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괴한 미션 던지고 "기권 안돼"…소름 끼치는 '엠파고 PD'
‘자기소개 피구 줄다리기’
‘지구력 얼음땡 개인전’
최종 우승자를 가려야 하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이같이 알 수 없는 미션들이 쏟아진다. 기상천외한 미션에 지친 출연자들이 하나둘 문제를 제기하지만, 연출을 맡은 AI(인공지능) PD는 “프로그램 연출에 대한 모든 권한은 나에게 있다. 기권은 없다. 미션을 계속해 달라”고 단호히 주문한다. 편집 기준은 물론 언제까지 뜬금없는 미션을 계속해야 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함께 화합해서 미션을 넘길 것인가, 아니면 기존처럼 프로그램 안에서 각자 경쟁할 것인가. 지난달 29일부터 방영 중인 MBC 프로그램 ‘PD가 사라졌다!’(3부작)에선 출연진뿐 아니라 시청자도 같은 고민에 빠지게 된다.
캐스팅부터 연출·편집까지…AI가 만드는 프로그램
‘PD가 사라졌다!’는 AI 기술로 구현된 PD가 출연자 섭외부터 연출·편집·출연료 산정 등 기존 인간 PD의 역할을 하면서 만드는 프로그램이다. AI PD는 출연자들이 원하는 미션을 받아 취합해 새로운 미션을 만들어낸다. 신선하면서도 기괴한 미션을 수행하도록 한 뒤, 영상을 실시간으로 편집하고 출연 분량에 따라 출연료를 산정한다.
그간 방송계에서 AI는 드라마 위주로 부분적으로 활용됐다. 드라마 ‘카지노’(디즈니플러스)에선 배우 최민식의 얼굴을 나이보다 어려 보이게 만든 AI 디에이징(de-aging) 기술이 적용됐고, 드라마 ‘웰컴투 삼달리’(JTBC)나 ‘살인자ㅇ난감’(넷플릭스)에선 AI 딥페이크(deep-fake)를 활용해 새로운 얼굴과 표정을 만들었다. 하지만 AI가 주도권을 잡고 전적으로 개입한 프로그램은 이번이 처음이다.
‘진짜 사나이’ 등 15년 넘게 예능을 연출한 최민근 PD는 챗GPT를 경험하면서 이번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됐다고 한다. “챗GPT가 처음엔 허술하다는 얘기도 있었지만, 제가 놀랐던 건 기존 검색엔진과 달리 사람처럼 느껴진다는 부분이었다. 심지어 질문을 던졌을 때 생각지도 않은 영역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던진다는 점에서 조만간 연출·제작도 AI의 영역이 될 수 있겠다 싶었다”고 했다. “이번 프로그램에서 인간 제작진은 AI PD를 기술적·장치적으로 보조하는 역할만 수행했다. 개입을 최소화했다”고 말했다.
프로그램의 성패를 가를 출연자 섭외부터 모험이었다. 코미디언 김영철을 포함해 탈북자·유튜버·댄서·의사 등 다양한 직업군이 모였다. 방송 경험이 많지 않은 인물들이 대부분이다.
최 PD는 “AI PD가 학습을 바탕으로 프로그램 방향성을 스스로 정하고, 예산 등 현실적인 조건에 맞게 풀(pool)을 좁혀가며 캐스팅을 진행했다. AI 아니었으면 저조차도 잘 몰랐을 인물들이 섭외됐다”고 설명했다. “기괴하고 이상한 미션 역시 인간들끼리 회의했다면 아예 무시당하거나 아예 생각지도 못했을 내용이라, 한편으로는 이 부분이 창의적인 영역이 될 수 있기에 소름이 끼쳤다”고 덧붙였다.
“AI와 인간은 어떻게 공존할까” 질문 던져
예능 프로그램으로 분류돼 있지만, ‘PD가 사라졌다!’는 웃음보다는 관찰을 바탕으로 한 사회실험에 가깝다. 먼저 AI PD를 대하는 출연자들의 감정과 태도에 변화가 생긴다. 처음엔 긍정적인 기세로 임했던 출연진들은 감정적으로 폭발해 항의를 하거나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를 학습한 AI PD는 점차 인간에 대한 통제 정도를 높여간다.
출연자들은 AI PD의 미션과 편집 기준, 알고리즘 등을 찾아내려 노력하지만, 회차가 거듭될수록 AI PD를 추종하는 사람과 반발하는 사람으로 나뉘게 된다. 출연진 사이에서 갈등과 분열이 생긴다. “미션 그 자체보다 AI가 지배하는 공간에서 펼쳐지는 인간들의 갈등과 욕망이 관전 포인트”라고 MBC는 기획의도를 밝혔다.
오는 12일 방영 예정인 마지막 회에선 AI PD가 출연진의 특성을 분석해 새로운 미션을 제시한다. “모든 것은 출연진 여러분을 학습해서 나온 결과”라고 말하면서 최종 우승자를 가린다. 인간 출연자끼리 정한 우승자와 AI PD가 선택한 우승자 사이에 어떤 괴리감이 있을지를 보면서, 향후 AI와 인간이 공존해 나가는 방식에 대해 고찰해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어환희 기자 eo.hwa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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