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이 시끄러워야 교육이 산다

이준만 2024. 3. 8.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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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만 기자]

 텅 빈 교실. 학생들이 있으나 없으나 지금과 같은 교사 주도의 수업에서는 마찬가지일 터. 수업 내내 학생들은 한 마디도 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 이준만
 
우리나라 공교육이 위기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리라 생각한다. 지방 소도시 일반계 고등학교에서 30년 넘게 근무하다 퇴직했으니, 일반계 고등학교 교육에 국한해서 이야기해 보겠다. 일반계 고등학교 교육은 위기에 처해 있는가? 그렇다. 위기에 처해 있다. 그 정도도 자못 심각한 수준이다.

내가 우리나라 고등학교 교육에 위기가 찾아왔다고 몸소 느끼기 시작한 시점은 2015년이다. 그전까지는 교실 붕괴에 관한 이야기를 언론을 통해 접하기는 했으나 체험하지는 못했다. 멀리 있는, 대도시 학교의 이야기로만 여겼다. 2015년 그 당시, 고등학교 3학년 국어 교과 중, 화법과 작문이라는 과목을 가르쳤다. 그즈음 내가 근무했던 지역의 고 3 국어 교과 수업은 EBS 수능 특강 문제집을 풀어주는 게 대세였다. 고3 수업은 으레, 당연히 수능 특강 문제집을 풀었다. 학생도, 교사도, 학교 관리자도 응당 그러려니 했다. 그 누구도 토를 달지 않았다.

고3을 가르치는 교사들 대부분이 어떻게 하면 수능 '일타 강사'처럼 수업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었다. 나도 그랬고 지역 내에서는 수업을 꽤 잘하는 교사라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그런데 2015년 3월, 고 3 수업을 하는 도중 수업에 집중하는 학생들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문득 알게 되었다. 찬찬히 살펴보니, 30명 남짓의 학생 중 수업에 집중하는 학생들은 5명 정도인 듯했다. 아마 그전에도 그러했으리라. 다만 내가 나 자신의 수업에 취해 실상을 제대로 보지 못했으리라 생각한다.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또는 집중하지 않는 학생들에게 슬쩍슬쩍 그 까닭을 물어보았다. 그럴 만했다. 어떤 학생들은 EBS 강의를 통해 이미 공부를 한 상태였다. 학교가 개학하기 전에 EBS 강의가 진행되기에 공부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은 벌써 공부를 시작한 것이다. 또 어떤 학생들은 대학 진학 시 수능이 아예 필요하지 않았다. 이런 학생들은 EBS 수능 특강 문제집 풀이 수업을 들을 까닭이 전혀 없지 않겠는가. 또 다른 학생들은 아예 공부에 관심이 없는 부류였다. 이렇게 차 떼고 포 떼니, 달랑 5명 정도만이 수업에 참여하는 현상이 벌어졌던 것이다.

고 3을 가르치는 다른 교사들에게 물어보니, 사정은 대동소이했다. 고민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해 당장은 어쩔 수 없더라도 다음 해부터는 무슨 수를 내야 하겠기에 말이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여 수업 방식을 바꾸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자료를 찾아보니 이미 수많은 교사들이 새로운 방식의 수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교사가 아니라 학생이 중심이 되는 수업을 진행하는 경우가 꽤 있었다. 얼마 간의 시행착오를 겪으며 학생 중심 수업을 퇴직할 때까지 꾸준히 진행했다. 처음에는 어려움도 있었으나 2~3년 경험을 쌓고 난 다음부터는 정말 즐겁 수업했다. 수업 중 딴짓하는 학생들이 거의 없었고 항상 시끌시끌한 가운데 활기차게 수업을 했다. 한 학기 수업을 마친 후, 학생들의 평가도 썩 좋은 편이었다.

일반계 고등학교 교육이 위기 상황에서 벗어나려면 지금 당장 수업을 바꾸어야만 한다. 고등학교 3학년에서 으레 실시하는 EBS 수능 특강 문제집 풀이 수업을 당장 멈추어야 한다. 또 1, 2학년에서 이루어지는 교사 주도의 설명식, 주입식 일제 수업을 과감하게 벗어던져야만 한다. 모두 교사가 침을 튀기며 강의하고 학생들은 교사의 설명을 기계적으로 수용하는 수업 형태이다. 이런 방식의 수업이 이루어지는 교실에서는 학생들의 숨소리를 배경 음악 삼은 교사들의 새된 소리만이 울려 퍼진다. 학생들은 조용하고 교사들이 시끄러운 교실이다. 학생들의 질문은 교사가 설정한 수업 진도 때문에 일축되기 일쑤이다.

이런 형태의 수업이 일반계 고등학교 교육의 위기 상황을 만들어내는 핵심 요인이라 생각한다. 퇴직 당시까지 내가 근무했던 지역의 일반계 고등학교에서는 대부분 이런 형태의 수업을 진행했다. 동료 교사들 중에 이런 형태의 수업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교사들이 꽤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수업 형태를 바꾸는 교사는 거의 없었다. 왜냐고? 바꾸지 않아도 아무런 불이익이 없기 때문이다. 누가 수업 형태를 바꾸라고 요구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형편이 이러하니, 어떤 교사가 몇 년 또는 몇십 년 동안 자신이 해오던 수업 형태를 바꾸겠는가?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겪으며 새로운 방식에 적응해야 하는 불편과 고통을 감내하려 하겠는가? 어떤 불편과 불이익이 없다면 평소의 방식을 고수하는 것이 인지상정 아니겠는가? 이러는 동안, 아주 오래전부터 행해졌던 교사 주도의 수업은 변함없이 지속되었고 일반계 고등학교 교육은 점점 더 깊은 위기의 수렁으로 빠져버리고 말았다.

어느 인터넷 기사에서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으로 고등학교 교육이 직격탄을 맞고 휘청대고 있다고 했다. 정확하지 않은 진단이다. 고등학교 교육은 이미 그전부터 휘청대고 있었다. 또 의대 정원을 2000명 증원한다고 해도 의대 지원을 꿈꿀 수 있는 학생이 전체 고등학생 중 몇 퍼센트나 되겠는가. 아무리 넉넉하게 셈을 해도 5%를 넘지 않으리라. 5%도 안 되는 학생들 때문에 휘청대는 고등학교 교육이라면, 무언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이리라.

일반계 고등학교의 교육을 살리려면 지금 당장 수업 형태를 바꾸어야 한다. 교사 주도의 설명식 일제 수업에서 탈피해야 한다. 교사가 말하지 말고 학생이 말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조용한 침묵의 교실을 시끌시끌하고 떠들썩한 교실로 바꾸어야 한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많은 교사들이, "그러면 대학 입시는?"이라고 말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교직에 있는 30년 동안 들어온 말이다. '대학 입시' 때문에 일반계 고등학교의 교실 풍경은 내가 교직에 들어온 때나 퇴직할 무렵이나 바뀐 게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면 '대학 입시' 때문에 수업 형태를 바꾸지 못한 고등학교가 대학 입시를 위한 교육에 성공하고 있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많은 학생들이 대학 입시를 위해 학원으로 달려가는 현실이 그 증거이다. 학생들 대부분은 대학 입시에서의 성공을 위해서는 학원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특히 수능 공부를 위해서는. 학교에서는 수능 대비 공부를 할 수 없다고 하소연하는 학생들을 무수히 많이 보아 왔다.

현재 우리나라 일반계 고등학교는 대학 입시를 위한 교육에도 실패했고 교육과정에서 제시하고 있는 성취 수준을 달성하는 교육에도 실패했다. 둘 다 성공할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불가능한 일이다. 어디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까? 당연히 성취 수준 달성 교육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대학 입시를 위한 교육에서, 학교는 학원을 절대 이길 수 없다. 학원은 대학 입시 교육에 다 걸기 할 수 있지만 학교는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학교는 성취 수준 달성 교육에 온 힘을 다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나라 고등학교의 교육이 살아난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업 형태를 바꾸는 일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 교사가 중심이 되는 수업이 아니라 학생이 중심이 되는 수업으로 바꾸어야 한다. 교사가 말하는 수업이 아니라 학생이 말하는 수업이어야 한다. 수업 시간마다 전국의 모든 고등학교 교실을 시끄럽게 만들어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일 터이다. 30년 넘는 교직 생활 동안 학교가 '수업'에 온 힘을 기울이는 경우를 본 적이 없기에 하는 말이다. 참 이상한 일이기는 하다. 학교에서 제일 중요한 일은 '수업'일 텐데 정작 학교에서는 '수업'에 그렇게 힘을 쓰지 않으니 말이다. 병원은 진료에 힘쓰고 법원은 판결에 힘쓰고 언론은 기사에 힘쓰는 게 마땅하다면 학교는 수업에 힘쓰는 게 마땅할 텐데 말이다.

함께 모임을 하는 현직 교사들이 종종 연락을 한다. 3월 새 학기라 너무너무 바쁘다고. 바쁜 시기 지나서 한번 만나자고. 나도 그 사정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바쁨이 수업 때문이 아니라는 점 또한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약간 슬프고 약간 절망적이다. 교사들이 수업 형태를 바꾸느라 아주 아주 바빠야 우리나라 고등학교 교육이 살아날 텐데, 그럴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으니 말이다. 어떤 때는 고등학교가, 우리나라 고등학교 교육이 위기라는 사실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면서 모골이 송연해지기도 한다.

덧붙이는 글 | 브런치 스토리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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