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대의 취업사기… 해외 일자리가 러 ‘총알받이’

송태화 2024. 3. 8.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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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인도·네팔 남성들 강제로 전장 투입
해외 일자리에 취업시켜 준다고 속여
강제 계약서 작성하게 한 뒤 ‘총알받이’
인도 남성 헤밀 만구키야(가운데)가 군복을 입은 다른 두명과 함께 서 있는 모습이다. 만구키야가 가족들에게 전송한 사진으로, 그는 현재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로이터연합뉴스

러시아가 다수의 인도·네팔 남성들을 해외 일자리에 취업시켜 준다고 속여서 우크라이나 전쟁에 투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7일(현지시간) 수십~수백명의 인도인들이 해외 일자리인 줄 알고 지원했다가 러시아에 의해 우크라이나 최전선에 보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들은 군 보조원 혹은 보안 요원으로 소개된 일자리에 지원했으나 영문도 모른 채 전쟁터로 끌려갔다.

23세 인도인 헤밀 만구키야의 경우 지난해 12월 러시아로 일하러 간다며 집을 떠났다. 그는 유튜브 구인 영상을 통해 전쟁과 전혀 관련 없는 보안 요원 직무에 지원했다.

하지만 실제로 보내진 곳은 군사 훈련소였고, 이후 우크라이나 최전방에 투입됐다. 러시아, 우크라이나와 전혀 관련 없는 인도 남성이 목숨을 건 채 우크라이나군과 싸워야 하는 상황이 된 셈이다. 만구키야는 이곳에서 참호를 파고 탄약을 나르고 소총과 기관총을 조작해야 했다. 사실상 ‘총알받이’가 된 것이다.

만구키야는 가족들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이 처한 상황을 알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만구키야의 연락은 끊겼고 가족들은 며칠 뒤 그가 우크라이나에서 미사일 공격으로 숨진 사실을 전화로 통보받았다.

다른 인도 남성들은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 일을 하러 가기 위해 출국했다가 중개인들에 의해 러시아로 보내진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에는 인도 펀자브주 출신이라는 7명의 인도인이 새해에 관광객으로 러시아를 방문했다가 붙잡혀 벨라루스로 이송돼 구금됐다고 주장하는 영상이 SNS를 통해 확산하기도 했다.

이 영상에서 한 남성은 “경찰이 우리를 러시아 당국에 넘겼다. 이들은 우리에게 문서에 서명하도록 강요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제 그들은 우리에게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싸우라고 한다”고 호소했다.

러시아는 네팔 남성들도 강제로 우크라이나 전쟁터로 끌고 가는 중이다. 네팔 정부는 자국민 수천명이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군에 들어가게 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에 최근 시민들에게 러시아나 우크라이나에서 일하는 것을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자발적으로 합류한 이들도 있지만 강제로 끌려간 이들도 상당수인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 중 대부분이 일자리가 부족한 빈곤 지역 출신이다. 전쟁에 투입된다는 언급 없이 고수입 일자리라는 거짓 약속에 속아 전쟁터로 향했다. 가디언은 중개인에게 수수료를 지불하기 위해 수천 달러의 빚을 진 이들도 많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전에서 숨진 네팔인은 공식적으로는 12명이지만 실제로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달 19일(현지시간) 도네츠크 거리에 러시아가 최근 아우디이우카 전선에서 빼앗은 우크라이나 전차 T-64가 세워져 있다. 러시아군은 이틀 전인 지난달 17일 도네츠크를 아우디이우카를 완전 장악했다고 발표했다. 타스연합뉴스

“전쟁터 안 가면 수년간 투옥” 협박

끌려간 인도·네팔 청년들은 러시아에 도착하면 군 당국이 여권을 빼앗은 뒤 강제로 계약서에 서명하게 한다고 증언한다. 계약서에는 러시아군에 1년간 복무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를 위반하면 러시아 감옥에 수년간 투옥된다.

러시아가 총알받이로 사용할 이들에게 군사훈련이나 제대로 된 처우를 제공할 리는 없다. 이들은 보름도 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무기 사용법과 기초적인 군사훈련만 받은 채 곧바로 격전지에 투입된다.

러시아군 병원에 있는 네팔인 난다람 푼은 SNS에서 만난 직업 중개인을 통해 독일에 있는 일자리를 약속받았다. 그는 경유지인 러시아로 오라는 말을 듣고 러시아로 향했다가 모스크바 군 훈련소로 입소했고, 이후 우크라이나 바흐무트로 보내졌다. 그는 이곳에서 우크라이나의 드론 공격에 부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졌다고 했다.

한 22세 네팔 학생은 의학을 공부하기 위해 러시아에 갔다가 러시아군에 강제 입대됐다. 그는 지난해 11월 우크라이나군에 포로로 붙잡힌 뒤 SNS에 도움을 요청하는 영상을 게시했다.

인도 정부는 자국민 20명이 러시아군에 있다면서 이들을 구출할 방법을 찾고 있다고 밝혔다.

네팔 외무부 대변인은 “우크라이나 전쟁터에 끌려간 이들을 데려오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정확히 몇 명의 자국민이 러시아에 있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네팔에서는 245명의 국민으로부터 가족이 러시아군에 갇혀있다는 청원서가 접수됐다.

송태화 기자 alv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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