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식 칼럼]AI시대의 예술, 인간이 인간임을 잊지 말아야

2024. 3. 8.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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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유럽은 충격과 변화의 세상이었다.

결국 생성형 인공지능 시대 예술의 핵심은 인공지능이라는 새로운 도구를 넘어 상상력 대량생산 시대에도 여전히 존재의 의미와 인류의 영원한 문제들을 고민할 인간을 위한 예술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아니, 어쩌면 그런 질문들을 잊지 않도록, 인간이 여전히 인간인 것을 기억시켜주는 것이 예술의 가장 중요한 숙제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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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상상력 대량생산 시대의 예술

예술작품 대량생산 가능

창발적 능력 생성형 AI 시대

인류의 영원한 문제 고민할

인간을 위한 예술은 숙명

100년 전 유럽은 충격과 변화의 세상이었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러시아, 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 그리고 오스만 제국까지 멸망시켜버린 1차 세계대전. 팔과 다리를 잃거나 장님이 되어 전쟁터에서 돌아온 수많은 젊은이들은 이야기 한다. 자신들이 상상했던 전쟁이 아니었다고. 소설책에서 읽고 유럽 도시 곳곳에 있는 동상들이 보여주던 전쟁과는 너무나도 달랐다고. 그 누구도 기관단총에서 자동으로 발사되는 총알을 피할 수 없었고, 탱크와 비행기가 승패를 결정하는 전쟁. 더 이상 개인의 용맹과 능력이 아닌 국가의 기계 대량생산 능력이 모든 것을 결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독일 철학자 발터 벤야민은 경제와 전쟁을 넘어 기계의 대량생산 능력은 예술과 문학에도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거라고 생각했다. 사진과 필름을 통해 수천 번 복제될 수 있다면, 왜 우리는 굳이 미술관에 가서 작품을 봐야 할까? 미술관에 걸려있는 '오리지널'과 더 이상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한 복제판이 대량생산 될 수 있다면, 오리지널과 복제의 차이는 무의미해지지 않을까?

어쩌면 우리는 100년 전 벤야민의 고민이 급격하게 현실이 되어버리고 있는 세상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인터넷에 올려진 수 천억개 문장을 학습해 언어와 사고능력을 가지기 시작한 생성형 인공지능(AI). 언어학자 노암 촘스키는 챗GPT 같은 생성형 인공지능이 “통계학적 앵무새”에 불과하다고 말하지만, 챗GPT와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섬뜩한 느낌을 피할 수 없다. 가르치지도, 설명하지도 않은 내용을 스스로 추론해내는 창발적 능력을 보여주는 생성형 AI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지난 30년 동안 인류가 자발적으로 인터넷에 올려놓은 문장과 그림과 동영상들. 그 모든 것들은 결국 인간의 생각과 상상력과 기억이지 않을까? 그렇다면 생성형AI는 단순히 문장과 그림을 학습한 것이 아니라 인류의 꿈과 두려움과 생각을 배워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이제 거대언어모델(LLM)들은 단순한 문장을 넘어 글과 그림, 그림과 영상, 그리고 영상과 소리의 상호관계 역시 학습하고 예측하기 시작한다. “로봇과 대화 나누는 발터 벤야민을 그려줘”라고 입력하면 순식간에 그림을 그려주는 AI. 인터넷에 동일한 그림이 존재하지 않았으니, 진정한 의미에서 새로운 창작물이다. 그리고 한 장을 창작한 기계는 쉬지 않고 100장, 1000장, 100만장을 그려낼 수 있다.

AI프로그램으로 제작한 이미지(오른쪽)에 톨스토이 초상화 합성(이영우 미술팀 부장 20wo@asiae.co.kr)

문학도 비슷하다. 19세기 러시아 소설가 레프 톨스토이는 1200장이나 되는 대작 '전쟁과 평화'로 유명하다. 단어 하나하나, 문장 하나하나를 손으로 작성한 톨스토이는 6년에 걸려 글을 완성했다고 한다. 하지만 언젠가 AI는 1200장 되는 소설책을 6년이 아닌 6초 만에 완성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왜 인간이 6년 동안 고생하고 괴로워하며 창작을 해야 할까? 우리가 더 이상 접시와 그릇을 직접 손으로 만들지 않듯, 미래 예술작품과 영화화 소설은 기계가 대량생산하면 되지 않을까?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상상력이 대량생산될 수 있는 세상을 경험하게 될 우리는 진지하게 질문해야 한다. 왜 인간이 여전히 예술을 해야 할까? 왜 직접 시와 소설을 써야 하고 인간이 여전히 무대에서 무용하고 노래를 해야 할까?

수학자 노버트 위너는 1950년 출간된 '인간의 인간적 활용'이라는 책에서 고도로 자동화된 기계가 산업, 경제, 사회, 그리고 정치와 예술까지 바꿔 놓을 수 있는 미래를 상상한다. 위너가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라고 부른 기계를 알게 된 예술가 백남준은 하지만 이런 결론을 낸다. 사이버네틱스 예술보다 사이버네틱스 시대에 살게 될 인간을 위한 예술이 더 중요하다고.

결국 생성형 인공지능 시대 예술의 핵심은 인공지능이라는 새로운 도구를 넘어 상상력 대량생산 시대에도 여전히 존재의 의미와 인류의 영원한 문제들을 고민할 인간을 위한 예술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아니, 어쩌면 그런 질문들을 잊지 않도록, 인간이 여전히 인간인 것을 기억시켜주는 것이 예술의 가장 중요한 숙제일 수도 있겠다.

김대식 카이스트 전기 및 전자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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