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소금] 낯선 이에게 인사하기

신상목 2024. 3. 9. 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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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목 미션탐사부장


최근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목사님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잠비아에서 온 그들은 한국교회 곳곳을 둘러봤고 아프리카와 잠비아를 위해 기도를 부탁했다. 그분들과 잠시 동행하며 주변을 안내했다. 한 빌딩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목사님들은 엘리베이터에 타고 있던 사람들에게 ‘굿모닝’ 하며 밝게 인사했다. 하지만 승강기에 있던 한국인들은 별 반응이 없었다. 휴대전화를 보거나 무관심했다. 외국에선 흔한 낯선 이들끼리의 인사가 우리에겐 낯설었다.

한국은 외국과 달리 아는 사람끼리만 인사한다. 갑자기 모르는 사람이 다가와 인사하면 어리둥절해한다. 하지만 미국이나 일본만 가더라도 낯선 이를 향한 인사는 보편화돼 있다. 미국은 거리를 오갈 때 서로 눈을 마주치면 살짝 미소를 짓거나 고개를 끄덕인다. 음식점이나 상점에 가더라도 점원은 물론이고 손님들끼리 인사하거나 스몰토크(가볍고 일상적인 대화)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일본은 우리와 사정이 비슷하긴 하지만 모르는 사람끼리 인사하는 때도 있다. 거리나 빌딩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향해서도 ‘수고 많다’는 표현을 자주 한다.

그들은 인사말이나 관용적 표현이 정해져 있고 실제 사용한다. 미국인들은 굿모닝, 굿나이트, 바이, 익스큐즈미가 입에 붙어 있다. 가까운 일본도 오하요 고자이마스, 곤니치와는 기본이고 저녁때는 곰방와를 자주 쓴다. 스미마셍은 만능어라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이런 인사말에 인색하다. 익스큐즈미나 스미마셍에 해당하는 ‘실례합니다’가 있긴 한데, 이 말을 하는 사람을 하루에 한 번 만나기가 어렵다. 기껏해야 ‘잠깐만요’ ‘저기요’ 정도인 데다 이마저도 쓰는 사람이 적다. 혼잡한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는 그냥 밀고 지나가기 일쑤다. 물론 대한민국 만능어 ‘안녕하세요’는 하루를 기분 좋게 열고 사람들의 마음을 무장해제시킨다. 한국인들이 낯선 이들에게 인사를 하지 않는 이유는 같은 한국인이란 동질감이 만들어내는 교감이 암묵적으로 통하기 때문인 것 같다. 요즘엔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를 건너다 보행자를 발견하고 멈춘 차량 운전자를 향해 목례로 감사를 표하는 보행자도 많이 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까지 서로의 교감만 믿고 낯선 이에게 인사하는 걸 주저해야 할까. 이제 자신의 건강과 행복, 우리가 속한 공동체를 위해서라도 인사의 범위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발달로 80억 인류는 역사상 가장 촘촘하게 연결된 시대를 살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되레 격리돼 있다. 스마트폰을 보느라 아무에게도 관심을 두지 않기 때문이다. 영국의 탁월한 경제학자이자 베스트셀러 저자인 노리나 허츠는 그의 책 ‘고립의 시대’에서 21세기를 외로움의 세기라 명명했다. 그는 책에서 “우리 시대는 아무도 말을 걸지 않는다. 더 무례하고 더 무뚝뚝하고 더 차갑다”며 “접촉하고 연결해야 한다. 공동체는 돈으로 살 수 없고 연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런 점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하는 연습으로 인사만 한 게 있을까. 실제로 길에서 마주친 사람들에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는 것만으로도 삶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지난해 12월 튀르키예 사반치대와 영국 서식스대 공동연구팀은 낯선 사람들과의 일시적인 상호작용이 삶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다고 발표했다. 조사 결과 낯선 사람과 인사하거나 간단한 대화를 주고받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삶의 만족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낯선 이와 얘기를 하면서 자신이 공동체에 속해 있다는 감정을 가질 수 있고 궁극적으로 외로움 등 고립 감정이 낮아지기 때문이었다.

당장 오늘부터라도 모르는 사람과 인사해보면 어떨까. 승강기를 탈 때마다 먼저 인사해도 좋을 것 같다. 엘리베이터는 같은 건물에서 일하며 사는 우리 이웃을 만나는 작은 공간이자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신상목 미션탐사부장 sm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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