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인데 육아휴직 간 아빠 없다"…'남초'기업서 터진 원성

김수민 2024. 3. 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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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포토

사상 초유의 저출산으로 ‘1호 인구 소멸 국가’라는 경고까지 나오는 가운데 주요 대기업들이 다양한 출산‧육아 대책을 내놓는 등 두 팔을 올려붙이고 나섰다. 그러나 한 쪽에선 ‘남자 직원들은 법정 육아 휴직조차 쓰기 어렵다’는 토로도 여전하다.


“초등 1학년 학부모는 거실로 출근”


포스코는 국내 기업 중 처음으로 ‘경력단절 없는 육아기 재택근무’를 시행 중이다. 육아기 재택근무제는 만 8세 이하 자녀 1명당 최대 2년간 재택근무로 전환할 수 있는 제도다. 근무시간도 8시간 전일 근무와 6시간, 4시간 등으로 선택할 수 있다.

박혜린 포스코 자동차소재마케팅실 과장은 쌍둥이 딸 둘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지난해에는 집 거실에서 업무를 소화해냈다. 박 과장은 “주변을 보면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경력 단절 여성이 가장 많이 생긴다. 아이 친구 엄마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제도”라며 “아이 입장에선 매일 준비물과 할 일을 챙겨야 하는 정신 없는 일상인데, 그 와중에 엄마 얼굴을 좀 더 자주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안정감을 느끼고 적응도 편해 하더라”고 했다. 지난해 3월 포스코가 조영태 서울대 인구정책연구센터 교수와 함께 진행한 ‘포스코·협력사 대상 사내 출산 친화 제도 효과성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내 출산·양육 지원 제도가 미혼 직원들의 결혼·출산을 결정하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박경민 기자

‘밤 10시까지 네끼 식사’하는 어린이집


HD현대는 아침 7시부터 최장 밤 10시까지 운영하는 약 670평대 사내 어린이집 ‘드림보트’를 성황리에 운영 중이다. 무엇보다 친환경 식재료로 조리한 하루 4끼 식단에 만족감이 높다는 후문이다. 이창원 HD한국조선해양 책임은 “출퇴근길에 아이를 등원시키다 보니 아빠로서 아이와 정서적 유대감을 쌓을 수 있어서 좋다”며 “드림보트 덕분에 회사에 열심히 다녀야 한다고 생각할 정도”라고 웃었다.

LG에너지솔루션 역시 ‘으쓱ESG엔솔키즈어린이집’(서울 여의도 본사)와 ‘키즈&SOL어린이집’(충북 오창 에너지플랜트) 두 곳의 직장 어린이집을 운영 중이다. 교사 대 영유아 비율을 최소화해 보육의 질을 높이고 3명의 원어민 교사가 상주해 자체 외국어 교육을 진행한다. 최모 LG에너지솔루션 책임은 “영어 유치원을 보내는 듯한 효과도 있어 최고의 복지”라고 했다.

경기 성남시 HD현대 글로벌R&D센터(GRC)의 직장어린이집 드림보트. 사진 HD현대

정부도 기업들의 ‘출산 지원’을 적극 장려 중이다. 앞으로 근로자가 회사에서 받는 ‘출산지원금’은 세금을 한 푼도 떼지 않는다. 회사도 출산지원금을 비용으로 인정받아 법인세 부담을 덜게 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5일 민생토론회에서 “기업이 근로자에게 지급하는 출산지원금을 전액 비(非)과세해 기업 부담을 덜어 주고, 더 많은 근로자가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발언키도 했다.


육아 휴직 男 직장인 28%…“일·육아 병행 어렵다”


그러나 이러한 육아 지원 제도조차 일부 대기업에 한정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남초 기업일 경우 ‘이렇다 할 지원도, 문화도 없다’는 원성이 터져 나온다. 법적 의무만 간신히 맞췄을 뿐, 실제로 있는 제도도 다 쓰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한 대기업 건설 회사의 책임인 A씨는 “이직이나 시험 준비 등으로 퇴사를 염두에 둔 직원들 외에는 육아 휴직을 사용하는 남성 직원은 거의 없다”고 귀띔했다. 실제로 고용노동부 ‘2023년 육아 휴직자 및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사용자 현황’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육아 휴직을 한 직장 12만6008명 가운데 남성 비율은 28%(3만5336명)에 불과했다. 72%를 차지한 여성에 비해 현격히 떨어지는 셈이다
OECD 주요국의 출생아 100명당 육아휴직 사용자 수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OECD]


이렇다 보니 지난달에는 직장인들이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가장 필요한 정책으로 ‘부부 모두의 육아 휴직을 의무화’를 꼽았다는 설문조사 결과(직장갑질119)도 나왔다. 실제로 일본 정부는 기업들에 남성 육아 휴직률 목표를 정해 공개하도록 의무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나섰다. 여성에 비해 크게 낮은 남성들의 육아 휴직 사용률을 높여서 저출산에 대응하려는 취지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남성 육아 휴직을 활성화해서 부모가 모두 육아와 가사에 참여하도록 하자는 게 일본 정부 방침”이라고 했다.

김수민 기자 kim.sumin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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