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를 잃은 낙원', 그야말로 천연 감옥
[박배민 기자]
▲ ▲ 관음송 앞에서 촬영한 단종어소(오른쪽)와 단묘재본부시유지비(왼쪽) ⓒ박배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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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월 단종 유배지(청령포)
주소: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남면 광천리 산 68
시대: 조선
유산: 청령포(명승), 관음송(천연기념물)
탐방일: 2024년 1월 21일
가족과 함께
매년 설에 친가와 외가를 번갈아 찾아뵙는데, 올해는 충북 진천에 위치한 외가에 인사를 드리러 갔다. 오랜만에 모인 가족에게 당일치기 영월 나들이를 가볍게 제안했고, 할머니, 어머니, 외삼촌 그리고 7살 된 사촌 여동생 모두가 들뜬 마음으로 동참했다.
▲ ▲ 매표소에서 내려다 본 선착장과 운항 중인 청령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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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령포, 아름답고도 고독한
영월의 문턱을 밟자마자 향한 곳은 단종이 영월로 쫓겨나 처음 두 달여를 보낸 청령포였다. 청령포는 고속도로 나들목에서 가깝기도 했고, 역사적으로도 단종의 첫 유배 생활 공간이었기에 장릉 방문 전에 살펴보는 것이 여러모로 좋은 선택이었다.
차에서 내리자 예상보다 매서운 찬바람에 적잖이 당황했다. 넓게 펼쳐진 청령포 주차장을 가로질러, 매표소에서 만 원 즈음에 일행의 입장권을 구입했다. 단종의 처소를 둘러보기 위해서는 50여 m 폭의 강을 건너야 했다.
▲ ▲ 청령호에서 내려 어소를 향하는 일행. 자갈밭 끝 소나무 숲 안에 어소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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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 어소를 오가는 배 두 척이 선착장에는 정박 중이었는데, 이용객이 많지 않아 '청령호' 한 척만이 운항 중이었다. 기름 냄새가 진동하는 엔진 옆에 앉아 주변을 둘러본다. 청령포를 둘러싼 절벽이 위엄있게 나를 내려다보는 듯했다.
2, 3분이면 도달할 짧은 거리를 건너는 동안, 강물의 투명함과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강바닥 속 자갈이 눈길을 끈다. 서강이 굽이쳐 흐르며 만들어 낸 자갈밭은 쓰레기 하나 없이 말끔했다. 이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단종은 무슨 심정이었을까.
▲ ▲ 소나무 숲과 자갈밭 경계에서 촬영한 사진. 소나무 사이로 언뜻 어소가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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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와 함께 느릿느릿 자갈밭을 거쳐 소나무숲으로 다가가니 단종이 두 달 간 머물렀다는 처소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홍수 때문에 관풍헌(영월 관청, 단종이 사망한 장소)으로 거처로 옮기 전까지 단종이 두 달간 지냈던 건물은 우람한 소나무에 파묻혀 있었다.
▲ ▲ 단종 어소를 둘러 보는 방문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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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이 청령포에 유배되어 있는 동안에는 금성대군(수양대군 동생)을 주축으로 진행된 단종복위운동이 발각되는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단종은 노산군 신분에서 서인(庶人, 일반 백성을 뜻함)으로 강등되었다. 끝까지 조카를 지키려던 삼촌 금성대군은 안타깝게도 관노(官奴, 관청에 소속된 국가의 노비)의 고발 탓에 거사가 발각되어 반역죄로 처형당하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 ▲ 노비 집에서 바라 본 단묘재본부시유지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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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를 기억하다, 단묘재본부시유지비
마당 한복판에는 단종의 어소가 이곳에 있었다는 것을 기리기 위해 영조가 세운(1791) 비석이 중앙에 우뚝 서 있었다. 서인의 신분까지 추락했던 단종은 숙종 대에 왕의 위상으로 복권되는데, 숙종의 아들인 영조가 아버지의 의지를 계승했던 것이다.
▲ ▲ 관음송은 주변 나무에 비해 존재감이 도드라지기 때문에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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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처로움을 간직한 나무, 관음송
단종이 생활하던 어소 옆에는 소나무 중에서도 유독 하늘 높이 뻗은 소나무가 한 그루 있다. 나이는 대략 600년 정도로 추정된다. 높이가 30m로 아파트 10층에 육박한다.
▲ ▲ 영조가 세운 금표비. 비 옆에 화장실을 설치한 탐방로 설계가 아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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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령호 위에서 바라 본 단종어소 방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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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품은 벼랑
청령포를 떠나며 훌륭한 경치 뒤에 숨겨진 역사의 무게를 되새긴다. 평화로운 자연을 배경으로, 17살의 단종이 겪었을 내면의 혼란과 고뇌를 상상해본다. 14살에 한 나라의 왕이 되었다가, 2년 만에 숙부에게 왕위를 빼앗긴 억울함과 생명의 위협으로 점철된 단종에게 이 절경은 어떤 의미였을까. 적어도 나처럼 한적함을 느낄 장소가 아니었을 터. 자신의 운명을 되돌아보며 쓸쓸함과 고립만이 가득하지 않았을까.
덧붙이는 글 | 이 탐방기는 개인 채널(브런치 등)와 외부 채널에도 함께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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