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언론 공격수'들 퇴장하고, '언론 탄압' 장본인이 오나
[곽우신 기자]
▲ 왼쪽부터 국민의힘 박성중, 윤두현, 홍석준 의원. |
ⓒ 남소연 |
박성중(재선, 서울 서초을), 윤두현(초선, 경북 경산), 홍석준(초선, 대구 달서갑).
국민의힘 소속 세 명의 국회의원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하나, 셋 모두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대(對) 좌파언론' 전선을 형성한 공격수들이었다. 둘, 셋 모두 다음 국회에서 얼굴을 볼 가능성이 희박하다. 차기 국회의원 총선거에 나서지 못 하거나, 수도권 험지로 차출된 것. 제21대 국회에서 특정 언론사와 프로그램, 출연진을 향해 '좌파' 딱지를 붙이며 맹공격하는 데 매진했던 이들이 쓸쓸하게 퇴장하는 그림이다.
이들은 지난 4년 내내 '편향성' 의혹을 제기하며 MBC와 KBS, YTN 등 방송사들에게 '좌편향' 딱지를 붙여 왔다. 민주노총 산하의 전국언론노동조합이 특정 언론사들을 장악했고, 이들이 '친민주당' 성향의 보도를 하면서 여론을 왜곡시켰다는 게 주요 논지였다. 이 과정에서 시민단체뿐만 아니라 한국기자협회나 방송사 직능단체들까지 '친민주당' 성향이라고 매도했다. 시사 라디오 진행자들과 출연자들의 성향을 분류해 공개적으로 비난하기도 하고, 적극적으로 법적 고발 조치에 나서는가 하면, 국정감사에서 자료요구권을 활용해 공격하기도 했다.
문재인 정권에서 임명된 방송통신위원장과 방송통신심의위원장에게 사퇴 압박을 가한 것도 이들이다. 한술 더 떠 SNU팩트체크센터처럼 다양한 성향의 언론사들이 서울대학교 언론정보연구소와 제휴해 팩트체크에 나서는 것까지 무리하게 문제 삼았고, 포털사에도 압력을 행사해 결국 네이버가 이들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는 데 톡톡한 몫을 해냈다.
▲ 국민의힘 정영환 공천관리위원장이 8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제18차 회의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 연합뉴스 |
국회 과방위에서 국민의힘 간사를 맡으며, '최전방 공격수'를 자임했던 박성중 의원은 자신의 지역구에서 3선을 노리지 못하게 됐다. 경남 남해 태생의 서초구청장 출신 재선 의원은 별다른 연고가 없는 경기도 부천시을에 재배치됐다. 대신 서초을은 경쟁자였던 신동욱 전 TV조선 앵커가 단수추천됐다. 사실상 박 의원이 서초을에서 '컷오프' 된 모양새이지만, 박 의원 측은 이같은 언론의 해석에 거세게 반발했다.
박 의원은 8일 오전,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캠프 명의 입장문을 올리고 "박성중 의원은 국민의힘 공관위의 험지 출마 요청에 따라 '경기 부천을'로 전략공천 된 것"이라고 항변했다. "실제로 박 의원은 그동안 세 차례 이상의 공관위의 요청에 따라 험지 출마를 준비했고, 3월 5일 오전까지 막바지로 조율 중인 상황"이었다는 것.
특히 "컷오프는 공천심사 점수가 하위 10% 기록한 후보에 적용되는 기준"이라며 "하지만 박 의원은 의정활동 내내 당기여도, 지역구 활동, 당무감사 등에서 항상 최상위에 있다는 평가를 받은 게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선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무분별하게 확산된 '박성중 의원의 컷오프설'을 인용한 각 언론사에게 정정보도를 요구"한다고도 덧붙였다.
문제는 부천을의 지역구 성향을 고려했을 때, 박 의원이 자력으로 단독 돌파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부천을의 현역 의원은 최근 더불어민주당에서 새로운미래로 당적을 옮긴 설훈 의원이다. 이 지역구에서 내리 3선을 했다. 부천 태생의 이사철 전 의원이 15대와 18대 때 배지를 달았을 때를 제외하면, 보수정당에 쉽사리 표를 주지 않는 곳이다. 민주당과 새로운미래의 경쟁 구도 속에서 어부지리를 노려야만 한다.
"지난 4년 동안 거대 야당 폭거와 입법 폭주에 맞서기 위해 선봉장이 되어 총 530회의 언론 활동을 통해 야당의 가짜뉴스, 왜곡, 선동에 적극 대응"했다던 홍석준 의원은 전직 대통령 박근혜씨의 복심인 유영하 변호사에게 밀려 공천에서 배제됐다. 앞서 당의 "정무적 판단"을 의심하며 이의를 제기했던 홍 의원도 이날 승복 의사를 밝혔다.
그는 기자들에게 배포한 긴급 입장문을 통해 "위성정당을 만들면서 자유대한민국을 위협하는 종북좌파 세력까지 끌어들이려 하는 민주당을 반드시 막아야 한다"라며 "대한민국의 운명이 걸린 이번 총선에서 오직 국민의힘의 승리만을 바라는 선당후사의 마음으로 당의 결정을 수용하겠다"라고 알렸다. 국민의힘 지역구 공천이 대부분 마무리됐고, 홍 의원 본인 역시도 지역구 재배치에 부정적인 의사를 밝힌 만큼, 이번 총선에서 얼굴을 볼 수 없게 됐다.
윤두현 의원은 본인 지역구에서 무소속으로 출마를 준비 중인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가 여러 여론조사에서 앞서는 것으로 나오자 스스로 출마를 포기했다.
▲ 2018년 5월 13일, 김장겸 전 MBC 사장이 서울 송파구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배현진 송파을 후보의 선거사무소 개소식에 참석해 눈길을 끌고 있다. |
ⓒ 남소연 |
이처럼 의정활동 대부분이 한 분야에 매몰돼 있던, 소위 '원툴(여러 능력치 중 하나만 준수하고 나머지는 모두 부족한 선수)' 정치인들은 한계를 드러냈다. 국민의힘은 선거철이 되자 이들을 '토사구팽'하는 모양새다. 하지만, 이들이 물러난다고 해서 국민의힘의 기본적인 언론관이나 원내 미디어 전선이 바뀔 것 같지는 않다. 당장 TV조선 같은 보수 언론사 출신 인사들이 금배지를 달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국민의힘의 비례대표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에 공천을 신청한 김장겸 전 MBC 사장 같은 인사가 원내에 입성한다면, 이들의 뒤를 그대로 이을 가능성이 크다. 이미 김 전 사장은 오래전부터 국민의힘 당적으로 포털TF 공동위원장, 가짜뉴스·괴담 방지 특별위원장 등 관련 활동을 해왔다. 그는 이번에 공천을 신청하면서 "민주당과 언론노조의 '공영방송 영구장악' 시도를 저지하고 정상화시켜 국민의 품으로 돌려주라는 주변의 염원을 들었다"라고 밝혔다.
김장겸 전 사장은 이전 보수정권 하에서 대표적인 언론탄압 첨병이었다. 그는 2017년 MBC 사장 재임 당시, 전국언론노조 MBC본부 소속 조합원들을 부당 전보하거나 조합 탈퇴 압박을 가하는 등 불이익을 주는 형태로 노동조합 활동에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그는 지난해 대법원에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 유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또한, 그가 자신의 해임이 부당하다며 MBC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은 기각됐다. "유죄 판결에서 인정된 원고 김장겸의 행위는 근로자 노동권을 침해하는 범죄 행위일 뿐 아니라 공공적 성격을 가진 방송사의 공정하고 합리적인 운영을 저해하는 행위"라고 재판부가 인정한 것. 그럼에도 윤석열 대통령은 그를 지난 2월 설날을 앞두고 단행된 특별사면 대상에 포함시켰다. 피선거권을 복구해 국회의원 출마 길을 터준 셈이다.
야당의 반발은 거세다. 녹색정의당은 지난 7일 김수영 선임대변인 명의의 논평을 통해 "재판부는 김 전 사장에 대해, '우리 사회의 감시자 역할을 해야 할 언론사가 정작 내부 노사관계에서 기본 원칙을 무시하고 부당노동행위를 한 매우 심각한 사안'이라 지적했다"는 점을 꼬집으며 "일련의 과정이 차마 지켜보기 부끄럽고 낯이 뜨겁다. 국민의힘은 대한민국 정치를 희화화하지 마시라"라고 밝혔다.
민주당 역시 6일 최혜영 원내대변인이 "윤석열 대통령이 대법원 판결 불과 4개월 만인 지난 2월에 김장겸 전 사장을 사면한 이유가 국회의원 출마 길을 열어주려는 목적이었느냐?"라고 따져 물었다. 그는 "대통령 인사권이 피의자 도피용 수단으로 전락하더니 대통령 사면권은 범죄자들의 구명줄을 넘어 출세길을 열어주는 레드카펫으로 타락했다"라며 "불과 반 년도 안 돼 법원이 유죄를 선고한 범법자가 뻔뻔하게 국민의 대표가 되겠다고 나서다니 기가 막히다. 대통령 사면권이 범죄자의 구명줄, 출세길이 되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그러자 국민의힘은 적극적인 방어 태세를 취하고 나섰다. 윤두현 의원이 위원장으로 있는 미디어커뮤니케이션특위는 "과도한 비난"이라며 "사면 결정과 김 전 사장의 공직 출마를 연결 짓는 최 원내대변인 주장에는 아무런 실체와 근거가 없다. 대표적인 마타도어이자 거짓 프레임"이라고 맞받았다.
되레 "무엇보다 김장겸 전 사장은 문재인 정권 방송장악의 최대 피해자"라며 사법부 판단을 부정하는 듯한 뉘앙스마저 보였다. 이들은 "아울러 다른 당 공천 신청자의 사법 문제를 운운할 시간에, 전과 4범을 훌쩍 넘기는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사법리스크부터 먼저 살펴보는 것이 순서에 맞을 것"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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