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에게 머리 조아렸다" 바이든, 트럼프 겨냥 68분간 맹공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7일(현지시간) 임기 마지막 국정연설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공격하는 무대로 활용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1시간 8분간 이어진 연설에서 트럼프를 겨냥해 ‘전임자’라는 말을 13번 반복했다. 특히 “정직, 품위, 존엄, 평등 등 미국을 정의해 온 핵심 가치에 기반한 미래와 모든 사람을 존중하는 법”을 배운 자신과 달리 트럼프에 대해선 “내 또래의 다른 사람(some other people my age)은 분노와 복수, 보복이라는 이야기를 한다”고 했다.
‘또래’라는 말로 자신에게만 집중된 고령 논란을 희석시키는 동시에 이번 선거가 자신이 가진 ‘미국의 핵심가치’와 트럼프의 ‘증오의 정치’ 간의 대결이라는 프레임을 설정하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트럼프에 ‘親푸틴·親부자·反민주’ 공세
바이든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연설의 첫 소재로 삼았다. 그는 “전임자(트럼프)는 푸틴에게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했고, 러시아 지도자에게 머리를 조아렸다”며 “그것은 위험하고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역사가 지켜보고 있고, 나는 푸틴에게 머리를 조아리지 않겠다”며 의회가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을 조속히 처리해 줄 것을 당부했다. 파병에 대해선 “무기가 우크라이나가 요구하는 전부이고 미군을 요구하지 않는다”며 파병 논란에 선을 그었다.
바이든은 이어 “이제 낙수경제는 끝났고, 부유층과 대기업은 세금 감면 혜택을 받지 않는다”며 “억만장자가 교사, 환경미화원, 간호사보다 낮은 세금을 낼 이유는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대기업과 부유한 사람들이 정당한 몫을 지불해 연방 적자를 3조 달러(30985조 원) 줄이겠다”며 현재 15%인 법인세 최저세율을 21%로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바이든은 또 2020년 1·6 의회 난입 사태를 언급하며 “(의회에 난입한 사람들은) 국민을 선동하는 반란 세력”이라며 의회 난입을 조장한 혐의를 받고 있는 트럼프 전 대통령을 반민주 세력으로 규정했다. 그러면서 “선거를 훔치려는 민주주의의 큰 위협”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와 공화당이 지지하는 총기 소유와 관련해선 “전인자는 대통령일 때 총기에 대해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것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며 “공격용 무기와 대용량 탄창을 금지할 것을 요구한다”고 했다.
‘親여성·親다양성·親서민’ 프레임 역공
바이든은 이번 선거의 핵심 쟁점으로 부상한 낙태권 문제를 거론하며 여성 표심에 호소했다. 그는 임신 6개월까지의 낙태권을 인정했던 ‘로 대(對) 웨이드’ 판결이 재작년 대법원에서 폐기된 데 대해 “내게 ‘선택의 권리’를 지지하는 의회를 만들어 준다면 로 대 웨이드를 법률로서 회복시킬 것”며 “해당 판결을 뒤집었다고 자랑하는 사람들은 여성의 힘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트럼프가 이슈를 선점했다는 평이 나오는 국경 및 불법 이민 문제 악화에 대해선 트럼프와 공화당의 입법 방해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바이든은 국경 통제 강화 법안이 의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는 것과 관련 “전임자가 공화당 의원들에게 전화를 걸어 법안을 저지할 것을 요구했다고 들었다”며 “정치권에 돈을 지불하고 법안을 막기 위해 의원들에게 압력을 가하지 말고 법안 통과에 동참해달라”고 했다.
바이든은 그러면서도 “이민자를 ‘미국의 피를 오염시키는 독’으로 악마화하지 않겠다”며 이민자를 사실상 적(敵)으로 규정하고 있는 트럼프와의 차별화를 시도했다. 이날 연설에서 바이든은 미국 이민 역사를 자세하게 언급한 뒤 “나는 전임자와 달리 미국인이 누군인지 잘 알고 있다”며 “우리 모두는 어딘가에서 (미국으로) 왔고, 지금은 모두 미국인이 됐다”고 강조했다.
일자리 성과를 언급하면서도 특히 “흑인과 히스패닉, 아시아계 미국인을 위한 역사적인 일자리 증가와 중소기업의 성장으로 미국에서 80만 개의 새로운 제조업 일자리가 생겨났다”며 유색인종 등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층의 결집을 시도했다. 아랍계가 반발하는 이스라엘 전쟁과 관련해서도 “이스라엘은 하마스를 공격할 권리가 있다”면서도 “가자의 무고한 민간인을 보호할 책임이 있다”고 했다. 특히 “유일한 해결책은 ‘두 국가 해법’”이라며 가자의 자치권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직격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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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킬레스건 ‘고령 논란’ 정면 돌파
이날 바이든의 연설은 평소와 달리 시작부터 끝까지 매우 강한 톤을 유지했다. 나이 논란을 불식시키려는 의도로 보인다. 특히 그는 연설 말미에 자신의 나이에 대한 우려를 직접 언급하는 '정공법'을 택했다.
바이든은 “내가 꽤 오래 살았다”면서도 “내 나이가 되면 더 명확해지는 것들이 있다”며 민주주의와 정직함, 평등, 존엄, 존중의 가치 등을 언급했다. 나이가 논란 거리가 아닌 연륜의 측면에서 가치가 있다는 점을 강조한 말이다 그러면서 “우리가 직면한 문제는 우리가 얼마나 나이 들었느냐가 아니라, 우리 생각이 얼마나 낡았느냐”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바이든은 중국에 대한 견제를 언급하며 한국 등 동맹국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중국의 불공정한 관행에 맞서고 있고 대만 해협에서의 평화와 안정을 지킬 것”이라며 “인도, 호주, 일본, 한국, 도서국 등 동맹과 파트너십을 재활성화했고, 미국의 최첨단 기술이 중국의 무기에 사용될 수 없도록 했다”고 말했다. 당선될 경우 외교의 근간인 동맹외교를 보다 강화할 뜻을 밝힌 말로 풀이된다.
이날 연설에 대해 워싱턴포스트(WP)는 “분노의(fiery) 바이든이 공화당을 겨누고 재선 도전을 선언했다”고 했고, CNN은 “트럼프를 겨냥한 가장 정치적인 국정 연설이었다”고 평가했다.
워싱턴=강태화 특파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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