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관인 내가 자살예방 강사가 된 까닭

박승일 2024. 3. 8.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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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 미리 알면 막을 수 있는 일입니다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박승일 기자]

지난 2020년부터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주관의 '생명지킴이'(자살예방) 강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생명지킴이 교육을 통해서 자살 위험에 처한 주변인의 신호를 인식하여 지속적 관심을 가지고 그들이 적절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기관이나 전문가에게 연계해 줄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이 주된 목적입니다.

사실 나는 '자살'이라는 단어 자체가 남의 일이라고만 생각하고 자랐습니다. 그러다 경찰관이 되었고 수많은 사건 현장을 출동하면서 '수사보고서'를 작성할 때나 쓰는 단어가 되었고, 그러면서 조금씩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내 삶의 일부가 바뀌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벌써 10년 전의 일입니다. 그 당시 나는 경찰청에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경찰관으로 근무는 10여 년을 하고 있었고 무슨 일이든 열심히 하고 싶은 욕심 많은 30대였습니다.

그때 사회에서 만난 동생이 한 명 생겼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 그는 대학생이었습니다. 그 동생이 군대를 다녀온 후에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남들이 부러워 할 직장에도 취직했었습니다. 그리고 직장 생활에 대한 고민을 이야기 하면서 가끔 만나 술도 한 잔씩 했습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그 동생은 누구나 겪는 직장 스트레스라고 가볍게 생각했었습니다.

그 동생이 직장 생활을 2년쯤 했을 때로 기억합니다. 오후 8시가 조금 넘어 동생으로부터 내게 전화가 왔습니다. "형 뭐해?"라는 짧은 물음에 "나, 일하지. 아직 회사야. 언제 끝날지도 모르겠고, 오늘도 12시는 돼야 집에 갈 것 같은데. 왜?"라고 물었습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동생은 몇 초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짧게 "아니, 안 바쁘면 술이나 한 잔 할까 했지"라는 말을 했고, 나는 다음을 약속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리고, 3일 뒤 그 동생은 스스로 하늘나라로 떠났습니다. 당시 나는 엄청난 죄책감에 시달렸습니다. '내가 왜? 그의 힘듦을 알아채지 못했을까. 내가 왜? 도와주지 못했을까. 내가 왜? 바쁜 부서에서 일을 하고 있었을까. 내가 왜? 전화를 빨리 끊었을까' 수없이 많은 질문을 내 스스로에게 던졌습니다. 그럴수록 나의 대한 원망은 더욱 커져갔습니다.

결국 나는 심리상담을 8차례 정도 받고서야 스스로 지고 있던 짐을 조금은 덜 수 있었고 위로도 받았습니다. 그 뒤로 지금까지도 그 동생이 안치되어 있는 납골당에 종종 가고 있습니다.
 
▲ 친한 동생 어머니가 남긴 글 몇 글자에 어머니의 진심이 느껴졌다.
ⓒ 박승일
 
그러다 어느 땐가 그 동생의 어머니께서 내가 놓아둔 꽃 옆에 작은 카드 하나가 놓아 두셨습니다. 

'OO이 엄마예요. 잊지 않고 기억해줘 고마워요'

이 짧은 몇 마디에 담긴 어머니의 마음을 충분히 알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자주 가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끔 아직도 그 동생의 SNS에 글을 남기고 있습니다. 이제 그곳은 제게 그를 생각하는 나만의 추모 공간이 되었습니다.

형 보여? 나 지금 네가 쉬고 있는 곳에 있잖아. 여긴 지난주가 설 연휴였어. 형은 맛난 것도 많이 먹고 잘 쉬었어. 너 별로 꽃 좋아하지도 않았던 거 같은데 네가 있는 곳에만 많네. 좋다. 많이들 널 기억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만큼 네가 잘 한 거지.

형 지금 세 번째인 거 같은데 이제 네가 자주 생각 안 난다. 이게 간사한 인간의 모습이야. 너무 미워하지 마. 내게도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그래도 덕분에 너 자주 볼 수 있었던 거 같아. 안 그랬으면 이렇게 오지도 못했을텐데 그건 감사해.

조금 전 건너편에서 들려 온 얘긴데 "여보 조금만 있으셔. 나도 곧 갈게"라며 백발의 어르신 목소리를 들으니 먹먹해 진다. 난 그런 말 안 해. 그만큼 너 좋아하진 않아. 그래도 너 나름 괜찮고 재밌는 동생이었다.

잘 쉬렴. 2015년 2월 24일
 
▲ 하늘나라로 떠난 동생의 SNS 이제는 동생을 기억하는 나만의 추모 공간이 되었다.
ⓒ 박승일
잘 있냐? 7년 전 니가 내 페이스북에 남긴 댓글이 오늘 그때의 추억이라고 보이네. 시간은 참 이렇게 흐르건만 별로 변한 건 없다. 지금 서울은 주룩주룩 비가 와. 내가 널 그리는 마음 같다. 부디 하늘나라에선 이곳보다 훨씬 더 행복하길 기도해. 안 그럼 아주 그냥 ㅠㅠ. 이곳에서 더 챙기지 못한 것도 참으로 미안해. 평생 그럴 거 같구나. 보고 싶구나. 너의 말도 안 되는 장난 뒤에 잇몸이 보이게 웃던 모습이……. - 2019년 7월 24일
 
▲ 하늘나라로 떠난 동생의 SNS 이제는 나만의 추공간이 되었습니다.
ⓒ 박승일
 
그러다, 지난 2020년 '생명지킴이' 강사가 되었습니다. 지난해에는 겸직을 허가 받아 교육을 원하는 기관이나 학교 등에서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강의를 하면서 더 많은 위로를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충분히 보람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게 있었던 한 사건으로 인해 또 다른 분야에서 일을 하게 되었고, 지금은 그 일이 얼마나 소중한지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높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를 예방하기위한 노력은 아직도 많이 부족한 실정입니다.

자살예방 생명지킴이는 자살위기자를 식별하는 지식과 태도, 기술을 습득하여 자살에 대한 위험 수준을 판단하고 자살의 위험에 처한 주변 사람을 적절한 서비스에 연결해주는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또한, 훈련을 통한 지식과 인식의 변화를 통해 자살 고위험군에 대한 직접적인 개입을 할 수 있도록 합니다. 누구라도 나와 같은 실수를 하고 싶지 않다면 반드시 교육(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등)을 한 번 받아보길 권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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