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차투표 바람 탄 ‘조국의 돌격선’… 위력 만만찮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지난달 13일 부산에서 “더불어민주당보다 더 진보적이고 더 강하게 싸우는 정당을 만들겠다”며 신당 창당을 선언했을 때만 해도 조국신당에 대한 기대감은 크지 않았다. 거대 양당을 비판하는 제3지대 신당이 이미 출범한 데다 자녀 입시비리 문제 등으로 1, 2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조 전 장관이 총선용 정당을 만드는 데 대한 반감이 컸다.
그러나 지난 3일 정식 창당한 조국혁신당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정국 변수로 떠올랐다. 야권 지지층 사이에서 ‘지역구는 민주당, 비례대표는 조국혁신당’을 찍자는 교차투표 바람이 불면서 민주당의 비례대표 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을 위협하고 있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조국혁신당과의 선거 연대에 선을 그었던 민주당의 태도도 180도 달라졌다. 이재명 대표는 지난 5일 국회에서 취임 인사차 예방을 온 조 대표를 만나 손을 맞잡고 “윤석열 정권 심판에 힘을 합치자”고 말했다. 조 대표는 “조국혁신당은 먼저 돌격하는 망치선 역할을 하겠다. 본진이 적선을 호위해 승리했던 학익진처럼 승리하자”고 호응했다.
선거 전문가들은 조국혁신당이 이 대표의 사천 논란과 계파 갈등에 분노한 친문(친문재인)계 지지자들의 표심을 흡수하면서 몸집을 키우고 있다고 분석했다. 민주당 분란이 격화될수록 조국혁신당이 반사이익을 얻는 구조라는 것이다.
총선 전망은 엇갈린다. 조국혁신당이 비례대표로만 최소 5~6석을 확보해 민주당의 파트너를 자처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반면 친문계가 주축인 조국혁신당은 결국 친명(친이재명)계가 주류인 민주당과 갈등을 빚을 수밖에 없다는 분석도 있다.
한국리서치가 KBS 의뢰로 지난달 25~27일 휴대전화 가상번호를 이용해 진행한 전화면접조사에 따르면 ‘이번 총선 때 비례대표 선거에 투표할 정당은 어디인가’(일부 정당은 당명 확정 전)라는 질문에 조국신당을 선택한 응답자가 9%로 나타났다. 이준석 대표의 개혁신당(3%)과 이낙연 공동대표의 새로운미래(1%) 지지율은 비례대표 의석 할당 하한선(3%) 수준이거나 밑돌았다. 민주당이 주도하는 범야권 통합비례정당은 23%로 국민의힘 비례정당인 국민의미래(32%)에 9% 포인트 뒤처졌다(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조사 다음 날 선거가 치러진다고 가정하면 조국혁신당은 비례의석 46석 중 6석을 가져갈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친문 지지자들이 조국혁신당을 새로운 구심점으로 여기고 있다고 해석했다. 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는 8일 “민주당이 공천 문제로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출범한 조국혁신당이 최대 수혜자로 떠올랐다”고 말했다. 앞서 여론조사에선 지역구 투표 때 민주당 후보를 뽑겠다는 응답자 중 22%가 정당 투표에서는 조국혁신당을 지지하겠다고 응답했다.
지난달 중순 민주당에선 공천 파동이 본격화했다. 민주당 공천관리위원회는 친문계 핵심인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을 서울 중·성동갑 공천에서 컷오프(공천 배제)했다. 이어 당 원내대표를 지낸 홍영표 의원을 컷오프했다. 당내에선 ‘친명횡재, 비명횡사’라는 평가가 나왔다. 이를 기점으로 친문 지지자들이 조국혁신당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조국혁신당의 약진은 더불어민주연합에는 위기다. 지난 2일 발표된 여론조사기관 리서치뷰의 2월 말 정기조사(2월 27~29일)에 따르면 ‘비례대표 투표를 어느 당에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조국혁신당 지지율은 22%로 나타났다. 국민의미래는 34%, 더불어민주연합은 8%로 나타났다.
조국혁신당도 이런 표심을 의식하고 있다. 조 대표는 지난달 29일 원주시청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범진보 진영 승리를 위해 비례는 조국혁신당을 찍고 지역구는 민주당을 찍어 달라”고 호소했다.
조 대표는 지난 5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조국혁신당이 더불어민주연합과 제로섬 싸움을 벌일 것이란 분석에 대해 “투표율 상승 등을 고려하면 전체적으로 봤을 때 범민주 진보진영의 파이가 커지는 효과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반박했다.
조국혁신당 지지율이 상승하자 민주당 태도도 달라졌다. 더불어민주연합 창당을 추진해 온 박홍근 민주당 의원은 당초 “조국신당을 선거연합의 대상으로 고려하기 어렵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둔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이 대표는 조 대표를 만나 선거 연합 의지를 드러냈다. 조 대표가 “(이순신 장군의) 학익진처럼 승리하자”며 협력을 강조하자 이 대표는 “같이 승리해야 한다”고 화답했다.
더불어민주연합을 이끄는 윤영덕 공동대표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윤석열정부 심판과 민주주의 회복이라는 시대적 과제, 역사적 책무에 동의하는 세력이 각자의 위치에서 대의에 복무할 수 있다면 그건 나쁘게 볼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며 “더불어민주연합도 더 많은 지지를 얻고 선의의 경쟁이 이뤄지도록 열심히 준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조국혁신당이 친명계 위주의 민주당과 어느 순간 대립각을 세울 수 있다는 해석도 여전히 제기된다. 김 석좌교수는 “이번 공천은 결국 친명이 친문을 쳐낸 것이기 때문에 친문이 주를 이루는 조국혁신당은 민주당과 반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택현 기자 alle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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