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 하위 인천이 K리그 강자가 되던 순간

김성호 2024. 3. 8.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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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의 씨네만세 660] <비상 2022: 피치 위에서>

[김성호 기자]

K리그가 개막했다. 1라운드에만 10만 명 가까운 관중이 경기장을 찾았다. 리그는 바야흐로 최전성기에 돌입했다. 뜨거운 관심 속 각 12개 팀 씩, 1부와 2부에 속한 24개 팀이 새로운 역사를 써나간다. 가장 주목받는 건 역시 우승컵의 향방이다. 전년도 챔피언 울산 HD FC와 돈 보따리를 푼 도전자 전북 현대 모터스, 이름값 만큼은 역대 K리그 최고의 용병이라 해도 좋을 린가드를 영입한 FC서울이 우승컵을 두고 다툴 후보군으로 손꼽힌다.

그러나 드라마는 오로지 가장 강한 자만 쓰는 것이 아니다. 두 리그에 속한 24개 팀이 모두 같은 꿈을 꿀 수만은 없는 일이다. 각자의 상황 아래 적합한 목표를 두고서 전력을 다해 싸운다. 그중 누구는 미래를 위하여 오늘을 단련하고, 또 누구는 당면한 위기에 맞서 수성에 급급할 테다. 개중에선 투자에 맞는 성과를 내기 위해 진력하는 팀도, 어느 때보다 강해진 전력으로 은근히 위를 바라보는 팀도 있게 마련이다.

우승컵 반대편엔 강등이 있다. 아챔이라 불리는 AFC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참가를 위한 규정에 따라 승강제를 채택한 이래 K리그1의 최하위팀은 K리그2로의 자동 강등을, 차하위팀은 K리그2 2위 팀과의 플레이오프를 통해 강등을 당할 수 있다. 시장규모가 작은 리그로의 강등은 구단 운영에 엄청난 차질을 빚게끔 한다. 전력이 처지는 팀들이 강등을 피하는 데 사력을 다하는 이유다.
 
▲ 비상 2022 포스터
ⓒ 인천UTD
 
생존왕 인천이 강팀이 되기까지

한때는 생존왕이라고 불렸다. 인천 유나이티드 이야기다. 시민의 지원과 지자체의 보조로 운영되는 시민구단은 기업구단에 비해 운영비가 적을 밖에 없다. 강원FC, 수원FC, 대구FC, 광주FC의 한 해 연봉지출액이 각 8, 10, 11, 12위로 리그 최하위 수준인 이유다. 그러고도 쓰는 돈 만큼 벌어들이지 못하니 사정이 열악한 지자체는 팀을 해체하겠다며 엄포를 놓기도 한다. K리그 간판 시민구단인 인천 또한 상황이 그리 넉넉하진 않았다. 그로 인해 오랫동안 매년 강등권 싸움을 펼쳐야 했다.

그러나 인천은 특유의 끈끈한 조직력으로 위기를 극복했고, 매년 살아남으며 생존왕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고는 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지자체 및 공공기관들의 늘어난 지원에 힘입어 반등에 성공하여 오늘의 인천에 이르는 것이다. 2023년도 인천의 선수단 총 연봉은 전체 12개 구단 가운데 5위로 무려 118억 원이었다. 연봉 지출 100억 원이 넘는 여섯 구단 가운데 유일한 시민구단이었다. 인천은 이에 힘입어 리그 5위를 달성했고, 전년도에 이어 K리그 강팀의 기준인 상위스플릿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인천의 반등은 2020년대 들어 본격화됐다. 2020년도 11위로 끝에서 두 번째 자리를 차지했으나 상주 상무가 연고지를 김천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자동 강등되며 운 좋게 잔류에 성공했다. 인천은 다음해 리그 8위로 상위스플릿 진출을 놓고 치열하게 다퉜고, 2022년도엔 4위를 기록하며 아챔 출전권 획득이라는 기염을 토했다. 아챔 포함 3개 대회를 병행해야 했던 2023년도에도 초반 부진을 딛고 5위에 올라 명실상부한 K리그의 강팀이란 평가를 받았다.
 
▲ 비상 2022 스틸컷
ⓒ 인천UTD
 
인천 반등의 정점, 다큐로 만나다

인천 반등의 정점이라 해도 좋을 2022년 시즌은 한 편의 다큐멘터리로 제작됐다. <비상 2022>가 그 작품이다. 인천 뿐 아니라 K리그 축구팬은 <비상>이라는 작품을 기억한다. 오늘에야 여러 OTT 서비스를 바탕으로 다큐를 제작해 배급하는 것이 드문 일이 아니지만 과거엔 달랐다.

2004년 막 창단된 시민구단 인천은 제대로 된 훈련장도 없는 열악한 팀이었다. 그러나 그 팀은 장외룡 감독의 지휘 아래 K리그의 다크호스로 급부상하며 파란을 일으킨다. 그 시절 다큐멘터리 감독 임유철이 직접 카메라를 들고 이들의 이야기를 찍어내니 그 작품이 바로 2006년 작 <비상>인 것이다.

<비상>은 스포츠 다큐 사상 최고의 명대사로 꼽히는 "라돈, 임마 투게더!" 등 많은 이야깃거리를 남겼다. 그로부터 인천은 팬들에게 한걸음 가까이 다가설 수 있었다. 인천이 여전히 <피치 위에서> 같은 프로젝트로 팬들에게 다가서려 하는데 이 같이 성공적인 작업의 영향이 없다고 할 수 없다. <비상 2022>가 '비상'이라는 제목을 단 데도 이러한 이유가 있을 테다.
 
▲ 비상 2022 스틸컷
ⓒ 인천UTD
 
순조롭던 시즌, 기둥이 뽑혔다

<비상 2022>는 제목에서 말하듯 2022 시즌을 다룬다. 만년 하위팀이던 인천이 모든 팀이 꿈꾸는 아챔 출전권을 획득한 바로 그 시즌이다. 덕장이라 불러 마땅한 조성환 감독이 제대로 지휘하는 두 번째 시즌, 구단의 지원 또한 크게 늘어나며 팀은 조금씩 제 색채를 갖추기 시작한다. 전년도를 8위로 마쳤으나 잠깐이나마 4위까지 기록한 상승세도 있었기에 선수단은 더는 만년 하위팀이 아니라는 기대도 갖는다. 이에 발맞춰 겨울 이적시장에서 이명주 등 검증된 선수를 영입해 전력을 보강한다.

시즌은 제법 순조롭다. 쉽게 패하지 않는 팀으로 거듭난다. 그 중심엔 몬테네그로 공격수 무고사가 있다. 2018시즌부터 인천에서 뛰어온 그는 K리그를 대표하는 공격수다. 그 정점이라 해도 좋을 해가 바로 다큐가 그린 2022시즌, 그는 전반기 18경기에서 무려 14골을 기록하며 팀의 공격을 이끈다. 무고사가 득점을 올리고 다른 선수들이 뒷받침하는 인천의 전술에 많은 팀이 그야말로 속수무책이다.

그런 무고사가 여름 이적시장에서 깜짝 이적을 발표한다. 일본 J리그의 비셀 고베로 이적한 것이다. 당시 강등권에 놓여 있던 고베가 바이아웃인 100만 달러를 제안하고 선수 계약에서도 인천이 잡을 수 없는 조건을 제시한 터라 인천으로선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인천은 결국 무고사 없이 남은 시즌 절반을 치러야 했다.
 
▲ 비상2022 조성환 감독
ⓒ K리그
 
인천 넘어 축구를, 축구 넘어 인생을

다큐는 팀의 기둥이 빠져나간 이후 그를 수습하는 감독과 선수들의 모습을 담는다. 대체자로 영입된 에르난데스가 빠르게 적응해 활약하지만 FC서울 기성용과의 경합 과정에서 시즌아웃을 당하며 공격진의 구멍을 메우지 못한다. 그럼에도 신인급 선수들의 고른 활약이 팀에 큰 보탬이 되며 팀은 끝까지 상위스플릿에서 경쟁한다. 최종 득점 46점으로 리그 8위 수준에 불과한 공격력을 가지고 이렇게 싸워낼 수 있었던 데는 감독의 지도력과 단단하게 뭉친 팀의 조직력이 큰 역할을 했다고 봐야 할 테다.

다큐는 위기 속에서도 자리를 잡아가는 조직의 모습을 가까이서 보여준다. 감독과 코칭스태프, 구단 관계자 및 선수들의 인터뷰를 통해 그들의 내면에 어떤 강함과 끈끈함이 생겨나는 모습을 놓치지 않고 담는다. 모두가 약팀이라 했던 팀이 새롭게 거듭나는 과정은 결코 그리 흔하지만은 않은 것이다.

사람과 사람이 함께 모여 이루는 팀이라는 집합체, 그 팀을 이루는 조화들을 수많은 관계자가 조금씩 모여 다듬어낸다. 목표를 설정하고 문제를 바로잡으며 서로를 일깨우고 나아가는 이들의 모습이 인천의 성공기를 넘어 축구라는 스포츠, 나아가 삶을 알게 한다. 비록 과거 <비상>이 이룬 멋에는 전혀 미치지 못함에도, 2022시즌 인천이 담겼으므로 이 다큐의 가치가 분명하다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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