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예술 사회 변화 일으켜” 佛 국립적응창작센터장 티에리 스갱

장지영 2024. 3. 9. 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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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카탈리즈, 모두예술극장 개관 공연
발달장애인 배우 중심, 직접 극작도
극단 카탈리즈와 함께 처음 내한한 티에리 스갱 프랑스 국립적응창작센터 센터장. 그는 “장애예술은 프랑스에서 오랫동안 예술로 인정받지 못했지만, 놀라운 깊이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걸리버, 마지막 여행’을 모두예술극장에서 선보인 카탈리즈는 국립적응창작센터의 상주단체다. 모두예술극장 제공


국내 첫 장애예술 공연장 ‘모두예술극장’은 지난해 10월부터 개관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다. 그 일환으로 지난달 29일 개막해 2일까지 프랑스 국립적응창작센터(Centre National pour la Creation Adaptee)와 극단 카탈리즈의 연극 ‘걸리버, 마지막 여행’가 무대에 올랐다. 발달장애인 배우들을 중심으로 이뤄진 극단 카탈리즈는 2021년 프랑스 최초로 설립된 국립 장애예술 기관인 국립적응창작센터의 상주단체다.

‘걸리버, 마지막 여행’은 조너선 스위프트의 소설 ‘걸리버 여행기’(총 4편) 가운데 3편인 라푸타 군도에서 만난 4개의 섬 이야기를 재해석해 현대 사회와 정치에 대해 유쾌하면서도 깊이 있는 시선을 담았다. 발달장애인 배우들이 직접 극작에 참여하고 연기한 것이 특징이다. 이번에 극단 카탈리스와 함께 처음 내한한 국립적응창작센터의 티에리 스갱 센터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국립적응창작센터 외관


스갱 국립적응창작센터장은 “장애예술은 프랑스에서 오랫동안 예술로서 인정받지 못했다. 그래서 국립적응창작센터가 만들어지기까지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면서 “하지만 장애예술은 그동안 주목받지 못한 것이 아쉬울 정도로 놀라운 깊이를 보여준다. 장애예술은 예술의 지평을 확장함으로써 예술계는 물론 사회 전반에 변화를 일으킨다”고 밝혔다.

발달 장애인 중심 극단 카탈리즈의 활약


국립적응창작센터가 프랑스 북서부 브르타뉴 지역의 모를레시(市)에 설립된 것은 극단 카탈리즈와 깊은 관련이 있다. 극단 카탈리즈는 1983년 피니스테르주(州) 장애인 교육 및 복지 기관의 지원으로 발달 장애인 중심의 아마추어 극단 카탈리즈 아틀리에가 만들어진 데서 시작한다. 특수교사 출신의 마들렌 루아른이 이끄는 카탈리즈 아틀리에의 작품이 꾸준히 호평을 얻으면서 1993년 전문 극단이 됐다. 현재 장애인 배우 7명과 교육자 2명으로 구성된 극단 카탈리즈는 파리가을축제와 아비뇽 페스티벌 등에 초청받을 정도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스갱 센터장은 “프랑스에는 국가와 지자체의 지원으로 운영되는 12개의 장애예술 그룹이 있다. 극단 카탈리즈의 경우 활동이나 수행방식 등이 장애예술의 선구적 사례이기 때문에 국립적응창작센터 설립으로 이어지게 됐다”면서 “국립적응창작센터는 장애예술과 관련된 지식과 정보, 경험 등을 모으는 한편 그것이 필요한 개인과 단체에 전달되도록 노력한다. 모를레 본원에서는 장애예술 창작과 교육 등이 이뤄지며, 파리 분원에서는 각종 행정 업무와 함께 장애예술 관련 상담이 주로 이뤄진다”고 덧붙였다.

모를레의 국립적응창작센터는 2004년 이후 폐쇄됐던 담배공장을 대대적으로 리노베이션한 것이다. 대형 공연장, 3개의 연습장, 영화관, 레지던스 등을 가지고 있다. 1992년부터 극단 카탈리즈와 작업한 스갱 센터장은 지역의 담배공장을 문화예술 시설로 바꾸자고 지자체와 정부를 설득했다.

폐쇄된 담배공장 리노베이션… 연간 14만명 방문


스갱 센터장은 “담배공장 폐쇄로 지역에서 실직 등 문제가 컸는데, 국립적응창작센터로 변신해 고용 창출 등 다양한 효과를 얻게 됐다”며 “연간 14만명이 찾아오는 그 중심에는 장애예술이 있다. 덕분에 2021~2024년 매년 공간 운영과 제작비 등을 모두 포함해 150만 유로(약 22억원)를 지원받았는데, 2025~2028년에는 앞선 기간보다 2배 정도 증액 예정이다”고 밝혔다.

극단 카탈리즈의 40년 넘는 활약을 토대로 국립적응창작센터가 설립되기까지 프랑스 장애인 정책 변화도 큰 영향을 끼쳤다. 프랑스는 여느 구미권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오랫동안 장애인을 시설에서 수용해 오다가 1980년대 인권운동과 함께 탈시설화를 추진했다. 이에 따라 지역 사회로 유입된 장애인 대상의 예술 지원이 이뤄졌다. 그리고 2005년 프랑스의 모든 공공 영역에서 장애인이 차별받지 않도록 하는 ‘접근성 법률’이 만들어지면서 장애예술 역시 빠르게 발전했다.

스갱 센터장은 “극단 카탈리즈가 전문 예술단체가 된 이후에도 초기 10년 정도는 장애예술을 예술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힘들었다. 일반 관객은 물론이고 전문가들조차도 카탈리즈의 연극을 예술적 행위로 보지 않았다. 심지어 카탈리즈가 장애인을 착취하거나 인형처럼 조종한다며 의심했다”면서 “사람들이 장애인을 예술가로서 주체성을 받아들이기까지 시간이 걸렸다”고 설명했다.

국립적응창작센터 설립은 바로 장애예술에 대한 프랑스 내 인식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장애나 장애예술이란 용어 자체가 차별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쉽기 때문에 카탈리즈 설립자 루아른의 제안에 따라 ‘적응창작’이란 이름을 쓰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실제로 최근 프랑스에서는 ‘장애인’보다는 ‘취약한 상황에 있는 사람’으로 지칭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장애의 모든 유형을 포괄하는 체계 속에서 장애인 각각의 상황이나 필요에 맞춰 개별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장애예술 단체 지원은 물론 직접 발굴도

스갱 센터장은 “영미권이나 한국에서는 장애 관련 정책에서도 ‘평등’이라는 개념이 강하게 작동하는 것 같다. 하지만 모든 장애인이 접근 가능한 상태를 추구하는 생각은 비현실적인 유토피아를 지향하는 것 같다”면서 “이번에 우리가 선보인 ‘걸리버, 마지막 여행’만 보더라도 처음 원작을 읽은 뒤 분석, 공동창작, 연습 그리고 공연까지 약 2년 반 정도 걸렸다. 예를 들어 출연 배우들 가운데 2명은 아예 읽고 쓸 수 없지만 외우는 것만은 비장애인보다 훨씬 뛰어나다. 장애예술은 이런 장애인 각각의 개별적 상황을 고려하는 게 우선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재 운영진 7명이 일하고 있는 국립적응창작센터는 출범 이후 프랑스 전역에서 찾아오는 장애예술 단체에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스갱 센터장이 직접 찾아 나서기도 한다. 출범한 지 얼마 안 된 만큼 지금은 장애예술 단체를 발굴하는 게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스갱 센터장은 “처음엔 우리가 발굴할 수 있는 장애예술 단체가 얼마 안 될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실상은 예상보다 훨씬 많았다. 특히 국립적응창작센터가 조금만 도우면 크게 성장할 것으로 기대되는 단체가 적지 않았다”고 피력했다. 이어 “국가 차원에서 장애예술 기관을 운영하는 곳이 세계적으로 많지 않다. 국립적응창작센터와 한국의 모두예술극장이 앞으로 의미 있는 교류를 계속하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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