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애 공개' 카리나 사과문으로 본 K-POP 산업의 명암
[이진민 기자]
어느 아이돌의 연애에 대중은 축하했고, 팬들은 분노했다. 지난 2월 27일, <디스패치>는 에스파 카리나와 배우 이재욱의 열애 사실을 공개했다. 기사는 첫 만남부터 데이트하는 모습까지 낱낱이 공개했다. 열애설에 대중은 물론, 팬덤까지 크게 들썩였다. 두 사람 모두 이미지 변화를 겪었으나, 달랐던 건 이후 행보였다.
'배우' 이재욱은 온라인에서 자신을 비방하고 허위 사실을 포함한 악의적 의도의 모욕적인 게시글에 대한 법적 대응을 발표했고, '아이돌' 카리나는 자필 사과문을 게시했다. 카리나의 사과문에 대중은 분노했다. 사랑이 죄도 아닌데, 사과문까지 올리게 만든 아이돌 팬덤 문화가 기괴하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팬덤의 분노에는 나름의 이유와 역사가 있다.
4세대 팬덤 문화는 이른바 '유사연애', 혹은 '유사육아'라 불린다. 말 그대로 팬들이 아이돌과 친밀하고 그들을 육성하고 관리하는 매니저가 되었다는 것이다. 아이돌의 연인, 혹은 아이돌의 보호자가 된 팬들에게 열애설은 단순히 '질투심 유발' 정도가 아니다. 팬과 아이돌 사이에 얽힌 기형적인 애정, 그 심연에는 일그러진 K-POP 산업이 있다.
▲ '에스파' 카리나, 반짝이며 컴백 에스파(aespa) 멤버 카리나. |
ⓒ 이정민 |
논문 <소비자-팬덤과 팬덤의 문화정치>에 따르면 1996년 H.O.T 데뷔 이래 아이돌 팬덤 문화는 끊임없이 변화했다. 신비주의 콘셉트였던 1세대 아이돌의 팬덤이 신(神)과 같은 스타에게 절대적으로 헌신하는 신도였다면 2세대 아이돌부터 팬덤 문화는 다른 역할을 도맡게 되었다.
음반 산업이 쇠퇴하고, 음원 사이트가 등장하며 소속사는 수익 모델을 다변화하였다. 스타와 관련된 파생 상품을 적극적으로 판매하며 동시에 팬들의 욕망과 헌신을 상품에 대한 수요로 치환시켰고 마침내 '사랑하는 만큼 소비하라'는 팬덤 문화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이에 팬덤은 스타를 상품으로써 구매하며 동시에 스타의 상품성을 유지하기 위해 그들을 관리하고, 육성하는 매니저가 되었다.
3세대에 들어서 K-POP은 해외 시장으로 확장되었고 팬덤 역할은 매니저를 넘어 생산자가 되었다. 이젠 팬들이 자발적으로 직찍(직접 찍은 사진), 직캠(직접 찍은 영상), 팬아트, 뮤직비디오 해석 등을 하며 아이돌을 둘러싼 이미지를 구축하고 홍보에 나섰다. 또한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팬들은 좋아하는 아이돌, 혹은 연습생을 '진짜 스타'로 만들기 위해 열성적인 유료 투표에 참여하는 국민 프로듀서가 되었다.
4세대부터 소속사는 아이돌의 애정마저 상품으로 만들었다. '버블', '프라이빗 메시지', '포닝' 등 아이돌과 팬들이 메시지를 주고받는 유료 어플이 등장하였고 팬 사인회, 팬 미팅처럼 팬들이 아이돌과 만나 친밀함을 키우는 유료 행사가 급증하였다. 이제 팬들은 아이돌의 일상을 엿보기 위해 소통 어플 구독료를 내고, 100~200장 가까이의 앨범을 구매한 뒤 팬 사인회에 가서 아이돌과 눈을 마주치고 손깍지를 낀다.
이러한 팬덤 문화에 대해 아이돌 팬 A씨는 "요즘 기획사에서는 앨범 판매량을 위해 앨범 종류와 랜덤 포토 카드 개수를 기하급수적으로 늘렸다. 모두 구매하기엔 부담스럽지만, 그룹끼리 판매량을 비교하는 시선도 있고 '애정은 돈으로 표현하라'는 팬덤 기조가 있다"며 "그냥 팬이 아니라 그들의 성공을 위한 조력자가 된 거 같다"고 답했다. 이제 팬덤은 단순히 응원하는 팬을 넘어 그들을 관리하는 '매니저'이자 이미지를 만드는 '생산자'이고, 그들과 일상을 공유하는 '친구'가 되었다.
열애설은 팬 기만? 배신감 느끼는 팬덤
최근 4세대 아이돌 팬덤에선 자체적으로 '음원정보팀'을 꾸려 음원 사이트 1위를 만들기 위한 스트리밍 전략과 앨범 구매 방식을 구상하기도 한다. 그만큼 아이돌과 팬덤은 하나의 팀이 되어 '그룹 성공시키기'라는 목표를 향하고 있다. 이 와중에 열애설이 터진다면? 그건 '팬 기만'이다. '팬 기만'이란 팬덤 문화 내 대표적인 담론으로 특히 열애설이 발표되었을 때 팬덤 입장을 대변하는 표현으로 쓰인다.
아이돌 팬 B씨는 "예전에 좋아하는 연예인이 열애설이 터졌을 때 정말 답답했다. 한참 인기가 오르던 시점이었는데 열애설 하나로 이미지 타격이 컸다. 앨범 판매량이 감소하고 신곡 순위가 떨어져서 속상했던 기억이 있다"며 "흔히 대중은 팬들이 열애설에 분노하는 이유가 질투 나서 아니냐고 하는데 (이에) 동의할 수 없다. 질투가 아니라 허탈한 거다. 팬들은 그룹을 띄우려고 별별 일을 다하는데 정작 아이돌은 다른 생각을 가진 것"이라 털어놨다.
논문 <케이팝 아이돌의 자필 사과문>에 따르면 열애설 혹은 결혼 발표에 대한 연예인의 자필 사과문은 K-POP 아이돌 산업의 독특한 친밀성 구조에서 기인한 것이다. 팬덤 문화가 세대를 거치며 형성해 온 아이돌 행동 규범에 '연애 금지'라는 불문율이 자리하며, 이 규범을 어겼을 때 사과하는 것이 공정성 논리에 따라 마땅하게 여겨진다고 분석했다.
아이돌과 팬덤 간의 공동체성이 과열되면서 둘 사이 경계가 흐려지고 있다. 아이돌의 목표가 곧 팬덤의 목표가 되고, 아이돌의 사생활 또한 공동의 사안이 돼버렸다.
"과도한 처사" 자정 원하는 팬덤의 목소리
모든 팬들이 카리나의 사과문을 원한 것은 결코 아니다. 그의 사과문에 안타까움을 표하는 팬덤 목소리도 있다. 일부 팬들은 "과도한 처사"라며 "열애설 공개는 아이돌을 지탄할 것이 아니라 개인의 사생활을 침범한 언론을 비판해야 하는 일"이라 이야기했다. 이 사건을 기점으로 아이돌을 향한 과도한 도덕적 잣대를 멈춰야 한다는 자정의 움직임 또한 크다. 그만큼 아이돌 팬덤 문화는 점점 성숙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무대 위 아이돌이 빛나는 만큼, K-POP 산업의 명암은 뚜렷하다. 아이돌이 되기 위해 미성년자 때부터 연습생이 되어 과도한 훈련과 무한 경쟁 시스템에 놓이고, 데뷔 이후에는 극심한 다이어트와 외모 강박에 시달리며 과도한 악플과 함께 인간적인 감정이 배제된 '인형'이 되곤 한다. 만천하에 열애설이 공개되고 이에 자필 사과문까지 쓴 카리나는 겨우 25살이다.
이 모든 건 '사랑을 돈으로 환산하는' K-POP 산업 구조 위에 있다. 팬은 사랑하는 만큼 소비하고, 아이돌은 사랑받는 만큼 돈을 버는 세계. 팬은 소비자가 되고, 아이돌은 판매자가 된 세상에서 건강한 사랑이 싹틀 수 있을까. 서로를 사랑한 나머지, 서로의 짐과 죄가 된 아이돌-팬덤 관계가 안쓰러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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