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어때]인류 문명을 바꾼 '6가지 물질'
전력망의 필수인 구리, 석유
친환경 시대 총아인 리튬까지
역사에 큰 영향 준 물질 통해
인류 문명사 흥미롭게 살펴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5년 8월, 영국은 적국인 독일과 모종의 거래를 시도했다. 군수부 소속 요원을 비밀리에 스위스로 파견해 독일 회사로부터 쌍안경을 구매할 수 있는지 알아봤다.
당시 독일은 쌍안경, 망원경, 잠망경, 과학용 렌즈 등 정밀 광학 분야에서 독보적인 기술을 가진 국가였다. 독일이 독점한 소총의 망원 조준 망원경은 전쟁 초기 연합군의 골칫거리였다. 영국이 군사력 강화를 위해 적국인 독일에 군수품 구매를 문의한 것도 놀랍지만 더 놀라운 점은 독일이 영국의 제안을 받아들였다는 사실이다. 당시 독일이 쌍안경 3만2000개를 영국에 보냈다는 문서가 확인됐다. 독일은 대신 영국에 고무를 요구했다. 당시 독일은 자동차의 타이어, 엔진의 팬벨트 등에 사용되는 고무 라텍스를 구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주요 고무 생산국은 연합국 식민지 국가들이었고, 전쟁이 발발한 뒤 고무 수입이 끊긴 상태였다.
‘물질의 세계’는 인류 역사에 큰 영향을 준 물질 여섯 가지를 통섭하며 인류 문명사를 살펴보는 흥미로운 책이다. 독일에 부족했던 고무는 여섯 가지 물질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영국에 필요했던 쌍안경의 핵심 소재인 유리의 원재료 모래는 포함됐다. 책은 모래부터 시작해 소금, 철, 구리, 석유, 리튬이 인류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 살펴본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의 유리 자급률은 10%에 불과했다. 필요한 유리의 60%를 독일에서, 나머지 30%를 프랑스에서 수입했다. 영국은 왜 이렇게 유리 생산에 신경을 쓰지 않았을까. 그 이유를 설명하는 대목에서 실소가 나온다. 영국은 17~18세기 상업용 유리 생산과 고급 광학 분야에서 선두 국가였다. 하지만 1696년 영국 국왕 윌리엄 3세가 도입한 창문세 때문에 사달이 났다. 세수를 늘리기 위해 도입한 세금인데 윌리엄 3세는 부자들일수록 창문이 많은 집에 살 것이라고 생각했다. 창문세는 영국 유리 산업을 쇠퇴시켰다.
6가지 물질이 인류에게 준 영향력을 설명하기 위해 글쓴이는 정치, 경제, 역사, 문화 등 다양한 영역을 아우른다. 리튬을 설명할 때는 빅뱅 당시 수소, 헬륨과 함께 창조된 세 가지의 원시 원소로 우주에서 가장 오래된 물질 중 하나지만 오랫동안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물질이라고 소개한다. 그러면서 무명 시절의 리튬은 약품으로 가장 중요하게 활용됐다며 밴드 너바나의 노래 가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조울증과 우울증을 다루는 데 특효약이었다고 설명한다.
소금은 자본주의와 권력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출발점이라고 저자는 단언한다. 소금도 세금과 깊이 연관돼 있다. 중국에서는 기원전 7세기부터 소금에 세금을 부과했다. 춘추전국시대 제나라의 재상 관중이 현실정치를 다룬 책 ‘관자’에서 소금 무역을 통제하고 과세할 것을 주장했다. "어른이나 아이에게 인두세를 부과하겠다고 하면 백성들은 불평하면서 반대할 것이다. 그러나 소금에 과세하겠다는 정책을 발표하면 통치자가 거둬들이는 수입이 100배나 증가할 뿐 아니라 백성들은 이를 피하지 못한다. 이것이 이른바 재정관리다."
고대 로마는 병사들에게 공식적으로 소금을 배급한 최초의 문화권이었다. 병사들은 현금과 함께 소금도 정량 배급받았다. 오늘날 봉급을 뜻하는 영어 단어 ‘샐러리(Salary)’는 ‘소금을 지급한다’는 뜻의 라틴어 ‘살라리움(Salarium)’에서 파생됐다. 고대 아프리카에서 상인들은 소금을 금과 교환했다. 상품 대금을 치르거나 노예를 사들일 때 소금을 일종의 통화로 사용했다.
소금세는 1789년 프랑스 혁명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프랑스 정부가 소금에 부과했던 세금 ‘가벨(gabelle)’은 세액도 컸고 지역마다 차별도 커 당시 억압의 상징이었다. 프랑스 혁명이 일어날 당시 프랑스 시민들은 1인당 1년에 의무적으로 소금 7㎏을 구매해야 했다.
산업혁명 시대를 이끈 철, 전력망 구축의 주역 구리, 플라스틱 세상을 만든 석유를 거쳐 저자가 마지막으로 주목하는 물질은 리튬이다. 미래 세대의 핵심 물질이다.
화학 반응이 매우 빨라 물과 공기에 닿았을 때 거품이 일거나 폭발해 이전까지 리튬은 위험한 물질로 인식됐다. 하지만 기름 위에 뜰 정도로 무척 가벼운 데다 에너지를 저장하는 능력이 다른 어느 물질보다 탁월해 리튬은 화석연료 시대 이후 친환경 시대를 이끌 총아로 떠올랐다.
하지만 글쓴이는 친환경 시대의 주역이 될 리튬 때문에 오히려 지구 환경이 파괴되는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하지는 않을까 우려한다. 글쓴이는 "세상이 더 많은 리튬을 확보하기 위해 경쟁하면서 생산 과정에서 환경에 대한 고려는 부차적인 것이 됐다"고 꼬집는다. 리튬을 빨리 많이 생산하려고 경쟁하면서 최근 호주는 암석에서 리튬을 채굴하기 위해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암석을 발파하기 위해 사용하는 화학 물질이 토양을 오염시킬 위험이 크다.
글쓴이는 최근 리튬 국유화를 추진하는 볼리비아 정부의 움직임에도 우려를 나타낸다. 볼리비아의 염호는 칠레의 염호에 비해 마그네슘 함유량이 많고 때문에 정제 과정이 까다롭고 친환경적이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무엇보다 자원 민족주의가 개발 경쟁을 촉발할 수 있다는 점에 우려를 나타낸다.
글쓴이는 오늘날 세계는 놀라울 정도로 상호연결돼 있으며 그 그물망을 해체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고 강조한다. 따라서 그 어느 때보다 세계가 조화와 협력의 지혜를 모아야 하며, 나아가 지구 환경과의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방안도 강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질의 세계 | 에드 콘웨이 지음 | 이종인 옮김 | 인플루엔셜 | 584쪽 | 2만9800원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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