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연재에 '성적조작 수혜자' 댓글…헌재 "전문 봐야" 기소유예 처분 취소

최석진 2024. 3. 8.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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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리듬체조선수 손연재의 인터넷 기사에 댓글을 단 팬에 대해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가 인정된다고 보고 내린 검사의 기소유예 처분을 취소하라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왔다.

댓글 전부를 보지 않고 경찰이 발췌해서 송치한 댓글의 '일부 표현'만을 근거로 '비방의 목적'이 있다고 판단한 것은 자의적인 검찰권 행사로 해당 팬의 기본권을 침해했다는 취지다.

[이미지 출처=인스타그램]

8일 법조계에 따르면 헌재는 정보통신망법상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 혐의에 대해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A씨가 낸 헌법소원심판 청구 사건에서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인용 결정했다.

헌재는 "피청구인(검사)이 청구인에 대해 한 기소유예 처분은 청구인의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한 것이므로 이를 취소한다"고 주문에서 밝혔다.

변호사시험 준비생이었던 A씨는 2016년 8월 24일 라는 제목의 한 인터넷 뉴스 기사에 댓글을 달았다.

해당 기사는 당시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치러진 리우 올림픽에서 한국 리듬체조 최고 성적인 최종 4위를 기록하고 귀국한 손연재가 인천공항에서 열린 해단식 및 기자회견에서 밝힌 소감을 다룬 기사였다.

A씨는 인터넷 포털 사이트 네이트에 올라온 위 기사에 '자 비네르 사단의 성적조작 수혜자가…'라는 댓글을 달아 허위 사실로 손연재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수사를 받았다.

손연재는 2022년 6월 364건의 댓글을 작성한 성명불상자들에 대한 정보통신망법 위반(명예훼손) 혐의 고소장을 제출했다. 손연재는 경찰에서 고소인 조사를 받으면서 '364건의 명예훼손 자료는 모두 8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고, 그 중 선수시절 성적을 얻음에 있어 심판매수·승부조작을 했다는 유형이 있다. 국제경기는 심판을 매수할 수 없는 시스템이고, 고소인도 그러한 사실이 전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전한 시합 결과가 나올 때마다 아무런 근거 없이 심판매수·승부조작 댓글이 작성됨으로써 고소인의 명예를 훼손했다'라는 취지로 진술했다.

2016년 8월 24일 인천광역시 인천국제공항 밀레니엄홀에서 열린 2016 리우올림픽 대한민국 선수단 해단식에서 손연재 리듬체조 선수가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애초 사건을 수사한 경기성남수정경찰서 경찰관은 법원에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자 비네르 사단의 성적조작 수혜자가…'라는 댓글을 단 작성자의 닉네임이 A씨의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사건을 A씨의 주소지를 관할하는 부산사하경찰서로 이송했다.

2023년 3월3일 경찰에 출석한 A씨는 "시간이 오래 지나 댓글은 찾아봐야 할 것 같지만, 내 닉네임이 맞다"고 진술했다. 그러면서 A씨는 "나는 손연재의 팬이므로 비네르가 손연재의 코치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손연재의 명예를 훼손하려는 의도가 없었다"고 해명했다.

경찰은 같은 해 3월14일 손연재에게 전화해 비네르라는 사람이 코치였는지 물었고, 손연재는 '비네르라는 사람이 직접적으로 코치한 적이 없다'라는 취지로 답했다.

이에 경찰은 A씨가 작성한 '자 비네르 사단의 성적조작의 수혜자가…'라는 댓글은 구체적인 사실을 적시하는 것이고, A씨가 손연재가 성적조작의 수혜자인지 아닌지 정확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만큼 피의사실이 인정된다고 판단, 2023년 3월14일 A씨를 부산지검 서부지청에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 기소 의견으로 불구속 송치했다.

A씨는 2023년 3월17일 부산사하경찰서에 이의신청을 접수했다. A씨는 "댓글을 다시 한번 봐주십시오. 그 짧은 글이 어떻게 고소인이 비네르사단의 혜택을 받아서 성적수혜를 받았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지 납득 가게 이유를 제시해 주십시오. 처벌받을 땐 받더라도 제 댓글 전문에 대한 내용을 근거로 처벌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댓글 전체가 아닌 일부만 발췌한 내용으로는 처벌받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라고 이의신청 사유를 기재했다.

이에 대해 부산사하경찰서는 2023년 3월23일 "그 표현의 내용과 주위 사정을 종합해 그 내용이 어느 특정인을 지목해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키거나 경멸적 표현에 해당할 경우에는 범죄가 성립한다는 것이 대법원의 일관된 판례입니다. 귀하께서 명예훼손으로 송치된 사건에 대해서는 부산지검 서부지청에서 범죄성립 여부 및 법률 등을 재검토하게 됩니다"라는 답변을 보냈다.

그리고 사건을 송치받은 부산지검 서부지청 검사는 별도의 추가 수사 없이 2023년 3월30일 A씨에 대해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기소유예 처분은 피의사실이 인정되지만 여러 사정을 참작해 소추할 필요가 없을 때 검사가 내리는 처분이다. 불기소 처분의 일종이긴 하지만 수사기관에서 혐의가 인정됐다는 기록이 남는 만큼 '혐의 없음' 내지 '죄 안됨' 불기소 처분을 받아야 할 피의자가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을 때 헌법소원으로 구제받을 권리보호 이익을 인정하는 게 헌재의 입장이다.

A씨는 "청구인은 고소인의 팬으로서 고소인의 명예를 드높이기 위해 댓글을 달았음에도 불구하고, 피청구인은 청구인이 작성한 댓글 전문의 내용을 수사하지 않은 채 발췌된 일부 표현만을 근거로 청구인에게 '비방의 목적'이 있다고 자의적으로 판단해 이 사건 기소유예처분에 이름으로써, 청구인의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했다"라며 2023년 5월 30일 헌재에 검사의 기소유예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헌재에서는 먼저 공소시효가 이미 완성된 상황에서 헌재가 검사의 기소유예 처분을 취소하는 게 의미가 있는지, 즉 헌법소원심판 청구의 요건 중 '권리보호이익'이 문제됐다.

이에 대해 헌재는 "이 사건 피의사실의 공소시효는 이 사건 기소유예처분이 이뤄진 후인 2023년 8월23일 완성됐으므로, 그 취소를 구하는 헌법소원심판에 권리보호이익이 인정되는지 문제된다"고 전제했다.

헌재는 "검사로부터 '기소유예'의 처분을 받은 피의자가 그 피의사실에 불복하고 자기의 무고함을 주장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는 경우 헌재가 이를 인용해 그 처분을 취소한다고 하더라도 이미 해당 피의사실에 관한 공소시효는 완성된 것이므로 검사로서는 '공소권없음'의 처분을 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어 "그런데 기소유예가 피의사실이 인정된다는 실체적 판단을 하는 것과는 달리 공소권없음은 단지 공소권이 없다는 형식적 판단에 그치는 것이므로 공소권없음이 기소유예보다 피의자에게 유리한 처분"이라며 "따라서 이 사건 기소유예처분의 취소를 구할 권리보호이익이 인정되므로, 이 사건 심판청구는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다음으로 헌재는 A씨에 대한 검사의 기소유예 처분이 적법했는지를 따졌다.

먼저 헌재는 "청구인이 해당 댓글을 작성했을 당시 해당 뉴스기사에는, 고소인을 응원하는 댓글들과 고소인에게 비판적인 댓글들이 논쟁적으로 달려 있는 상황이었다"고 밝혔다.

이어 "청구인은 발췌된 일부 표현이 아니라 해당 댓글의 전문을 확인해 범죄 성립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수사기관에 반복적으로 주장했음에도 불구하고, 피청구인은 해당 댓글의 전문을 확인하지 않은 채 이 사건 기소유예 처분을 했다"며 "이에 청구인은 직접 네이트 고객센터에 요청해 해당 댓글의 전문을 확보한 다음 이를 헌재에 증거자료로 제출했다"고 밝혔다.

헌재가 공개한 A씨가 단 댓글의 전문은 '자 비네르 사단의 성적조작의 수혜자가 손연재라고 치자. 신OO도 러시아에 월 3000에 유학갔는데 왜 성적이 고따구였지?? 그리고 이번에 러시아동행단에 일본 리OO 선수도 있었는데 비네르가 그렇게 전지전능하다면 왜 그 선수 결선진출도 못시켜줬는지??'였다.

손연재가 비네르 사단으로서 성적조작의 수혜를 받았다고 손연재를 공격하는 취지의 댓글로 보기는 어렵고, 오히려 비네르가 관리하는 다른 선수가 리우 올림픽 결선에도 진출 못 한 사례를 들며 손연재가 비네르로 인해 혜택을 받았다는 주장을 반박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헌재는 "위와 같은 뉴스기사의 내용, 해당 댓글의 작성 당시 관련 댓글들의 상황, 청구인이 작성한 댓글의 전문을 종합해 보면 ▲2016년 제31회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이 종료된 후 대표선수들의 귀국 기자회견이 이뤄진 상황에서 고소인의 인터뷰 내용이 뉴스기사로 게재되자 ▲그 뉴스기사의 관련 댓글들을 통해 고소인에 대한 응원과 비판이 논쟁적으로 이뤄지던 상황에서 ▲청구인은 고소인이 성적조작의 수혜자가 아님을 주장하면서 고소인을 응원하는 맥락에서 '자 비네르 사단의 성적조작의 수혜자가'라는 표현을 일부 사용하게 된 것임을 알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사정이 이와 같다면, 청구인에게는 고소인의 명예에 대한 가해의 의사나 목적이 있었다고 단정할 수 없어 '고소인을 비방할 의사'가 없었다고 할 것"이라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헌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청구인은 댓글의 전문 등에 대해 충분히 수사하지 않은 채 발췌돼 송치된 일부 표현만을 근거로 '고소인을 비방할 목적'이 인정된다고 판단해 이 사건 기소유예 처분에 이르렀는바, 이는 현저한 수사미진 및 중대한 법리오해의 잘못에 터 잡아 이뤄진 자의적인 검찰권 행사로서 청구인의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고 결론 내렸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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