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하지 않았던 축구 인생" 임민혁의 특별한 작별 인사
[곽성호 기자]
'꿈'이라는 명사는 사람을 설레게 만든다. 꿈을 이루기 위해 사람은 살아가고 노력하며 꿈을 성취하는 순간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환호한다. 꿈을 이룬 사람을 보면 최고의 자리에 서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순간들도 존재한다. 특히 치열한 경쟁 속에서 매일매일 살아가는 스포츠 선수들은 더욱 그렇다. 대한민국에서 프로 축구 선수까지 될 확률은 과연 몇이나 될까. 아마 극히 적은 확률일 것이다.
적은 확률을 통과하고 프로 무대에 입성해 활약하며 팬들에게 인상을 남기는 것, 역시 더 적은 확률이다. 기억이 쉽게 사라지는 프로 축구 무대에서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오래 남는 것 또한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오늘 소개할 축구 선수는 경기장 안에서의 기억은 그리 많지는 않으나 짧지만 길었던 프로 생활에서 깊은 울림을 준 선수이다. 바로 1994년생 전 프로 축구 선수 임민혁이다.
▲ 2022시즌 전남 드래곤즈 유니폼을 입고 활약했던 임민혁 |
ⓒ 한국프로축구연맹 |
임민혁의 포지션은 골키퍼다. 경기에서 단 1명만이 경기장에 나설 수 있는 특수 포지션 특성상 주전 골키퍼가 정해지면 후보 순위에 있는 선수는 벤치에 머물러야만 한다. 임민혁의 프로 생활을 정산했을 때 그가 주전 골키퍼로 활약한 시기는 아쉽게도 존재하지 않는다. 2017년 고려대학교를 떠나 전남 드래곤즈로 입단하며 프로 무대에 도전장을 내밀었던 임민혁은 당시 전남의 주전 수문장이었던 이호승에 밀려 리그 3경기 출전에 그쳤다.
신인 골키퍼였음에도 불구하고 리그 3경기에 나와 6실점을 기록하며 가능성을 엿봤던 임민혁이었으나 이듬해인 2018시즌 중반기까지 단 한 차례도 경기 출전 기회를 부여받지 못하며 아쉬움을 삼켰다. 여름 이적 시장을 통해 대전 시티즌(현 대전 하나시티즌)으로의 임대 이적을 하며 반전을 꿈꿨던 임민혁은 대전에서 리그 9경기에 출전해 11실점을 허용, 주전 골키퍼로서의 가능성을 확인했으나 박주원(전남), 박준혁과 같은 걸출한 자원들에 밀리며 임대 생활을 종료했다.
2019시즌 시작과 함께 전남의 유니폼을 다시 착용했던 임민혁은 벤치와 명단 제외라는 생활 속 단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하며 시즌을 마감했다. 이후 상근 복무를 통해 병역을 해결한 임민혁은 2021년 7월, 제대와 함께 팀에 복귀하며 다시 프로 무대 도전에 나섰다.
팀 복귀 이후 경기 출전을 위해 노력했던 임민혁이었으나 경기 출전에 끝내 도달하지 못하며 시즌을 마감했다. 2022시즌에도 임민혁의 벤치 생활은 길어졌다. 주전 골키퍼인 김다솔(안양)의 활약 속 벤치를 계속해서 지켰던 임민혁은 끝나지 않을 후보 생활의 끝에서 드디어 이장관 감독의 명령을 받아 경기 출전에 성공했다. 2018년 7월 18일에 펼쳐졌던 대전과 충남 아산과의 경기가 마지막 출전이었던 임민혁은 2022년 8월 13일, FC 안양과 전남의 리그 32라운드 경기에 출전하며 4년 만에 경기장 잔디를 밟는 데 성공했다.
비록 안드리고(청두)와 백성동(포항)에 연속 실점을 허용하며 아쉽게 승리를 기록하지 못했으나 임민혁의 활약은 인상적이었다. 안양과의 경기 이후 후반기 전남 최후방을 지킨 임민혁은 2022시즌 리그 12경기 출전을 기록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알렸다. 이듬해 주전 골키퍼로 활약하지는 못했으나 경기에 간간이 출전했던 임민혁은 2023시즌 겨울 이적 시장을 통해 천안 시티 FC로 이적을 택하며 도전에 나섰다.
박남열 감독의 지휘 아래 천안 주전 골키퍼로 활약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리그 6경기 출전에 그쳤다. 짙은 아쉬움 속 2023시즌 종료 후 임민혁은 천안과의 계약을 상호합의하에 해지했고 그렇게 6시즌간 프로 무대에서 묵묵히 활약했던 그는 정들었던 골키퍼 장갑을 벗었다.
▲ 전남 드래곤즈 유니폼을 입고 활약했던 임민혁 |
ⓒ 한국프로축구연맹 |
지난 1일, '2024 K리그 1' 울산 HD와 포항 스틸러스의 공식 개막전으로 팬들의 기대감이 터질 듯 부풀었을 때 임민혁은 자신의 공식 SNS 계정을 통해 은퇴를 발표했다. 임민혁은 "서른 즈음 되면 대충 압니다. 세상에는 간절히 원해도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것을요"라며 "포기하지 않고 끝내 쟁취하는 것도 훌륭한 일이지만 훌륭함만이 삶의 정답은 아니기에 한치의 미련 없이 떠나본다"라고 은퇴 심경을 밝혔다.
이어 "저의 축구 인생은 완벽하지도, 위대하지도, 아주 훌륭하지도 않았지만 정정당당하게 성실히 땀 흘려 노력하는 사람이 대접받는 멋진 세계에서 멋진 사람들과 호흡하고 내 삶의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온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한다"라고 적었으며 마지막으로는 "저는 더 놀고, 일하고, 사랑하고, 연대하면서 새 인생을 살아갈 것이다. 여기저기 축하 만세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모두들 감사했고 잘 머물다 간다"라며 글을 마무리했다.
누구도 그를 주전 골키퍼라고 그리고 이름있는 선수라고 말하지 않았다. 임민혁은 프로 통산 리그 30경기 출전에 그친 무명 선수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의 프로 생활을 되짚어 보면 아주 평범했지만 특별했다고도 볼 수 있다. 그의 말처럼 정정당당히 성실하게 땀을 흘려 프로 무대에 도전장을 내밀었고 완벽하지도, 위대하지도, 훌륭하지도 않았으나 임민혁은 끝까지 자신의 능력과 한계를 포기하지 않았다.
임민혁이 프로 무대에서 보여준 행동과 언행은 축구 세계뿐만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가장 기본이 되는 소양을 몸소 보여준 것이었다. 완벽하지도, 위대하지도, 아주 훌륭하지 않았던 자신이었다고 말했던 임민혁이었으나 어쩌면 가장 프로다운 모습으로 성실하게 살아간 모습은 정말 특별했다고 볼 수 있다.
프로 축구 선수 인생과 이별한 임민혁, 이제 그의 인생 2막을 응원해 본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