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지 못하는 집’ 대출 축소에 1억 마피까지

정다운 매경이코노미 기자(jeongdw@mk.co.kr) 2024. 3. 8.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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엎친 데 덮쳤다…생활형숙박시설

# 서울 강서구 9호선·공항철도 환승역인 마곡나루역 5번 출구를 나오면 공사가 한창인 생활형숙박시설(생숙) ‘마곡롯데캐슬르웨스트’ 현장이 보인다. 올 7월 준공을 앞둔 이 생숙은 이미 10층 넘게 골조 공사가 진행된 상태다.

한때 다주택자 규제 회피 수단으로 인기를 누렸던 생숙이 진퇴양난에 빠졌다. 주거용으로 사용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분양받아 입주를 앞뒀지만 정부 규제가 풀리지 않은 탓에 직접 거주할 수 없어서다. 그렇다고 전세 세입자를 받을 수도, 그렇다고 대출을 받기도 여의찮다. 뚝 떨어진 인기에 제값 받고 분양권을 팔 수도 없는 처지라 수분양자들은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마곡롯데캐슬르웨스트 수분양자들은 올 7월 준공을 앞두고 골머리를 앓고 있다. 정부가 생숙 규제를 끝내 완화해주지 않으면서 입주가 불투명해진 데다 대출 한도도 절반가량 확 줄어든 상황이라서다.

마곡롯데캐슬르웨스트는 지하 6층~지상 15층, 5개동, 총 876실 규모 생숙이다. 2021년 분양 당시 58만여명의 청약자가 몰려 화제가 됐다. 정부의 다주택자 규제 강화로 생숙이 대체재로 떠오르던 시기였다. 전용 84~88㎡ 분양가가 14억~17억원대에 달했지만 49~111㎡ 모든 타입에서 세 자릿수 이상 경쟁률을 기록했다. 평균 청약 경쟁률은 657 대 1, 최고 경쟁률은 6049 대 1에 달했다.

하지만 생숙은 이내 외면받기 시작했다. 국토교통부는 2021년 5월 건축법 시행령을 개정해 생숙의 숙박업 신고를 의무화하고 이를 어길 경우 건물 시가표준액의 10%에 해당하는 이행강제금을 부과하기로 했다. 국토부는 이행강제금 처분을 올해 말까지 유예했지만 생숙을 ‘준주택’으로 인정해달라는 요구는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9월 생활형숙박시설 소유주와 거주자들이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국토교통부 앞에서 강제이행금 폐지 등을 촉구하는 모습. (연합뉴스)
마곡르웨스트 마피만 1.6억

자산 가치 하락에 대출 한도 ‘뚝’

문제는 실거주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한 수분양자들이다. 숙박시설인 생숙은 관련법상 소유주가 직접 거주하거나 전입신고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대출을 받기도 여의찮다.

업계에 따르면 금융권에서 마곡롯데캐슬르웨스트 잔금 대출 한도는 감정가의 30~50%대로 책정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통상 잔금 대출은 시행사가 금융사와 협약을 맺고 준공 2~3개월 전부터 진행한다.

아직 금융기관이 확정되기 전이지만 은행권은 생숙이 직접 거주를 할 수 없는 위험자산이며 담보 가치가 떨어졌다고 판단하는 분위기다. 담보대출 취급을 기피하면서 대출 한도 축소에 나선 것. 정부가 생숙은 ‘거주 불가’라고 명확히 한 데다, 금리가 뛰면서 위탁사에 맡겨 수익형으로 운영하는 생숙 수익률이 떨어진다는 이유에서다.

한 수분양자는 “분양받을 당시에는 분양가의 70~80% 대출이 가능하다고 해서 계약했는데 큰일”이라며 “아파트는 대출이 어려울 경우 전세라도 놔 잔금을 맞출 수 있겠지만, 생숙은 세입자를 받을 수도 없다”고 토로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1금융권에서는 생숙 담보 대출을 취급하지 않으려 한다. 2금융권이 취급하기는 하는데 경매로 넘어온 생숙 낙찰가율이 너무 낮아 고위험 상품으로 본다. 대출 한도가 많아야 50% 정도고, 금리도 높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최근 마곡롯데캐슬르웨스트에서는 최초 분양가보다 1억원 이상 낮은, 일명 ‘마피(마이너스 웃돈)’ 매물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대출받아 잔금을 낸들, 이자 부담이 크고, 차익을 기대하기도 어려워졌고, 숙박업 운영도 쉽지 않으니 수분양자가 사실상 계약금(분양가의 10%)을 포기한 셈이다.

분양가만 17억원대였던 전용 88㎡는 1억6000만원 넘는 ‘마피’가 붙어 14억6000만원까지 호가가 떨어졌다. 마곡롯데캐슬르웨스트에는 마피가 1억원 이상인 매물이 쏟아지고 있다.

마곡동 A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마피로 나온 매물마저 거래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생숙은 요새 찾는 사람도 없지만, 함부로 매수를 권하기 어려운 상품”이라고 말했다.

이런 마피 매물은 마곡롯데캐슬르웨스트만의 얘기가 아니다. ‘인천의 강남’으로 통하는 송도에서도 마피가 붙은 생숙 분양권 거래가 속출하고 있다. 올 6월 인천 연수구 송도동에 준공될 생숙 ‘힐스테이트송도스테이에디션’ 전용 84㎡ 분양권은 최고 9400만원까지 마피가 붙었다. 호가는 5억4600만원 선까지 내려갔다. 한때 ‘뉴욕 레지던스’를 표방해 역세권에 수영장까지 갖춘 최고급 호텔 같은 시설로 투자 가치가 높다는 평가를 받았다. 2020년 청약 당시 608실 모집에 6만5000명 이상이 접수했을 정도다.

숙박업 등록을 마치지 못한 전국 10만실 규모 생활형숙박시설이 대출 한도는 줄고 실거주도 불가능한 진퇴양난에 빠졌다. 사진은 오는 7월 서울 강서구에서 준공 예정인 생활형숙박시설 ‘마곡롯데캐슬르웨스트’ 공사 현장. (윤관식 기자)
내년까지 생숙 1만실 입주하는데

용도변경 못하면 강제이행금 내야

문제는 마곡롯데캐슬르웨스트나 힐스테이트송도스테이에디션처럼 오도 가도 못하는 생숙이 1만실이 넘는다는 점이다.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올해와 내년에만 전국에서 생숙 1만3801실이 준공될 예정이다.

물론 실거주가 가능해지는 방법은 있다. 생숙을 오피스텔로 용도변경하면 된다. 다만 과정이 만만치 않다.

우선 현재 상업지역, 녹지지역 등을 주거지역, 준주거지역으로 변경해야 하는데 건축물의 분양에 관한 법률 등에 따라 준공된 단지는 주민의 80%, 준공 전 단지는 주민 100% 동의를 받아야 용도를 변경할 수 있다. 동의를 모두 받았더라도 걸림돌이 많다. 주차장 확보가 대표적이다. 오피스텔로 바꾸려면 주차장 면수를 더 늘려야 하는데, 이를 위해선 지자체 조례를 바꾸거나 건축물을 뜯어내고 다시 지어야 한다. 복도 폭 확대도 같은 맥락이다.

이런 이유로 건축법 시행령 개정 이후 지금까지 오피스텔로 용도가 변경된 생숙은 1173실에 그친다. 그동안 전국 592개 단지에 생숙 10만3820실이 공급된 점을 감안하면 전체의 1.1%만 용도변경에 성공한 셈이다. 롯데캐슬르웨스트의 경우 수분양자 99% 동의가 있었지만 1%(8가구) 미동의로 용도변경을 신청 못했다.

정부가 생숙을 준주택으로 볼 수 없다는 방침을 분명히 한 가운데, 끝내 용도변경을 하지 못할 경우 수분양자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세 가지다.

우선 오는 10월부터 매년 공시가격의 10%에 해당하는 이행강제금을 물며 거주하는 방법이 있다.

가령 생숙 공시가격이 2억원이면 매년 2000만원이 부과되기 때문에 부담이 크다. 이행강제금을 내지 않기 위해 생숙의 원래 목적대로 숙박업을 운영하는 방법도 있다. 다만 영업 신고는 30개실 이상부터 가능하기 때문에 운영업체에 위탁을 해야 한다. 이 경우 인테리어 비용을 비롯해 수수료 등을 수분양자가 부담해야 한다. 최후의 수단은 생숙을 되파는 것이다. 하지만 부동산 매수 심리가 위축된 데다 생숙 시장은 외면받다시피 하고 있어 매수자를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49호 (2024.03.06~2024.03.1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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