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 동네'서 고령운전자 교통사고 더 많은 까닭은 [데일리안이 간다 35]

김인희 2024. 3. 9. 0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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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서초·송파 등 강남 3구 고령운전자 교통사고 빈도, 서울시 평균의 2배
이 지역 고령운전자들 "대중교통 공짜라도 불편해서 안 탄다…운전대 잡을 힘 있는 한 운전 할 것"
전문가 "젊은 시절부터 운전해 자신감은 있지만 피해자 생각해야…면허갱신 신체검사 기준 강화해야"
"일회성 아닌 지속적 지원책 내놔야 운전면허 자진반납…이용거리 따라 차감, 실버택시 도입도 방법"
8일 오전 서울 강남운전면허시험장에서 70대(53년생) 여성운전자가 운전면허 갱신을 위한 신체검사서를 작성하고 있다.ⓒ데일리안 김인희 기자

고령운전자가 젊은 운전자들보다 교통사고 빈도가 잦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있다. 그런데 같은 서울 안에서도 유독 고령운전자의 교통사고가 많은 지역이 있다. 부촌이자 흔히 '강남 3구'로 알려진 강남·서초·송파구다. 데일리안이 8일 이 지역 고령운전자들을 직접 만나본 결과 이들은 "대중교통이 공짜라고 해도 불편해서 타기 싫다"며 "운전대를 잡을 힘이 있는 한 운전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강남 3구 지역은 부촌이고 차량보유자도 많다"며 "이 지역의 고령운전자들은 2~30대 시절부터 운전을 해왔던 사람들이라서 나이가 들어도 운전에 상당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지만 교통사고 피해자에 대한 생각을 해야 한다. 고령자는 면허갱신 신체검사 기준을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일회성이 아닌 지속적 지원책을 제공해야 운전면허 자진 반납을 유도할 수 있을 것"이라며 "매년 일정 마일리지를 제공한 뒤 이용거리에 따라 차감되는 '실버택시' 도입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8일 서울경찰청의 교통사고 통계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운전자 교통사고는 지난 2018~2022년 5년간 총 2만8455건 발생했다. 이 중 강남 3구에서 발생한 고령운전자 교통사고는 6426건으로 22.6%에 달한다. 서울시 자치구가 25개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3개 자치구에서는 다른 구와 대비해 2배 가까이 많은 고령운전자 교통사고가 발생하는 것이다.

특히 강남구에서는 거의 매년 500건 이상의 고령운전자 교통사고가 발생해 이 기간 중 최다발생 1위를 기록했으며, 송파구와 서초구 역시 매년 400건 내외의 고령운전자 교통사고가 발생해 지난 5년간 최다 발생 자치구 2~3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8일 운전면허 갱신을 위해 서울 강남운전면허시험장을 찾은 60대 후반 운전자들ⓒ데일리안 김인희 기자

◇"장 보고 병원 가고 하려면 운전하는게 편해…대중교통 공짜라도 안 타"

이날 데일리안은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위치한 강남운전면허시험장을 찾았다. 주로 신규면허 취득 시험장에 줄을 선 젊은이들과는 달리 면허갱신 접수창구에는 나이가 지긋하게 든 어르신들이 많이 보였다.

면허갱신을 위해 이곳을 찾은 조모(70·여, 서초구)씨는 "애들도 다 결혼해서 분가했고 남편하고 사는데 나이들어서 둘 다 힘이 없지 않나"라며 "장도 봐야 하고 병원도 가야 하는데 차 없이 어떻게 사나"라고 말했다. '65세 이상은 지하철도 무료인데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건 어떤가'라고 묻자 "지하철에 사람 많은 것도 싫고 여름 더위와 겨울 추위에 시달리는 것도 싫다"며 "공짜라도 타지 않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역시 면허갱신을 하러 왔다는 서모(72·남, 송파구)씨는 '언제까지 운전을 계속할 생각인가'라는 질문에 "내가 운전면허를 딴 지 40년이 넘었다. 운수업을 하면서 몇 차례 사고가 있긴 했지만 심각한 건 없었다"며 "오히려 과거보다 면허 절차가 간소화되면서 쉽게 면허를 딴 젊은이들이 더 큰 사고를 내지 않나"라고 말했다.

서씨와 함께 온 박모(70·남, 송파구)씨도 "나이들어도 차 잘만 몰고 택시기사들도 나이든 양반들 많다"며 "나이든 게 무슨 죄도 아닌데 맨날 노인들이 사고낸다고 하는 건 편견이다. 오륜동 동네 사는 노인들 다들 차 몰고 다닌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운전면허시험장ⓒ데일리안 김인희 기자

◇강남 3구 고령운전자 교통사고 유독 높은 이유는

하지만 이들의 주장과는 다르게 실제 강남 3구에서의 고령운전자 교통사고 빈도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지난 2022년만 해도 강남구에서 586건, 송파구에서 416건, 서초구에서 387건의 고령운전자 교통사고가 일어났다. 가장 사고가 적게 일어난 도봉구(108건)와 비교하면 최소 3.5배, 최대 5.6배 사고가 많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한국교통문화연구원의 김재선 연구위원은 "강남 3구 지역은 흔히 알려진대로 부촌이고 차량보유자도 많다"며 "이 지역의 고령운전자들은 대부분 차량이 상대적으로 드물었던 20~30대 시절부터 운전을 해왔던 사람들이라 경력이 길고 나이가 들었어도 운전에 상당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 위원은 "이들의 면허가 유효한 이상 본인의 편의를 위해서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을 법으로 막을 방법은 없다"면서도 "고령운전자들이 일으키는 교통사고 피해자에 대한 생각을 해야 한다. 고령자는 면허갱신 신체검사 기준을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면허갱신 신체검사는 매우 형식적인 수준으로 이뤄지고 있다. 시력과 청력 검사만 통과하면 면허가 갱신되며 돌발상황에 대한 반응속도 측정같은 사고 대비 요소는 아예 검사항목에 없다.

운전면허 갱신을 위한 신체검사는 다분히 형식적으로 이뤄지고 있으며, 그나마도 최근 2년 이내 건강검진내역이 있는 경우 면제된다. ⓒ데일리안 김인희 기자

◇고령운전자 면허 반납, 지자체가 더욱 적극 추진해야

고령운전자들의 사고위험이 높아지며 각 지자체에서도 고령운전자들의 면허 자진반납을 유도하고 있다. 서울시는 65세 이상 고령자가 운전면허를 반납하면 택시나 버스를 이용할 수 있는 10만원 교통카드를 지급한다. 서울 동작구의 경우에는 여기에 더해 구에서 24만원의 비용을 이번달부터 추가로 지원한다. 하지만 이런 지원책은 반납 당시 한 번만 제공되는 혜택이라 고령운전자들의 자진 면허반납을 유도하기에는 역부족인 현실이다.

김 연구위원은 "일회성 지원책 말고도 지속적으로 이동편의에 대한 지원을 해 줘야 운전면허 자진반납률이 높아질 것"이라며 "고령화 사회에 맞춰 지자체가 택시 회사와 협약을 맺고 매년 일정 마일리지를 제공한 뒤 이용거리에 따라 차감되는 '실버택시'등을 도입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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