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방 전전했는데 감사해요"…장애유치원 옆, 소중한 부모 쉼터
경기도 일산에 거주 중인 김지은(가명,36)씨는 매일 오전 7시에 눈을 뜬다. 남편과 함께 두 아이의 등원 준비를 하느라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나면 김씨에게는 또 하나의 긴 여정이 기다리고 있다. 둘째 지석(가명,6살)이를 서울 강북구에 위치한 유치원까지 라이딩하는 일이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에서 서울 강북구까지 거리는 편도로 30km. 출근 시간에는 1시간 30분 가까이 걸린다. 김씨가 3년째 지석이를 등하원시키는 이유는 유치원이 조금 특별한 곳이기 때문이다.
지석이가 다니는 곳은 국내 최초의 시각장애 영·유아 특수학교인 서울효정학교다. 지석이는 태생적으로 PHPV(일차유리체증식증, 발달 과정에서 소실되어야 할 일차유리체의 혈관이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어 시력에 영향을 주는 증상)를 앓고 있다. 지석이는 한쪽 눈의 시력이 아예 없고, 다른 한쪽 눈도 빛이 있다는 걸 인식하는 정도의 시력을 가지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지석이는 잠시만 한 눈을 팔아도 이곳저곳에 상처가 생겼다. 위험을 스스로 감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김씨는 “내가 집 비밀번호를 누르려고 잠시 뒤돌아선 사이에 지석이가 계단에서 굴러 떨어진 적도 여러 번”이라며 “지석이를 둘러업고 병원으로 뛰어가는 게 일상이다 보니 일반 유치원에 맡기기가 어려웠다”고 말했다.
전국에서 시각장애 유아들만을 대상으로 하면서 교육부의 인가를 받은 유치원은 효정학교가 유일하다. 특수교육 자격증을 가진 교사들이 아이를 1명씩 전담해 살펴주기 때문에 시각 장애를 가진 아이들도 승마 체험, 고구마 캐기 같은 야외 활동도 어려움 없이 다닐 수 있다. 전국에서 학부모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지금도 서울 은평구부터 경기도 수원, 용인, 일산 등 반경 30km 이상 거리에서 날마다 효정학교로 등원 중이다. 지석이와 같은 PHPV 증상을 가진 일란성 쌍둥이를 키우는 이정은(가명, 43)씨도 6개월 전부터 효정학교에 만 2세가 된 쌍둥이들을 등원시키고 있다. 경기도 용인에 사는 이씨는 하루 왕복 100km를 운전한다.
두 엄마의 가장 큰 고충은 아이들이 수업을 받는 동안 마땅히 기다릴 곳이 없다는 것이었다. 학교가 위치한 곳은 한적한 주택가로, 주변의 상업시설은 오전 11시가 되어서야 문을 열었다. 할 수 없이 부모들은 차 안에서 대기하다가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거나, PC방·만화방을 전전해야 했다. 이씨는 “2시간 가까이 운전을 하고 오면 몸이 녹초가 되기 때문에 그냥 쉬고 싶은 생각뿐”이라며 “매일 아침 ‘오늘은 어디에 가 있지’라는 고민이 스트레스였다”고 말했다. 김씨는 “남들은 아이들 유치원 보내고 자유 시간이라며 운동을 다닌다는데, 나는 유치원에 도착하고 나면 10분이고 30분이고 가만히 숨만 쉬고 싶다”며 “가만히만 있어도 카페 이용료와 주차비만으로 한 달에 30만원씩 나가서 비용 부담도 컸다”고 털어놓았다.
이런 학부모들을 위해 서울 강북구청과 강북구의회는 지난해 10월부터 학교 인근의 쉼터 공간을 물색했다. 논의 끝에 서울 강북구 내 협동조합인 햇빛마을주민협의체는 학부모들에게 안 쓰는 주택 부지를 무상으로 제공하기로 결정했다. 협동조합 측은 “우리 동네로 통학하는 학부모들도 우리 주민으로 봐야 한다”며 흔쾌히 공간을 내어주었다고 한다.
효정학교는 4평짜리 방 2개 공간을 리모델링하고 7일 개소식을 진행했다. 냉난방 공사를 거쳐 오는 12일부터 쉼터로 활용할 계획이다. 고웅재 효정학교 교장은 “멀리서 오시는 분들이 많다보니 날씨가 궂은 날이면 학부모님들의 안전이 늘 걱정”이라며 “등원을 돕다가 건강이 나빠지는 경우도 자주 봤는데, 먼 걸음 하시는 학부모님들이 조금이라도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 생겨 다행”이라고 말했다.
2017년에 문을 연 효정학교는 서울에서 30번째로 문을 연 특수학교다. 만 5세 이하 아동 26명을 대상으로 문을 열었고, 지금은 20명의 아동이 등록해 교육을 받고 있다. 장애학급 대부분이 발달장애를 기준으로 수업을 운영하기 때문에 시각장애 아동의 등록을 거부하는 경우가 잦았다. 이 때문에 한빛맹학교를 운영하던 한빛재단에서 추가로 부지를 매입해 영유아를 대상으로 한 특수학교를 만들게 됐다.
신혜연 기자 shin.hye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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