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나 말지...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의 엉터리 법치주의

안홍기 2024. 3. 8.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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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 '피의자' 호주대사 임명, 방심위 법원 결정은 모르쇠...전공의 압박 땐 '법치' 강조

[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기자들이 취재 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롭게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안홍기 기자]

▲ 이종섭 전 국방부장관 호주 대사 임명 철회 촉구 해병대 고 채 상병 순직 사건 수사 외압 의혹과 관련, 임태훈 전 군인권센터 소장이 7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이종섭 전 국방부장관의 호주 대사 임명 철회를 촉구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 이정민
 
호주대사를 임명했는데, 출국금지 대상자였다. 대통령실은 해병대원 순직 사건 수사에 외압을 행사한 의혹이 제기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직권남용 혐의로 입건한 이종섭 전 국방부장관이 호주대사로 임명됐다. 대통령실은 출국금지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특히 출국 금지 같은 경우에는 본인조차도 대부분의 경우에는 출국을 하려고 공항에 갔다가 알게 되는 경우가 많을 정도로 본인에게도 고지가 되지 않습니다. 더더구나 대통령실이나 대통령께서 공수처의 수사 상황에 대해서는 물을 수도 없고 답해 주지도 않는, 법적으로 금지된 사안이기 때문에, 저희로서는 알 길이 없었을 것이 너무나 당연하고, 관련된 후속 조치들은 공수처에서 알아서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7일 대통령실 관계자

그럼 법무부는? 출국금지는 법무부 소관인데 법무부는 정부가 아니란 말인가. 더구나 법무부는 고위공무원단에 대한 인사검증도 맡고 있다. 국방부장관 후보자가 되면서 인사검증을 거쳤다는 이유로 2년 여 뒤 호주대사 임용에 대한 인사검증을 생략했다면, 법무부가 할 일을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밖에 되지 않는다. 

지금 상황만 놓고 보면,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법무부장관 시절 미국 FBI의 인사검증시스템을 배우겠다며 출장까지 갔다 와서 만든 인사검증시스템은 외국 대사로 나갈 인물에 대한 검증은커녕, 출국금지 된 사람이 주요국 주재 대사로 임명되는 걸 눈뜨고 바라볼 수밖에 없는 상태라는 게 드러났다.

출국금지를 모르고 임명했든 알고서도 임명했든, 법무부는 출국금지를 해제했고 호주대사가 된 이종섭 전 국방부장관은 결국 한국을 떠날 것이다. 피의자가 한국을 떠나면 이후의 수사는 차질을 빚을 것이 명백하다. 고위 공직자의 범죄를 수사하는 기관의 힘을 빼는 일에 정부가 일조하는 이상한 상황인 것이다. 

방송통신위법은 무시, 의사 집단행동엔 이중잣대

하지만 윤 대통령은 법치주의를 부르짖는다. 지난 6일 윤석열 대통령은 "의사들의 집단행동은 스스로 책무를 저버리는 일이며, 자유주의와 법치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라며 강경 대응 방침을 밝혔다.

반면 "진료지원 간호사 PA는 시범 사업을 통해 이분들이 전공의의 업무 공백을 메우고 법적으로 확실하게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의료법은 간호사가 진료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 그래서 정부는 '시범사업'이라고 해서 숙련된 간호사가 의사 없이 진료하는 걸 법적으로 보호하겠다고 한 것이다.

의사 늘리기에 반대한 의사들의 직무방기에는 법치주의 잣대로 대응하면서, 의료진 공백을 메우기 위해 의료법 위반을 눈감아 주겠다고 한다. 처음부터 법치주의를 내세우지나 않았다면 조금은 덜 모순적으로 느껴졌을 테다. 
 
 윤석열 대통령이 3월 4일 대구 북구 경북대학교에서 '첨단 신산업으로 우뚝 솟는 대구'를 주제로 열린 열여섯 번째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정부는 법원의 결정도 무시되기 일쑤다. 법원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김유진 심의위원 해촉처분의 집행정지를 결정했고, 이에 따라 지난 5일 김 위원은 방송심의소위원회에 복귀하고자 했지만 류희림 위원장이 참석을 막았다.

법원 결정대로 김 위원 해촉 사유는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들었는데도, 앞서 윤 대통령은 위원회가 올린 김 위원 해촉안을 결재하고, 재깍 후임 위원을 위촉했다. 법원 결정으로 김 위원이 복귀하게 되면서 대통령 추천 방심위원이 '4명'이 됐다. 대통령 추천 방심위원을 3명으로 제한한 방송통신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을 위반하는 상황이 초래된 것이다.

김 위원 해촉이 무효라면, 법을 지키기 위해 김 위원 후임으로 위촉한 위원을 해촉하는 것이 상식적인 수순일 텐데, 윤 대통령은 방관할 뿐이다. 김진표 국회의장이 지난해 10~11월 야권 몫 방심위원 2명을 추천했지만, 윤 대통령은 현재까지 이들을 위촉하지 않고 있다. 대통령은 법을 무시하고 있다.

산업현장에서 죽거나 다치는 이들이 너무 많아서 지난 2021년 1월 중대재해처벌법을 제정했다. 시행은 1년 뒤이고, 50인 미만의 중소 사업장에 대한 적용은 3년을 유예했다. 중소 사업장도 이 법을 잘 지켜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유지되도록 유예기간 동안 예산을 써서 지원하고 지도하는 게 정부의 의무다. 하지만 유예기간이 끝나가자 정부는 다시 2년을 유예해 달라고 국회에 요청했다.

법을 고쳐달라고 하기 전에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정부가 뭘 했길래 법 시행 대비가 안 됐는지 반성하고 사과를 해도 모자랄 판에, 윤 대통령은 "야당의 무책임한 행위에 강력한 유감"을 표명했다.

수사를 받는 피의자는 출국금지를 풀어 외국으로 보내고, 위법 상황을 방치하며 방송통신심의위에서 야권 인사를 배제하고, 전공의가 없는 병원에선 간호사들을 상대로 의료법을 어겨 달라고 하고, 맘에 들지 않는 법을 고쳐주지 않으면 안 좋은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평생 법을 공부하고 집행한 대통령의 법치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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