들도 처음에는 소니 공장을 짓기 위한 부지로 알고 있다가 두 달쯤 지나서야 TSMC 공장이 들어온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일본 언론들은 전했다.
공장 설계나 건설 과정에서도 소니가 보유한 현지 민관 인프라가 효과를 발휘했다. 개발, 건축 허가부터 취수, 배수 문제까지 구마모토 공업 단지에 있는 소니 공장을 가동하며 갖춘 노하우가 TSMC 구마모토 공장 건설 현장에 녹아든 것이다.
반도체 공장을 짓는 과정에서 핵심으로 꼽히는 용수 문제도 소니가 구축해둔 방식을 차용했다. 소니는 2003년부터 '지하수 보충 프로젝트'를 통해 현지 지자체-농가와 협력해 용수를 둘러싼 갈등을 해결하고 있다. 구마모토가 농지가 많은 지역인 만큼 지하수를 용수로 확보하는 과정에서 농가와 충돌할 가능성이 큰데, 농한기에는 소니가 비용을 부담해 논에 물을 공급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왔다. TSMC는 이를 바탕으로 초순수 제작에 유리한 구마모토의 화산암반수를 확보할 수 있게 됐다.
니혼게이자이는 "소니가 오랜 세월 쌓아온 현지와의 신뢰 관계나 노하우가 반도체 산업의 집적을 지탱하고 있는 면이 있다"고 전했다.
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
전진영 기자 jintonic@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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