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거부한 간호법 되살리나…파업 장기화 조짐에 긍정 시그널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폐기된 간호법이 되살아날 가능성이 커졌다. 전공의 파업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면서 의사의 진료 독점을 깨야한다는 분위기가 조성됐고, 이를 위해 간호사에 힘을 실어줄 필요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간호협회가 새로운 간호법의 필요성을 주창하고 나서자 대통령실·보건복지부·국민의힘이 일제히 긍정적인 신호를 보내고 있다.
대한간호협회 탁영란 회장은 4일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을 만나 "지난해 간호법안에 대한 재의 요구 사유를 해소한 간호사 법안을 준비하고 있다. 긍정적으로 검토해달라"고 건의했다. 이어 간호협회는 8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간호계는 국민이 더 안정적인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논란의 여지를 없앤 새로운 간호법을 추진할 것"이라며 보완된 형태의 간호법 입법에 나서겠다고 재차 나섰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주재한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오늘 간호협회에서 새로운 간호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며 "정부는 국민 보건 체계를 강화하는 의료개혁에 간호사의 의견을 경청하고 반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 총리는 "의료개혁은 의사·간호사·환자·보건 전문가와 국민 모두의 참여로 추진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대통령실 관계자도 "(법제화 방향이) 간호법이 될지, 간호사법이 될지, 아니면 의료법 개정안이 될지 아직 정해진 것은 없다"며 "간호사들이 어려움이 없도록 제도적 뒷받침을 하자는 데 중지가 모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1차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그때(지난해 5월) 간호법이 제기되었을 때 몇 가지 불가 사유를 제시한 것이 있다. 그래서 간호법이 재추진되려면 그게 해소되어야 법안으로서 성안이 될 것"이라며 "그것이 기본적인 입장"이라고 말했다.
이날 오후 국민의힘도 호응했다. 유의동 정책위의장은 이날 입장문에서 "의료개혁 전반을 논의하면서 그 안에서 간호법 문제를 다루는 것이라고 한다면 우리 당의 입장과 부합하므로 함께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을 의지가 있다"고 말했다. 유 의장은 "새로운 간호법은 현재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지역의료 강화, 필수의료 육성'이라는 의료개혁을 뒷받침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사유는 간호 업무의 탈(脫) 의료기관화로 인한 우려가 있고, 이로 인한 국민 건강의 불안감이 초래된다는 점이었다. 또 간호조무사·의사 등 유관 직업군과 간호사 간 갈등이 해결되지 않은 점이었다.
간호협회는 이런 사유를 해소한 법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고, 정부도 그게 해소되면 재추진할 수 있다고 호응해 법안 추진이 급물살을 탈 가능성이 커졌다. 게다가 정부 입장에서는 진료지원 인력, 일명 PA 간호사 시범사업을 8일 시작한 터라 간호계의 협조가 절실한 상황이다. 지난해 5월 간호법을 반대할 때는 정부가 의료계의 입장에 동조했지만, 이번에는 간호계와 협업해야 하는 상황이다.
현재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는 더불어민주당 고영인 의원이 대표 발의한 간호법안이 계류돼 있다. 국민의힘 최연숙 의원, 정의당 강은미 의원을 제외하면 민주당 의원 19명이 발의했다. 지난해 11월 발의됐지만 아직 복지위에 상정이 안 된 상태다.
법률명은 간호법안이다. 지난해 간호법에서는 '지역사회' 조항이 크게 문제가 됐는데, 고영인 의원 법안에서는 이게 사라졌다. 대신 보건의료기관, 학교, 산업현장, 재가 및 각종 사회복지시설 등으로 구체적으로 명시했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새로운 법안을 발의할 경우 고영인 의원 법안과 병합 심리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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