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장 앨범에서 연주력 선보인 기타리스트 필 업처치 [B메이저 - AZ 록 여행기]
[최우규 기자]
조금 지루해도 이 이름을 훑을 필요가 있다. 디지 길레스피(Dizzy Gillespie), 스탄 게츠(Stan Getz), 조지 벤슨(George Benson), 지미 스미스(Jimmy Smith), 하울린 울프(Howlin' Wolf), 머디 워터스(Muddy Waters), 비비 킹(B.B. King), 앨버트 킹(Albert King), 어리사 프랭클린(Aretha Franklin), 레이 찰스(Ray Charles), 밥 딜런(Bob Dylan),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 휘트니 휴스턴(Whitney Houston), 빌 클린턴(Bill Clinton) 대통령.
재즈, 블루스, 솔, 팝의 대표적 인물이다. 그리고 전 미국 대통령. 난수표처럼 보이는 이 명단 암호를 풀 열쇠가 있다. 기타리스트 필 업처치(Phil Upchurch)다. 명단은 업처치가 함께 연주했거나, 그의 음악을 연주한 이들의 극히 일부다.
업처치가 기타 세션으로 참가해 이름을 올린 앨범은 1,000장이 넘는다. 자신 이름으로 낸 앨범만 20장이 넘는다. "도대체 필 업처치가 몇 명이냐. 잘 나가는 세션 액스맨(axeman, 남성 록·재즈 기타리스트)들이 필 업처치를 공동명의로 쓰는 것 아니냐"라는 농담이 나왔을 정도다.
왜 그런 이가 한국에서는 무명으로 남았을까. 너무 연주를 잘 맞춰줘서, 너무나 많은 앨범에 참여해서다. 세상은 그래서 참 아이로닉하다.
그는 1941년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필립(Phillip)은 재즈 피아니스트였다. 기타와 만남은 우연이었다. 어릴 적 가게에 진열된 우쿨렐레를 보고 탐냈다. 아버지는 우쿨렐레를 사주며 코드 몇 개를 가르쳐줬다. 업처치는 귀로 음악을 들으면서 연주법을 배웠다. 일렉트릭 기타는 12살 때 얻었다.
필 업처치와 블루스는 뗄 수 없다. 시카고 어반 블루스를 연주하며 자랐다. 또 동네 레코드 가게에서 재즈 오르간 주자 지미 스미스 레코드를 듣고 홀딱 빠졌다.
그가 연주로 처음 돈을 번 때가 1957년, 16살이었다. 시카고에 근거지를 둔 비제이 레코즈에 들어가 스튜디오 뮤지션으로 일했다. 나중에 체스 레코즈 산하 레이블 카뎃 레코즈로 갔다. 비제이와 카뎃은 재즈, 리듬앤드블루스, 솔, 가스펠, 블루스 앨범을 주로 냈다.
1961년 19살이던 필 업처치는 싱글 '유 캔트 싯 다운(You Can't Sit Down)'냈다. 이 곡은 빌보드 순위 29위까지 갔다. 빌 클린턴 대통령이 1993년 1월 취임 축하 파티에서 직접 색소폰으로 연주해 주목받았다.
조지 벤슨과 만남은 극적이다. 기타리스트이자 가수인 벤슨은 1962년 오르간 주자 잭 먹더프(Jack McDuff)와 활동하고 있었다. 하루는 맥더프와 조지 벤슨이 업처치 바로 앞 공연에서 '유 캔트 싯 다운'을 연주했다. 업처치는 조지 벤슨을 찾아가 "내 노래를 나보다 더 잘한다"라고 말했다. 벤슨이 "그런데, 당신은 누구냐"라고 물었다. 업처치가 "아까 그 노래가 내 노래"라고 소개했다. 벤슨은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농담 말라"라고 했다. 소셜미디어가 없던 시대였으니까. 그 뒤 둘은 친구가 됐다. 벤슨 앨범 <배드 벤슨(Bad Benson)>과 <브리징(Breezin')>에서 업처치가 베이스와 리듬 기타 연주를 했다. <브리징>은 1977년 19회 그래미상 3개 부문을 탔다.
업처치는 노력파다. 귀로 들어서 음악을 익힌 그는 악보를 읽기 위해 바흐 음악을 공부했다. 안드레 세고비아(Andrés Segovia)가 편곡한 바흐 악보를 익혔다. 1985년부터 바흐 샤콘느를 연습했다. 취미였다. 10년간 적공했다. 한 공연에서 긴 솔로가 시작됐을 때 샤콘느 생각이 났다. "까짓것 해보지 뭐." 샤콘느를 일렉트릭 기타로 연주했다. 곡이 끝나자 관객들은 미친 듯이 환호했다.
▲ 필 업처치 앨범 <다크네스, 다크네스> 앞면 기타리스트 필 업처치 솔로 앨범 <다크네스, 다크네스> 앞면 |
ⓒ 최우규 |
1972년 앨범 <다크네스, 다크네스(Darkness, Darkness)>에서 재즈, 블루스, 록, 솔 영역을 넘나든다. 연주는 우아하고 혼을 쏙 빼놓는다. 그러면서 전복(顚覆)을 담는다. 팝은 진득한 음악으로, 짙은 감성의 흑인 음악은 담담한 느낌으로 바꿨다. 업치치니까 가능했다.
타이틀 트랙 '다크네스, 다크네스'는 포크록 밴드 영블러드(the Youngbloods) 히트곡이다. 제시 콜린 영(Jesse Colin Young) 노래를 깔끔한 웨스트 코스트의 반짝이는 곡으로 바꿨다. 이 노래 두세 소절만 들으면 더블 앨범 두 장 전체를 다 듣게 된다.
포크 가수 제임스 테일러(James Taylor) 히트곡 '파이어 앤드 레인(Fire and Rain)'도 멜로디를 천천히 부드럽게, 그러면서 의도적으로 꼬았다. 웨스 몽고메리(Wes Montgomery) 같은 코드로 연주를 주도하면서도, 비어있는 부분을 장마철 폭우처럼 메꿔 나갔다.
제임스 테일러의 또다른 곡 '콜드 스웨트(Cold Sweat)'나 퍼시 메이필드(Percy Mayfield)의 '플리스 센드 미 섬원 투 러브(Please Send Me Someone to Love)'처럼 끈적한 노래는 팝 같은 편곡을 했다. 그렇다고 엘튼 존(Elton John)이나 빌리 조엘(Billy Joel) 류가 아니다. 편안하게 듣고 있노라면, 어느 순간 섬뜩하게 메스처럼 파고드는 멜로디, 리듬이 있다.
캐롤 킹(Carole King)의 '유브 갓 어 프렌드(You've Got a Friend)'를 당연히 수록했다. 여기서는 리드 기타가 아니라 리듬 기타가 선보이는 화려한 반주를 들어야 한다. 후반부 플루트 연주로 사이키델리아를 덧입혔다.
마빈 게이(Marvin Gaye)의 '이너 시티 블루스(Inner City Blues)'는 앨범 수록곡 중 최고다. 업처치가 얼마나 음을 효율적으로 다루며 부드러우면서도 불꽃이 번득이게 할 수 있는지 증명한다. 아서 애덤스(Arthur Adams) 곡 '러브 앤드 피스(Love And Peace)'에서는 전형적 블루스록 연주자 소리를 들려준다. "너네, 이만큼 칠 수 있어?"라고 뽐내는 듯하다.
▲ 필 업처치 <다크네스, 다크네스> 기타리스트 필 업처치 솔로 앨범 <다크네스, 다크네스> 뒷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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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최우규 시민기자의 소셜미디어 등에도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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