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공약으로 등장한 촉석루 '국보 승격'... "원형 복원 안돼 어렵다"

윤성효 2024. 3. 8.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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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은 '불가능' 입장 이미 밝혀... 박정기 "촉석루 제대로 복원 안됐다"

[윤성효 기자]

 진주성 촉석루.
ⓒ 윤성효
 
경남 진주에서 4·10 국회의원 선거에 나선 (예비)후보들이 '촉석루의 국보 환원'을 다시 주장하고 나섰다. 문화재청은 이미 '불가' 입장을 밝혔지만 지역에서는 같은 요구가 반복되고 있다.

남강 벼랑 위 진주성 안에 지어진 촉석루는 고려 고종 28년(서기 1241년)에 창건했고, 모두 여덟 차례의 중건·보수를 거쳤으며, '남장대(南將臺)'로서 '장원루(壯元樓)'라고도 불린다.

영남 제일의 아름다운 누각으로 꼽히는 촉석루는 1948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그런데 6·25 때 불에 타 소실되면서 1956년 국보 지정이 해제되었다. 1960년에 다시 지어어진 촉석루는 1983년 경상남도 문화재자료에 이어 2000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제666호)가 되었다.

촉석루, 평양 부벽루와 함께 조선 3대 누각으로 꼽히는 밀양 영남루는 2023년 12월 국보로 재지정되었다. 영남루는 1933년 보물로 지정됐다가 1955년 국보로 승격되었고 문화재보호법에 따른 문화재 재평가로 1962년 보물이 되었다가 60년 만에 다시 국보가 된 것이다.

진주 일부에서는 "영남루는 국보로 다시 승격되었는데 왜 촉석루는 되지 않느냐"는 말도 나온다. 진주에서는 2023년 촉석루의 국보 재지정을 요구하며 서명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최근에는 총선에 나선 후보들이 같은 주장을 하며 공약으로 제시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한경호 총선후보(진주을)는 최근 공약 발표를 하면서 '촉석루의 국보 환원과 진주외성 복원'을 제시했다. 한 후보는 "조선 3대 누각인 촉석루가 6.25전쟁 때 소실 재건되었지만 국보가 취소되어 현재 경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돼 있다"라며 "촉석루의 역사성, 상징성, 형평성 등을 고려해 볼 때 원래의 국가문화재(국보)로 환원이 시급하다"라고 했다.

한 후보가 거론한 '형평성'은 영남루와 숭례문과 비교한 것이다. 영남루가 다시 국보로 승격했고, 2008년 불에 탔다가 2013년 다시 지어진 숭례문(남대문)은 여전히 국보라는 것이다.

같은 선거구 국민의힘 김재경 예비후보도 이번에 "진주성 일원을 관광자원으로 승화시키기 위해 인사동 골동품 거리를 중심으로 해자를 복원해 남강과 연결하고 촉석루의 문화재격 상승을 위한 재정비도 추진한다"라고 밝혔다.

김재경 후보는 국회의원이던 2013년 11월 "촉석루의 국보 재지정이 안된다면 헐어버리고 다시 짓자"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당시 김 후보는 "촉석루의 국보 재지정 문제에 문화재청의 소극적 대응이 아쉽다"면서 "국보 재지정이 어렵다면 아예 헐어버리고 원형대로 복원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촉석루 원형 복원 비용으로 55억원이 추산된다"라고 밝힌 바 있다.
  
 촉석루를 헐어버리고 다시 짓자는 주장도 나왔다. 사진은 관련 내용을 다룬 경남도민일보 2013년 11월 26일자.
ⓒ 윤성효
 
박정기 전통조경전문가 "지난 시대 통탄할 과오도 우리의 업보"

촉석루가 국가문화재(보물·국보)로 지정이 되지 않는 이유가 있다. 소실되었다가 복원할 때 원형대로 짓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헐어버리고 다시 짓자는 주장까지 나왔던 것이다.

전통조경전문가 박정기씨는 최근 <오마이뉴스>에 보내온 자료를 통해 "재건한지 60년이 갓 지난 지방문화재를 국가문화재로, 그것도 보물이 아닌 국보로 지정(승격)하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로서 한마디로 난센스다"라고 했다.

김재경 전 의원이 2013년 '다시 짓자'는 주장을 했을 때 박정기씨는 당시 사회관계망서비스에 올린 글을 통해 "남대문은 불타지 않은 이전의 고재(古材) 일부를 재사용하여 원형 그대로 복원하였고, 촉석루는 새로 지으면서 원형을 훼철(毁撤)하였다"라며 "고건축 문화재에서 '원형'과 '원형에 가까운' 차이는 엄청나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1950년대 말 촉석루 복원 운동은 '무식, 용감'의 극치였다. 경회루를 흉내 내어 석재기둥을 도입하고 품격을 높인다고 지붕선형을 변형했다. '일신우일신'은 문화재 복원에서 가장 경계해야함을 간과한 것"이라며 "대한민국 국보 가치와 정체성을 얄팍한 애향심으로 폄하해서는 안 된다. '무식 용감'의 산물 촉석루, 허물지 말고 그냥 두자. 한 세기(100년)가 지나면 지정하지 말라고 해도 틀림없이 국보가 되고도 남는다. 지난 시대 통탄할 과오도 우리의 업보 아닌가"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2013년 12월 촉석루의 국가문화재 재지정 주장이 다시 불거졌을 때, 박정기씨는 사회관계망서비스에 올린 글에서 "영남루는 촉석루를 베껴 지었다. 곧 아류에 불과하다. 다행히(?) 촉석루가 한국전쟁 때 불타 사라지고 그래서 국보 위를 잃은 터라 꿩 대신 닭이라고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자리매김하고 있지만 촉석루가 소실되지 않았거나 1960년 중건 당시 제대로 복원했더라면 영남루는 촉석루에 '쨉'도 되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했다.

그는 "국가문화재 영남루를 보물에서 국보로 승격을 추진해 줄 것을 감히 제안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가 이때 제기했던 영남루의 국보 승격이 2023년 말에 실제 성사가 된 것이다.

당시 그는 "영남루는 촉석루를 베껴지었다고 말했지만 적어도 현재 시점에서는 형보다 나은 아우이다. 특히 아래 위 부속 전각이 계단식 회랑으로 연결된 영남루만의 독특한 구조는 국보의 품격에 손색이 없다"라며 "영남루와 촉석루. 극명하게 엇갈리는 양(兩) 문화재 이력에서 우리는 전통유산의 보존이 얼마나 어렵고 중요한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라고 했다.

최근 다시 촉석루의 국보 환원 주장이 나오자 박정기 전통조경전문가는 "지금의 촉석루는 원형을 훼철(毁撤)하여 '복구'에도 미치지 못한다. 고재(古材)를 사용하여 원형대로 복원한 남대문을 비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라며 "영남루는 되는데 촉석루는 왜 안 되느냐는 주장은, 영남루의 '본디 그대로(원형)'와 계단식 회랑을 가진 '남다름(독특함)'을 몰각(沒却)한 논리로 국가지정 문화재에 대한 이해 부족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루(樓)는 높은 마루(2층구조)를 가진 규모 있는 공적 공간(open space)이다. 촉석루는 사방 담장에 에둘러져 있고, 나무를 심어 차폐성(遮蔽性, 가림현상)이 도드라져 루(樓) 고유의 공간구조와는 이질감이 있으며, 담장과 나무로 인하여 루가 낮아 보여 전통건축미학을 떨어뜨리기까지 한다"라고 말했다.

박정기씨는 "'종물은 주물을 따른다'에 비추어 촉석루는 진주성이 갖는 역사적 사실, 곧 정체성에 맞는 현상을 가져야 하고 촉석루에 따르는 현상 또한 촉석루가 갖는 정체성에 벗어남이 없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촉석루는 일찍이 우리나라 3대 루(樓)로 자리매김했다. 지역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임은 틀림없는 사실이다"라며 "그러나 준거(準據)에 벗어난 주장은 팔은 안으로 굽는, 극단적 지역주의에 빠질 수 있다. 저는 경남의 정체성이자 자존심이라 할 수 있는 진주성과 촉석루를 누구보다 사랑한다, 제대로 된 진주성과 촉석루를 위해 쓴소리를 해온지 10년이 훌쩍 넘었다. 논개사당 앞 왜철쭉은 뽑혀나갔지만 제대로 되려면 아직도 한참 멀었다. 촉석루 국보승격 운동에 앞서 쉬운 일부터 먼저 해 주었으면 좋겠다"라고 했다.
  
 진주성 촉석루.
ⓒ 윤성효
 
진주시청 관계자 "재건하며 전통방식대로 하지 않아"

진주시청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와 전화통화에서 "2014년에 문화재청에 촉석루의 국보 승격을 신청했다가 2016년에 부결되었다. 이유는 원형대로 복원되지 않았다는 게 확인되었고 재건하는 과정에서 전통방식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라고 밝혔다.

그는 "소실 되기 이전 사진은 있었지만 도면이라든지 건축 방식 등에 대한 자료가 없어 확인이 되지 않았다"라며 "공공기관의 수장고에 묻혀 있는 자료들을 찾아내 전산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촉설루 건축 관련한 자료가 나오기를 기대하고 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촉석루와 남강을 포함해 명승으로 지정하는 방안에 대해 검토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진주성 촉석루와 남강. 앞 조형물은 진주시 캐릭터 '하모'.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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