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때는 애지중지, 리폼은 애물단지
명품 가격이 해마다 고공행진하면서 리폼 업체의 문을 두드리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 적은 비용으로 명품의 수명을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리폼을 선택하면 물건에 담긴 추억도 간직하면서 원하는 디자인으로 재탄생시키는 것이 가능하다. 이에 리폼은 명품 구매의 대안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다만 리폼 업체가 우후죽순 늘어나면서 또 다른 문제를 낳고 있다. 전문성이 떨어지는 업체도 덩달아 증가하고 있어서다. 이런 업체는 리폼에 필요한 기술이나 부자재가 없어 어설픈 결과물을 내놓거나 물건을 아예 돌려주지 않기도 한다. 리폼의 경우 상품 구매와 별개인 ‘개인 간 거래’로 인정돼 피해 보상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 소비자가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8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올해 주요 명품 제품 가격이 일제히 상승했다. 에르메스 인기 가방 제품의 가격 인상률은 10~15%를 기록했다. 인기 제품인 미니 린디 가격은 898만원에서 1009만원으로 올랐다. 루이비통도 베스트셀러인 ‘네오노에BB’ 가격이 258만원에서 274만원으로 인상됐다. 샤넬은 올해 가격을 인상하지 않았지만 인기 상품인 ‘클래식 플립백’ 스몰 사이즈는 지난 한 해에만 가격이 12.36% 올라 1390만원에 판매 중이다.
불경기에 가격 고공행진까지 겹치면서 명품 소비는 주춤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백화점의 명품 매출은 지난해 8월부터 4개월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지난 1월에는 6.6%의 매출 증가율을 기록하면서 반등에 성공했지만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1년 한 해에만 매출 증가율이 37.9%를 기록했던 것보다 낮은 성장세다.
반면 명품 리폼산업은 계속 몸집을 불리는 중이다. 명품 리폼 전문 플랫폼인 ‘럭셔리앤올’은 매출액이 2021년 11억원에서 한 해 만에 54억원으로 뛰었다. 이 업체에 견적을 의뢰한 고객은 4만702명에서 1년 만에 12만5728명으로 늘었다.
업계 관계자는 “명품 리폼 시장이 형성된 지 얼마 안 돼 정확한 규모를 가늠해볼 만한 통계는 부족하다”면서도 “최근 들어 수요는 증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가격 대비 성능(가성비)과 심리적 만족도(가심비)를 모두 추구하는 소비 경향이 확산하면서 명품 리폼이 주목받고 있는 셈이다.
천수경(24)씨는 “잘 사용하지 않던 명품 가방이 있었는데 가죽을 살려 카드지갑과 키케이스 등으로 리폼했다”며 “먼지가 쌓인 채 내버려두기보단 훨씬 만족스러웠다”고 했다. 리폼 비용은 가방의 경우 50만~100만원가량이다. 최소 수백만원에 달하는 새 명품 가방 구매 비용보다 저렴하다.
리폼 수요가 커지면서 직접 업체를 차리는 이들도 증가하고 있다. 다만 명품 리폼 업체를 운영하기 위해선 기술과 자본을 모두 갖춰야 한다.
업계에 따르면 명품 리폼 기술을 연마하기 위해선 최소 3년의 기간이 필요하다. 초기에는 유명 브랜드 제품을 반복해서 뜯어보며 어떤 부자재가 사용됐고, 박음질은 어떻게 이뤄졌는지 연구하는 게 일반적이다. 명품의 기본적인 제작 구조를 익힌 이후부터는 실제 리폼 작업에 참여하면서 손기술을 기르는 단계에 접어든다. 유명 제품에 사용된 것과 같은 가죽이나 단추 등을 리폼에 쓰려면 부자재 공급망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처럼 명품 리폼 사업에 진입하기 위한 문턱은 꽤 높은 편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기술과 자본을 갖추지 못한 채 시장에 뛰어드는 이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업계 관계자들은 작업 기간이 지나치게 짧거나 리폼 비용이 저렴하면 의심해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통상 한 명의 장인이 수개월에 걸쳐 가방 1개를 리폼한다. 명품에 사용된 부자재 가격이 만만치 않은 것을 고려하면 최소 작업 비용은 50만원대라고 한다. 하지만 일부 업체는 작업자 1명이 여러 건의 의뢰를 접수하거나 50만원 미만의 비용을 받고 있다.
배범준 럭셔리앤올 이사는 “수요가 있으니 기술은 없어도 점포를 열 보증금만 있으면 일단 사업을 시작하는 업자가 있다”며 “가품을 사서 돌려주거나 먹튀하는 사례도 있어 리폼업계의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에 따라 부실 리폼 업체를 이용하는 소비자들의 피해도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 경기도 안양 만안경찰서는 명품 리폼 업체 대표 김모씨에 대한 고소장을 여러 건 접수했다.
현재 김씨는 서울 강남구에서 명품 리폼 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피해자 30여명은 김씨에게 가방과 지갑 48개를 맡기고 리폼을 의뢰했지만 6개월이 넘도록 돌려받지 못한 상황이다. 이들이 김씨 업체에 지급한 수선 비용은 약 2100만원이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이들이 맡긴 가방과 지갑 가격은 총 7700만원 상당이다. 피해자 A씨(40)는 “10년 전 첫 월급으로 산 가방인데 소중한 추억을 도둑맞은 느낌”이라고 전했다.
김씨는 자신이 43년 동안 가죽 수선 일을 했다고 홍보했다. 하지만 동종 업계 관계자들은 김씨가 리폼 업체에 근무한 경력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억울한 소비자들이 피해를 보상받을 길이 없는 것도 문제다. 리폼 의뢰의 경우 물품 구매와 달리 ‘개인 간 약속 또는 거래’로 분류된다. 이에 한국소비자원 등은 분쟁이 발생해도 개입하기 어렵다. 명품 리폼 업체를 감독할 기구도 딱히 없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물품 미반환 등 리폼 관련 사고가 발생해도 소비자로선 피해 보상을 받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배 이사는 “문제가 되는 업체를 걸러내고, 명품 리폼업계가 자정할 수 있도록 돕는 기구나 관련 제도 도입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김재환 기자 j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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