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 넘어야 나라 이끈다?…세계인구 절반의 지도자가 70대 이상

임주리 2024. 3. 9.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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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

고령 논란에 휩싸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

언뜻 보기엔 교집합이 없어 보이는 이들 국가 지도자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정치 체제도 경제 규모도 제각각인 나라를 이끌고 있지만, 모두 70세 이상이라는 점은 같다. 이를 두고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 세계 지도자들에게 70세는 새로운 50세가 됐다"며 노년 정치인들의 전성시대가 왔다고 보도했다.

WSJ에 따르면 현재 세계 10대 인구 대국 중 무려 9개국에서 70세 이상 지도자를 두고 있다. 바이든(81)·시진핑(70)·푸틴(71)·룰라(78)를 비롯해 나렌드라 모디(73) 인도 총리, 볼라 티누부(71) 나이지리아 대통령, 셰이크 하시나(76) 방글라데시 총리, 셰바즈 샤리프(72) 파키스탄 총리,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71) 멕시코 대통령 등이 그 주인공이다.

지난달 대선을 치른 인도네시아에서도 현재 72세인 프라보워 수비안토 국방부 장관의 당선이 거의 확실하다. 이 10개국의 인구를 모두 합치면 약 45억명. 전 세계 인구의 절반이 70대 이상의 지도자를 두고 있는 것이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올해 총선에서 승리가 거의 확실시된다. AFP=연합뉴스

이는 10여 년 전과는 매우 달라진 모습이다. 지난 2014년 2월을 기준으로, 당시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52세였고 시진핑 주석과 푸틴 대통령은 모두 60대였다. 엔리크 페냐 니에코 당시 멕시코 대통령은 47세에 불과했다.


독재자 장기 집권, 민주국가에서는 진입장벽 높아져


왜 세계 지도자의 '고령화' 현상이 나타나게 됐을까. WSJ는 가장 먼저 "독재자의 장기 집권"을 이유로 꼽았다. 권위주의 정부가 들어선 여러 나라에서 독재자들이 권력을 강화하며 자리를 수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경우 시진핑이 지난 2022년 다시 한번 국가주석 자리를 꿰찼다. '3연임'은 중국 건국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시진핑은 현재 '1인 체제'를 더욱 강화 중이다.

러시아의 푸틴은 47세에 대통령이 된 후 지난 2020년 헌법을 개정하는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오는 15일(현지시간)부터 3일간 치러지는 대선에서도 푸틴의 승리가 거의 확실한 상황이다. 최대 정적인 알렉세이 나발니가 지난달 교도소에서 사망하며 야권은 더욱 숨죽이고 있다. 현행법대로라면 푸틴은 2036년까지 장기집권이 가능하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EPA=연합뉴스

눈여겨볼 점은 권위주의 국가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선거에 드는 돈이 점차 더 많이 드는 추세다. 젊은 정치인을 가로막는 진입장벽이 점점 높아진다는 얘기다. '세계 최대 민주주의 국가'라 불리는 인도에서는 오는 4~5월 총선이 열리는데, 모디 총리의 무난한 승리가 예상된다. 막강한 자금력과 네트워크로 지지 기반을 단단히 했기 때문이다.

지난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전 세계적으로 지정학적 위기가 고조되며, 나이든 지도자들이 '경험'과 '연륜'을 내세워 어필하는 면도 크다. 바이든은 고령 논란에도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로 자리를 굳혔다. 바이든을 지지하는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주(州) 주지사는 "그의 나이와 경험이야말로 바이든이 재선에 승리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라고 주장한다. 2년 전 브라질 대선에서는 2000년대 초반 권좌에 앉았던 룰라가 화려하게 '부활'했는데, 역시 그의 경험을 높이 산 유권자들의 표심이 향한 결과였다.


고령 지도자 '젊음' 과시하지만, '국가적 딜레마' 될 수 있어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로 나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AP=연합뉴스
나이든 지도자들은 고령 논란을 의식하듯 '젊음'을 부러 과시하기도 한다.

푸틴은 여러 차례 '건강 이상설'이 나왔음에도, 영하 날씨에 얼음물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등 대선을 앞두고 자신의 건강을 부각하고 있다. 최근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로 확정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77세지만, 집회 무대에서 춤을 추고 한 시간가량 연설하는 등 힘이 넘치는 모습을 연출한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는 염색과 태닝 등 외모적인 면에도 매우 신경 쓴다"고 분석했다.

틱톡 등 젊은층이 즐기는 트렌드를 익히려는 노력도 활발하다. 인도네시아 대통령 당선이 유력한 수비안토는 틱톡에 춤을 추는 영상을 올려 젊은 유권자들의 표심을 공략하는 데 성공했다.

자신의 건재함을 종종 과시하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타스=연합뉴스

그러나 나이 많은 지도자들의 집권을 우려하는 목소리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

벤 블랜드 영국 왕립국제문제연구소 아시아태평양 책임자는 "전 세계에 신생 정당과 신인 정치인의 진입 장벽이 높은 곳이 많다"며 "세계가 변하는 속도를 고려할 때 젊은 지도자들과 신선한 아이디어가 이렇게 적다는 것은 우울한 일"이라고 말했다.

NYT는 "현재 대선 후보로 나온 바이든과 트럼프 모두 고령"이라며 "누가 되든, 대통령이 직무 수행이 힘들 정도로 쇠약해질 경우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가 국가적 딜레마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문제는 이런 고민이 이번 대선이 끝이 아닐 것이란 점"이라고 짚었다. 앞으로도 정치인의 고령화는 계속해서 미국 사회의 주요 이슈가 될 것이란 지적이다.

이 때문에 미국에서는 연방 공무원의 정년을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지만, 현재 법적 근거 등을 따졌을 때 실현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WSJ는 설명했다.

임주리 기자 ohma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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