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인데 숲이 예술입니다
신안군에는 1004개의 섬이 있다. 1004는 날개 달린 천사다. 신안군은 천사 조각상 1004개를 세우고 있다. 섬 하나에 천사가 하나다. 그 섬들에 가면 생명이 꿈틀대고 역사가 흐르며 자연이 숨 쉬고 낭만이 넘실댄다. 미래의 역사·문화·환경 자원으로 각광 받는 신안 1004섬. 그 매력을 새롭게 만나는 연중기획을 시작한다. 황호택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겸직교수와 이광표 서원대 교수가 매주 1회 집필한다. <편집자말>
[이광표 기자]
3월 말부터 관광객이 늘어나면 작은 섬 홍도는 분주해진다. 목포를 떠난 쾌속선은 홍도 1구 선착장 여객터미널에 도착한다. 여객터미널 건물의 필로티 공간 기둥에 1~10까지 번호가 붙어 있다. 관광객과 숙박업소 주인들이 만나는 약속 장소다.
이곳에선 삼륜 오토바이들이 줄지어 대기한다. 이륜 오토바이 뒷부분을 개조해 바퀴를 두 개 달고 거기 짐칸을 붙였다. 숙박업소 주인들은 여기에 관광객들의 짐을 싣고 언덕 골목길로 올라간다.
홍도에는 마을이 두 개다. 1구 마을은 90가구, 2구 마을은 40가구. 모두 350여 명의 주민이 산다. 홍도에는 평지가 거의 없다. 차도 다니지 않는다. 선착장이 있는 홍도 1구는 모든 길이 오르내리막이다. 작은 마을이지만 그래도 없는 것 빼고는 다 있다.
호텔과 여관과 민박집, 횟집과 식당과 실내 포장마차, 노래방, 홍도 관리사무소, 국립공원센터, 생태전시관, 교회와 천주교 공소, 우체국, 초등학교 등등. 선착장을 중심으로 반경 200~300m 이내에 모두 모여 있다.
홍도의 이국적인 오르내리막 골목길
안내판을 따라 남쪽 골목을 따라 올라가면 생태전시관이 나온다. 홍도의 식물과 새와 곤충, 분재에 관한 자료를 전시한다. 그 옆길을 따라 더 올라가면 홍도의 당집(제당)이 나온다. 매년 정월 초, 홍도 사람들은 이곳에서 풍어와 안전을 기원하는 당제를 지냈다.
당제가 끝나면 선창가로 가서 풍어제를 열고 배를 타고 거북바위(홍도 제9경) 앞으로 나가 허수아비를 띄워 보냈다, 그래서인지 당집 주변은 영험함이 가득해 보인다. 당숲에는 수령 300년이 넘은 동백나무를 비롯해 후박나무, 황칠나무와 같은 고목들이 많다. 이 당집은 1970년대 허물어졌던 것을 2007년 복원한 것이다.
▲ 홍도의 당집과 동백숲. 수령 300년이 넘은 동백나무가 많다. |
ⓒ 이광표 |
생태전시관 앞으로 내려와 마을 골목을 걷는다. 건물 하나하나를 보면 그리 세련된 디자인은 아니지만 멀리서 보면 은근히 이국적이다. 바닷가 항구 관광지의 분위기를 그대로 보여준다. 여기저기 골목길을 걷다 보면 가장 높은 곳에 홍도우체국이 나온다. 우체국에서는 홍도 1구 마을과 선착장이 쫙 내려다보인다.
▲ 관광철이 되면 홍도 선착장 방파제에 해녀 포장마차가 줄지어 들어선다. |
ⓒ 신안군 |
본격적인 관광철이 되면 홍도 선착장 방파제에는 포장마차가 길게 들어선다. 주요 메뉴는 홍도 2구의 해녀들이 물질로 건져 올린 전복, 홍합, 소라, 해삼 등이다. 밤늦게까지 불을 밝히는 방파제 포장마차는 홍도의 진풍경이다.
▲ 모래는 없고 둥근 돌이 가득한 몽돌해수욕장. |
ⓒ 이광표 |
모래가 반짝이는 여느 해변과 달리 이곳엔 모래는 없고 둥근 몽돌이 가득하다. 작은 건 주먹만 하고 큰 건 축구공만 하다. 해식(海蝕) 작용으로 떨어져 나온 바위 조각들이 오랜 세월 동안 파도에 쓸려 둥근 모습으로 바뀐 것이다. 세월의 힘, 파도의 힘을 느끼게 된다.
홍도에서 가장 높은 곳은 해발 365m의 고치산 깃대봉. 홍도분교에서 한 시간 정도 걸린다. 그 깃대봉을 넘어가면 홍도 2구 마을이 나온다. 깃대봉까지 가는 길은 초반엔 꽤 가파르고 중반쯤부터는 아늑하고 울창한 숲길이 이어진다. 그 숲길은 동백나무를 비롯해 후박나무, 구실잣밤나무, 황칠나무, 서어나무 등이 가득하다.
▲ 홍도 분교에서 깃대봉 가는 길. 이곳을 지나면 연인들의 사랑이 이뤄지고 부부의 금실이 좋아진다고 해서 연인의 길이라 부른다. |
ⓒ 신안군 |
▲ 깃대봉 가는 길에 만나는 청어 미륵. 크고 길죽한 두 개의 돌이 청어 미륵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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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대봉에 오르다 보면 미륵 2기가 나온다. 미륵이라고 하지만 커다란 돌덩이 두 개다. 여기엔 재밌는 전설이 전해 온다.
청어 파시가 호황을 누리던 옛 시절에 어민들이 그물을 던지면 청어는 잡히지 않고 자꾸만 돌이 걸려 올라왔다. 마을 사람들의 근심이 커져갔다. 그러던 중 한 어민이 꿈에 '깃대봉 근처 풍광 좋은 곳에 돌을 잘 모시면 다시 청어가 잡힐 것'이라는 계시를 받았다. 마을 주민들은 곧바로 돌을 모셨고 다시 풍어가 찾아왔다.
이때부터 홍도 사람들은 이 돌들을 청어 미륵으로 모셨다. 주강현 해양민속학자는 이를 "바다 미륵"으로 부른다. 청어 미륵에서 더 가면 일제강점기에 숯을 구웠던 숯굴이 있다. 일제는 군수물자로 쓰기 위해 이곳에서 숯을 만들었고 홍도 주민들이 그 노역에 동원되었다.
깃대봉 정상엔 시원한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다. 흑산도, 대장도, 가거도, 태도(상태도, 중태도, 하태도) 등 주변의 섬이 한눈에 들어온다. 깃대봉을 넘어가면 홍도 2구. 홍도 1구가 분주한 관광지라면 홍도 2구는 조용한 어촌이다. 유람선 관광을 할 때 선상횟집에서 회를 떠주는 사람들이 바로 홍도 2구 어민들이다.
▲ 홍도의 북쪽 끝에 있는 홍도 등대. 1931년 일제가 대륙 침략의 목적으로 세운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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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람선에서 바라본 홍도 등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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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도 2구의 맨 끝 그러니까 홍도의 가장 북쪽 해안에 홍도 등대가 있다. 홍도 등대는 목포항과 서해안의 남북항로를 이용하는 선박들의 뱃길을 안내한다. 등대가 세워진 것은 1931년, 대륙진출을 추진하던 일제는 자국 함대의 안전을 위해 이 등대를 만들었다. 아픈 역사가 담긴 근대문화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등탑의 높이는 약 10m. 등탑은 그리 크지 않지만 높은 곳에 위치해 불빛은 45km까지 간다. 대부분의 등탑이 원주형(圓柱形)인데 홍도 등대는 사각 기둥의 특이한 구조다. 깃대봉에서도 멀리 홍도 등대가 보인다. 유람선에서 만나는 등대도 멋진 모습이다. 홍도 등대는 그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해양수산부 등대문화유산 3호로 지정되었다.
홍도야 우지마라~ 분교가 있다
흑산초등학교 홍도분교는 학생이 6명이고 교사가 3명이다. 교사 1인당 학생수가 2명으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학교가 폐교될 위기에 처하자 신안군이 학부모에게 '빈집'과 월급 320만 원 정도의 일자리를 제공하고 올해 신학기에 학생 3명을 받아들였다.
▲ 매년 7월 홍도에서 열리는 ‘섬 원추리 축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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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도에서 원추리를 빼놓을 수 없다. 원추리는 해안 지역에서 주로 자라기 때문에 육지에서는 보기 어려운 식물이다. 꽃은 7월에서 9월 사이에 피는데, 유난히 크고 곱다. 그 아름다움 덕분에 사람들이 근심 걱정을 잊어버린다고 해서 망우화(忘憂花)라고도 부른다.
원추리는 봄철에 어린 순을 나물로 무치거나 국으로 끓여 먹기도 한다. 보릿고개로 힘든 시절, 육지와 달리 홍도에서는 원추리를 먹으며 배고픔을 이겨냈다. 싹과 잎은 나물로 무쳐 먹고 뿌리는 전분으로 이용했다. 꽃이 지면 잎을 잘라서 새끼를 꼬아 띠 지붕을 만들었다.
매년 7월 중순 홍도에선 '섬 원추리 축제'가 열린다. 축제 기간이 되면 홍도의 해안선은 온통 노란색으로 물든다. 홍도 분교 주변의 원추리 꽃밭을 걸어도 좋고 유람선에서 산과 바위의 원추리를 감상하는 것도 좋다.
유람선 관광이 바다에서 홍도의 비경에 감탄하는 기회라면 골목과 숲길 탐방은 홍도의 내력과 일상 문화를 경험하는 기회다. 홍도 출신으로 홍도의 문화와 역사를 알리는 데 애쓴 이동석(87)씨는 "홍도에는 비경도 있고 역사문화도 있다"고 힘주어 말한다.
늦겨울 2월의 홍도 여행도 매력적이었지만, 여름이 되면 홍도가 또 생각날 것이다. 쾌속선에서 쏟아져 내리는 관광객들, 바쁘게 언덕을 오르내리는 삼륜 오토바이, 불야성을 이루는 방파제의 해녀 포차, 파란 바다를 배경으로 활짝 피어난 노란 원추리…
덧붙이는 글 | 〈참고문헌〉 이재언, 《한국의 섬 신안군1》, 이어도, 2021 이재진, 〈짙푸른 바닷가에 노란 원추리〉, 《산》 533호, 조선뉴스프레스, 2022 주강현, 《등대: 제국의 불빛에서 근대의 풍경으로》, 생각의 나무,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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