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저비터로 위기의 KCC 구해낸 '게임체인저' 허웅
[이준목 기자]
▲ 3점슛을 시도하는 KCC 허웅 7일 경기도 수원kt아레나에서 열린 2023-2024 정관장 프로농구 KCC 대 kt 경기에서 KCC 허웅이 3점 슛을 시도하고 있다. (KBL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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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러치슈터' 허웅이 드라마틱한 역전 버저비터 3점 위닝샷을 터뜨리며 팀을 위기에서 구해냈다. 허웅의 부산 KCC는 지난 3월 7일 수원 KT 소닉붐 아레나에서 열린 2023-2024 정관장 프로농구 수원 KT와 경기에서 접전 끝에 96-94로 승리했다.
이날 경기는 프로농구를 대표하는 두 스타 형제 허웅과 허훈의 '형제 더비'로도 주목받았다. 형 허웅은 18점 8어시스트 3리바운드, 동생 허훈은 17점 6어시스트로 용호상박의 활약을 펼쳤다. KT 패리스 배스(29점 14리바운드 4어시스트)와 KCC 라건아(18점 15리바운드)를 비롯하여 양 팀 합쳐 총 11명의 선수가 두 자릿수 득점(KT 5명, KCC 6명)을 올릴 정도로 치열했던 난타전이었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명승부는 결국 마지막 순간에 허웅과 배스의 '쇼다운'에서 갈렸다. 경기 종료 14초를 남겨두고 92-91, 1점 차로 앞서 있던 KCC가 공격권을 가진 상황에서 허웅이 볼을 잡았다. KT는 파울로 자유투를 내주는 파울작전을 선택했다.
하지만 허웅은 하나만 성공시키고 2구를 놓쳤다. 점수는 2점 차로 한번의 포제션에 경기흐름을 바꿀 수 있는 상황. 리바운드를 잡아낸 KT는 빠르게 상대 코트로 넘어갔고 종료 7초 전 공을 쥔 배스는 라건아를 앞에 둔 상황에서 기습적인 롱3를 던졌다. 공은 그대로 림에 빨려들어갔고 KT가 94-93으로 역전에 성공했다.
누가 봐도 KCC의 패색이 짙은 상황. 하지만 경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KCC에는 허웅이 있었다. 허웅은 단독 드리블로 KT 진영까지 넘어가 오른쪽 45도 지역에서 더블팀을 이겨내고 불안정한 자세에서 마지막 3점슛을 던졌다.
놀랍게도 공은 거짓말처럼 깨끗하게 골망을 갈랐고 그와 동시에 종료 버저가 울렸다. 허웅의 극적인 역전 버저비터였다. 허웅은 슛이 적중하자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덤덤하게 돌아서서 걸어가는 '쿨 세리머니'를 선보였다. KCC 동료들은 짜릿한 승리에 환호하며 일제히 허웅을 얼싸안았다.
KCC는 지난 2일 홈에서 KT(101-94)를 잡아낸 데 이어 5일 만에 이번엔 원정에서 또 한번의 짜릿한 승리를 거두며 올시즌 상대 전적에서 3연패 뒤 2연승을 거뒀다.
사실 허웅은 이날 하마터면 막판 패배의 역적이 될 뻔했다. 마지막 위닝샷 직전까지 허웅은 9개의 3점슛을 던져 단 1개밖에 성공시키지 못할 정도로 슛감이 좋지 않았다. 경기 막판에는 중요한 자유투까지 하나 놓치며 역전의 빌미를 허용했다.
하지만 허웅은 결국 가장 중요하고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의 몫을 해주며 '슈터는 10번 실패해도 1번의 성공으로 영웅이 될 수 있다'는 농구의 진리를 결과로 증명했다.
허웅의 제안 이후 공격농구로 팀 컬러 바꾼 KCC
KCC는 올시즌을 앞두고 호화전력을 구축하며 '슈퍼팀'으로 불릴 만큼 우승후보로 기대를 모았으나, 정작 주축 선수들의 연이은 부상과 조직력 난조로 이름값에는 다소 못 미치는 성적을 거두고 있다. 현재도 포워드진의 핵심전력인 송교창과 최준용이 모두 이탈하며 가용자원이 부족한 데다가, 이승현과 라건아도 전성기에서 기량이 내려오고 있는 상태였다.
허웅은 팀 동료들이 들쭉날쭉한 상황에서도 올시즌 KCC를 그나마 지탱하게 해준 핵심선수다. 허웅은 올시즌 45경기 전 게임에 출장하며 팀 내 최다인 15.9점(전체 11위, 국내 3위) 3점슛 2.7개(2위), 3점슛 성공률 36.9%를 기록하며 KCC를 6강플레이오프 안정권으로 이끌었다.
허웅은 단지 이날의 승리만이 아니라 최근 흔들리던 KCC의 팀분위기를 되살리는 데도 '게임체인저'로 크게 기여했다. KCC는 지난 3일 라이벌 SK와의 경기에서 졸전 끝에 21점 차(69-90)로 충격적인 완패를 당한 데다 최준용과 송교창의 연이은 부상 소식까지 겹치며 팀 분위기가 매우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경기 후 허웅은 전창진 감독에게 직접 면담을 요청하며 팀의 방향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서 허웅은 그동안 고집해온 느린 템포의 수비농구를 버리고 얼리 오펜스 위주의 공격농구를 제안했다고 한다.
선수가 감독을 찾아가 전략-전술에 대하여 자기 주장을 펼치는 모습은 감독의 권위가 강한 국내 농구계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장면이다. 자칫 감독의 영역을 침범한다는 오해를 살 수 있을뿐더러, 하물며 전창진 감독은 KBL에서 가장 엄격한 호랑이 감독이자 고전적인 수비농구의 신봉자로 유명한 지도자다.
하지만 놀랍게도 전창진 감독은 선수의 제안을 기꺼이 수용했다. 두 사람은 면담 내용까지 언론에 모두 공개하며 KBL에서도 감독-선수간 팀의 발전을 위한 수평적인 소통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허웅의 제안 이후 공격농구로 팀 컬러를 재정비한 KCC는 5일 경기에서 고양 소노를 32점 차(117-85)로 대파했고, 정규리그 2위 KT마저 다득점 싸움 끝에 잡아내며 완벽하게 분위기를 회복했다. 선수구성상 맞지 않는 어설픈 수비농구에 집착하기보다도, 공격부터 살아나야 한다는 허웅의 주장은 결과적으로 옳았다.
허웅도 소노전에서 3점슛 5개 포함 31점을 터뜨렸고, KT전에서도 결정적인 순간에 팀을 위기에서 구해내며 에이스다운 활약을 이어가고 있다. 허웅은 최근 4경기에는 평균 22.3점을 터뜨리며 시즌 막바지로 갈수록 더욱 물오른 득점감각을 과시중이다.
KCC는 허웅의 활약에 힘입어 2연승을 달리며 25승 20패로 5위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9경기를 남겨둔 현재 6위 울산 현대모비스(24승 22패)와는 1.5게임 차이며 4위 서울 SK(28승 18패)를 2.5게임 차이로 추격했다.
이변이 없는 한 6강플레이오프 진출은 유력한 가운데 KCC는 남은 경기에서 4위 이내에 들어 플레이오프 홈어드밴티지를 확보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분위기가 살아난 KCC가 이대로 상승세를 이어간다면, 비록 정규시즌 순위는 낮더라도 송교창-최준용이 정상적으로 복귀하는 플레이오프에서 '태풍의 눈'이 될 가능성은 여전히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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