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선 9천명 저기선 4만명…의협집회 인원계산 왜 다를까
9000명, 1만명, 1만2000명, 1만5000명….
지난 3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대로에서 열린 ‘전국의사 총궐기대회’ 관련 보도에서 인용된 경찰 측 집회 추산 규모다. 언론사마다 제각기 다른 인원을 보도했다. 이는 경찰이 집회 규모를 따로 공표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한 현상이다. 주최 측 주장과 병기하기 위해 언론들이 각각 경찰 내부에서 비공식 추산 인원을 취재해 인용하다 보니 빚어진 혼선이다.
반면에 이날 대한의사협회(의협)가 4만 명이 모였다는 자체 추산 결과를 발표했다. 이 때문에 “의사 4만명 여의도 결집” 등 제목에서 의협의 주장을 그대로 활용한 기사도 적지 않았다. 경찰 관계자는 “집회 추산 인원 비공개 규정이 따로 있는 건 아니지만 경찰 발표를 두고 불필요한 오해가 거듭돼 정한 방침”이라고 밝혔다.
경찰의 집회 인원 비공개 방침은 2016년 말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찬반 촛불 집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집회 주최 측과 경찰 측 추산 인원 차이가 너무 커 논란이 생겼다. 참가자가 급증한 2016년 11월 12일 3차 집회에서 촛불 집회 주최 측은 100만 명, 경찰은 26만 명으로 추산했다. 가장 큰 규모였던 6차 집회에선 주최 측 170만 명, 경찰은 42만 명이 모였다고 발표했다. 경찰이 인원을 축소한다는 비판이 일자 경찰은 2017년 1월부터 집회 인원을 비공개하기로 내부 방침을 정했다.
국가기관의 공식 발표가 사라지자, 주최 측은 규모를 지렛대 삼아 경쟁적으로 세를 과시하기도 한다. 2019년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관련 집회에서도 이 같은 상황이 연출됐다. ‘조국 수호’를 외친 서초동 촛불 집회 주최 측은 “200만 명 이상이 참석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질세라 ‘조국 사퇴’를 외친 광화문 촛불 집회 주최 측은 “300만 명”을 내세웠다. 주최 측의 일방적 주장은 정치권 등을 통해 확대재생산 되기도 한다. 당시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200만 국민이 모여 검찰개혁을 외쳤다”고 논평하고, 자유한국당은 “민주당이 숫자를 부풀리고 있다”고 반박하는 등 정치권에서 숫자를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경찰과 주최 측의 추산 인원이 차이 나는 건 집계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경찰은 집회 인원 추산에 ‘페르미 추정법’을 사용한다. 단위 면적당 수용 가능 인원 기준을 적용해 참가 인원을 계산하는 방식이다. 일반적으로 3.3㎥ 앉는 경우는 5~6명, 서 있을 경우 9~10명 정도로 계산한다. 이는 질서 유지 목적으로 사용된다. 특정 지점에서 일시점 최대 인원을 기준으로 경력을 배치하는 것이다. 다만 이 방법은 ‘유동 인구’를 담아내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주최 측은 주로 집회 시위 현장에 들렀다가 간 모든 인원을 더하는 ‘누적집계방식’을 사용한다. 인근 지하철역 승하차 인원 통계, 통신기기 사용량 등 다양한 자료가 활용된다. 하지만 이 방식은 주변에 있는 일반 시민도 참가자로 집계하는 한계가 있다. 박명하 의협 조직강화위원장은 3일 총궐기 집회에 대해 “집회 신고한 공간이 꽉 차면 3만 명이 들어간다는 설명을 들었다”며 “당시 여의도공원 등에도 참여자가 많아 1만 명을 더해 4만명으로 추산했다”고 밝혔다.
임준태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경찰이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않는다는 인식 때문에 논쟁이 끊이질 않는 것”이라면서도 “경찰이 스스로 떳떳하다고 여기는 결과를 국민에게 알 권리 차원에서 공개하는 것이 옳다”고 지적했다. 박웅기 숭실대 언론홍보학과 교수는 “일관된 통계 추정치를 집계하는 경찰 측이 주최 측보다는 신뢰도가 높다”며 “언론도 양측의 추산을 병기하되 판단은 독자에게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
이영근 기자 lee.youngke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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