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파스타] 무리뉴 3년차의 무기력한 로마는 잊어라, 레전드 'DDR 감독' 아래 완벽 부활해 브라이턴 완파
[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AS로마가 자국리그에 이어 유럽대항전에서도 부활했다. '레전드' 다니엘레 데로시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완전히 달라진 팀 컬러가 눈에 보인다.
8일(한국시간) 이탈리아 로마의 스타디오 올림피코에서 2023-2024 유럽축구연맹(UEFA) 유로파리그 16강 1차전을 치른 로마가 브라이턴앤드호브앨비언에 4-0 대승을 거뒀다. 오는 15일 2차전에서 대패만 당하지 않으면 8강에 갈 수 있는 성적이다.
16강을 통틀어 가장 화려한 대진이었기 때문에 빅 매치로 관심을 모았다. 부활 중인 이탈리아 명문이자 파울로 디발라 등 스타선수를 보유한 로마, 그리고 잉글랜드에서 가장 경영을 잘 하는 팀으로 정평이 난 브라이턴의 대결이었다. 하지만 만만찮은 승부를 예상한 것과 달리, 결과는 로마의 완승이었다.
전반 12분 로마가 멋진 선제골을 터뜨렸다. 미드필더 레안드로 파레데스가 수비진까지 내려가 공을 받자마자 문전으로 침투하는 파울로 디발라에게 장거리 스루패스를 내줬다. 기막힌 패스를 받은 디발라가 제이슨 스틸 골키퍼까지 돌파하고 슛을 밀어넣었다. 두 아르헨티나 대표 선수의 멋진 호흡이었다.
브라이턴도 마냥 밀리진 않았다. 경기 초반 사이먼 아딩그라의 슛과 돌파로 반격했다. 하지만 득점 기회마다 꼬박꼬박 슛으로 이어간 쪽은 로마였고, 슛을 반복하다보니 골도 터졌다. 전반 43분 로멜루 루카쿠가 오른쪽 측면에서 직접 루이스 덩크를 압박해 공을 빼앗은 뒤 문전으로 돌진해 왼발슛을 성공시켰다.
후반 19분 코너킥 후 스테판 엘샤라위가 올려준 크로스를 수비수 잔루카 만치니가 몸을 날리며 간신히 발을 대 마무리했다. 후반 23분 왼쪽 측면에서 유연한 패스 전개로 공격을 전개한 뒤 엘샤라위가 공간으로 침투하며 논스톱 아웃프런트 크로스를 올려줬고, 브라이안 크리스탄테의 다이빙 헤딩슛으로 쐐기골이 나왔다.
로마는 2021-2022시즌 UEFA 유로파 컨퍼런스리그 우승, 2022-2023시즌 유로파리그 준우승 성과를 냈던 주제 무리뉴 감독과 올해 초 결별했다. 무리뉴 감독 아래서 팀이 활력을 잃고 점점 쪼그라드는 게 눈에 보이던 시기다. 대신 앉힌 감독이 선수 시절 프란체스코 토티에 이어 로마 2대 레전드로 꼽히는 데로시였다. 하지만 감독 경력이 일천하고 성공한 기록이 없어 기대보다 우려가 컸다. 이번 시즌만 최저연봉으로 버티기 위한 구단의 차선책 정도로 평가절하 당했다.
지난 1월 로마 지휘봉을 잡은 데로시 감독은 데뷔전에서 엘라스베로나에 2-1 승리를 거둔 뒤 3연승을 달렸다. 이후 세리에A 최강 인테르에 패배하고, 유로파리그 녹아웃라운드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페예노르트와 무승부에 그치며 위기를 맞은 듯 보였다. 하지만 이후 세리에A에서는 3연승을 이어 갔으며, 유로파리그에서 페예노르트와 2차전도 비겼지만 승부차기 끝에 16강에 오르더니 브라이턴을 대파하며 이번 라운드는 좀 쉽게 넘길 수 있게 됐다.
데로시 감독 부임 후 컵대회 포함 8승 2무 1패를 기록했고, 그 중 세리에A에서는 7승 1패로 가파른 상승세를 탔다. 현재 세리에A 5위까지 순위를 끌어올렸다. 4위는 돌풍의 팀 볼로냐인데, 승점차가 4점으로 줄어들었기 때문에 역전 가능성은 충분하다. 만약 4위로 올라갈 수 있다면 큰 수익이 보장되는 UEFA 챔피언스리그(UCL) 출전권을 따내면서 늘 아슬아슬 재정 한계로 운영하는 로마 형편에 큰 도움이 된다.
최근 상승세의 중심에는 살아난 스타 선수들이 있다. 디발라는 데로시 감독 부임 이후 8골 1도움을 몰아쳤다. 특히 최근 3경기에서 토리노전 해트트릭 등 5골 1도움을 집중적으로 기록했다. 루카쿠는 감독 교체 후 4골 2도움을 올렸으며, 최근 3경기 2골 2도움으로 역시 기세가 좋다. 이번 시즌 알토란 같은 활약을 해 주는 윙어 엘샤라위는 데로시 감독의 첫 경기였던 베로나전에서 2도움을 올리며 좋은 합을 보여줬고, 부임 후 1골 5도움을 기록 중이다. 그밖에 데로시 감독 부임 이후 본격적으로 주전 자리를 굳힌 밀레 스빌라르 골키퍼의 선방쇼도 브라이턴전 승리의 중요한 요소였다. 이날은 공격 포인트가 없었지만, 무리뉴 감독 시절 유독 부침이 심했던 로렌초 펠레그리니가 5골 3도움으로 감독 교체 후 펄펄 나는 것 역시 큰 호재다.
로마는 늘 UEFA의 재정적 페어플레이(FFP) 규정을 간신히 준수한다. 매년 허용된 예산을 마지막 1유로까지 짜내 조금이라도 화려한 선수단을 구축하려 노력했다. 여기에 자유계약 대상자나 임대 선수를 싸게 데려오는 수완까지 발휘하며 디발라, 루카쿠 등 슈퍼스타급 라인업을 구축했다.
스타 선수들은 이번 시즌 초중반까지 아쉬웠던 팀 성적과 달리, 충분히 상위권으로 도약할 수 있는 스쿼드임을 스스로 입증해가고 있다. 브라이턴전도 전술로 압도한 건 아니었다. 점유율은 40.5%로 오히려 열세였고, 슛은 14회 대 11회로 근소한 우위에 그쳤다. 그러나 득점 가능 상황에서 오차 없이 마무리해줄 수 있는 스타 선수들이 있기에 로마는 대승을 거둘 수 있었다. 한결 공격적인 전술을 마련하고 팀에 활력을 불어넣은 것으로 데로시 감독은 봉인돼 있던 저력을 끌어냈다.
※ 김정용 기자가 연재하는 '오늘의 파스타'는 세리에A를 비롯한 이탈리아 축구 소식을 다룹니다.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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