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차례상 보며 “결혼 힘들겠다”…달라진 TV 예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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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 위에 종과 횡을 맞춰 정갈히 놓인 차례 음식.
먹음직스러운 차례상을 보고도 패널들은 말이 없다.
"이거(방송) 나가면 결혼하기 더 힘들겠는데?" 그제야 긴장을 푼 패널들이 저마다 말을 보탠다.
손씨는 "아이를 낳아 기르려면 커리어에 타격을 입을 텐데, 출산 여부를 내 뜻대로 결정할 수 없다면 결혼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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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 위에 종과 횡을 맞춰 정갈히 놓인 차례 음식. 먹음직스러운 차례상을 보고도 패널들은 말이 없다.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는 표정이 미묘하다. 어색한 침묵을 깨고 음악 프로듀서 코쿤이 농담을 던진다. “이거(방송) 나가면 결혼하기 더 힘들겠는데?” 그제야 긴장을 푼 패널들이 저마다 말을 보탠다. “떡을 박스에서 꺼냈어”(샤이니 키), “‘나 혼자 산다’에서 오래 보겠네요”(박나래), “(결혼할 나이를) 60으로 봅니다”(코쿤)….
지난달 23일 전파를 탄 MBC ‘나 혼자 산다’ 속 김대호 아나운서의 설 에피소드는 온라인에서 ‘비혼 교보재(교육 보습 재료)’로 통한다. 가족 내 여성 구성원에게 집중된 명절 가사노동에 젊은 세대가 문제를 제기하면서다. 대가족이 모여 차례를 지내고 식사를 나누는 모습이 화목하게 여겨지던 때는 이제 지났다. 방송을 본 손모(32)씨는 “방송을 보니 가부장적인 분위기가 느껴져 거부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유튜브에 올라온 영상에도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온다”거나 “다른 집 딸(며느리)들이 차린 차례상 밥상 받으며 성산 김씨 외치는 게 웃프다”는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지난 3일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혼인 건수는 19만3673건(잠정)으로 집계됐다. 10년 전(32만2807건)보다 40.0% 감소한 수치다. 결혼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인구도 크게 줄었는데, 그중에서도 결혼에 부정적으로 응답한 비중은 청년과 중장년 모두 여성이 남성보다 높았다. “저거(명절 분위기) 보고 자란 1990년대생 여자들이 비혼 선언하면서 최저 출생률을 기록하는 거”라던 ‘나 혼자 산다’를 향한 반응이 통계 수치로도 확인되는 모양새다. “방송 속 출연자를 옳다 그르다고 판단할 수는 없으나 달라진 사회적 분위기가 프로그램에도 반영된 것”(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이란 분석이 나온다.
달라진 결혼·출산·육아에 대한 인식은 연애 예능에서도 나타난다. 올해 초 방송된 Mnet ‘커플팰리스’ 속 한 장면. 자녀 넷 이상을 원한다고 밝힌 남성 출연자는 높은 연봉에도 여성 출연자들에게 선택받지 못했다. 여성 출연자들 사이에서 “마흔(살)까지 아이를 낳아야 한다” “아이를 네 명 낳으면 최소 10년은 갈아지는데”란 걱정이 큰 탓이었다. 통계청이 집계한 작년 4분기 기준 출생률은 0.65명으로 집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손씨는 “아이를 낳아 기르려면 커리어에 타격을 입을 텐데, 출산 여부를 내 뜻대로 결정할 수 없다면 결혼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결혼을 전제로 남녀를 매치하는 이 프로그램 시청률은 1% 미만으로, 티빙 ‘환승연애3’ 등 다른 연애 예능보다 화제성이 낮다.
김헌식 평론가는 “과거 TV 예능 등 대중매체에선 1인 가구를 외롭거나 불완전한 존재로 연출하는 경향이 강했지만, 최근엔 1인 가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이들의 다양한 일상을 조명하는 데 집중한다”고 짚었다. ‘나 혼자 산다’ 터주대감인 방송인 전현무도 지난해 말 이 프로그램 1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시청자들이 혼자서 당당히 사는 모습을 응원해주신다”고 했다. 김 평론가는 “연애 예능 프로그램이 늘고 있으나 시청자에게 연애 감정을 불러일으키거나 데이트 방식을 코치하는 형식은 거의 없다”며 “시청자도 연애 예능을 일종의 판타지 드라마나 리얼리티로 즐길 뿐 자신의 일상과는 분리해서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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