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농구' 승률 90%와 33.3%의 대결, 대이변 나올까
[양형석 기자]
지난 1일 정규리그를 끝낸 여자프로농구는 오는 9일부터 플레이오프 일정을 시작한다. 정규리그 우승팀에게 챔피언 결정전 직행 티켓이 주어지는 KBO리그, V리그와 달리 WKBL은 정규리그 1위와 4위, 2위와 3위가 5전 3선승의 플레이오프를 치르는 '크로스 토너먼트' 방식을 택하고 있다. 정규리그 우승팀의 프리미엄이 적다는 지적도 있지만 WKBL은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4개 팀에게 똑같이 우승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쪽을 선택했다.
챔프전 우승을 위해 필요한 승수가 6승인 것은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4개 구단이 모두 마찬가지다. 하지만 플레이오프에서 맞붙는 정규리그 우승팀 KB스타즈와 4위 하나원큐의 우승확률이 같다고 생각하는 농구팬은 거의 없다. KB가 정규리그 30경기에서 27승 3패로 90%의 승률을 기록한 반면에 하나원큐는 10승20패 승률 33.3%에 그쳤을 정도로 양 팀의 전력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규리그 맞대결에서도 KB가 6전 전승을 기록했다.
하지만 KB와 하나원큐의 플레이오프에는 농구팬들의 관심을 모을 만한 지점이 있다. 바로 2020-2021 시즌까지 하나원큐의 에이스였던 강이슬이 KB 이적 후 봄 농구 무대에서 처음으로 '친정' 하나원큐를 만나는 것이다. 또한 FA와 보상선수로 유니폼을 갈아 입었던 KB의 김예진과 하나원큐의 엄서이 역시 친정팀을 상대하게 된다. 챔프전을 대비한 KB의 가벼운 몸풀기가 될지 하나원큐의 대반란이 일어날지 농구팬들의 궁금증이 커지는 이유다.
▲ 강이슬은 KB 이적 세 시즌 만에 처음으로 봄 농구에서 '친정' 하나원큐를 만난다. |
ⓒ 한국여자농구연맹 |
KB는 박지수가 공황장애 후유증과 손가락 부상으로 9경기 출전에 그쳤던 지난 시즌 통합우승팀에서 5위로 떨어지는 수모(?)를 경험했다. KB가 정규리그 5위를 기록한 것은 '총알낭자' 김영옥과 '변코비' 변연하(BNK 썸 수석코치)가 현역으로 활약했던 2010-2011 시즌 이후 12년 만이었다. 지난 시즌에도 KB는 강이슬을 비롯해 허예은, 김민정, 염윤아 등 좋은 멤버를 보유했지만 절대적인 에이스 박지수가 없는 팀의 한계는 분명했다.
하지만 지난 시즌 3할대 승률에 허덕이던 KB는 이번 시즌 프로 출범 후 팀 최고승률( .900)을 기록하면서 2위 우리은행 우리WON을 4경기 차이로 여유 있게 제치고 통산 5번째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물론 FA시장에서 수비가 좋은 김예진을 영입하면서 전력을 보강한 것도 있었지만 KB가 지난 시즌과 달라진 결정적인 이유는 딱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바로 자타공인 WKBL 최고의 선수 박지수의 복귀였다.
정규리그 29경기에 출전한 박지수는 20.28득점15.2리바운드5.4어시스트1.8블록슛을 기록하며 득점과 리바운드, 블록슛, 2점야투(60.6%), 공헌도(1283.90점) 등 무려 5개 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다. 박지수의 건강한 복귀로 동료 선수들까지 시너지가 올라간 KB는 강이슬이 지난 시즌 빼앗겼던 3점슛 여왕 자리를 되찾았고 포인트가드 허예은도 어시스트 2위(6.20)와 함께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두 자리 수 득점(11.17점)을 기록했다.
KB는 이번 시즌 하나원큐와의 맞대결에서 평균 11.83점의 점수차이를 기록하며 6전 전승을 기록했다. 1월19일 4라운드 맞대결에서는 3점 차이로 신승을 거뒀지만 2월4일 5라운드 홈경기에서는 88-61로 무려 27점 차의 대승을 거두기도 했다. 165cm의 허예은이 174cm의 신지현과 매치업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다소 부담스럽지만 196cm의 박지수가 184cm의 양인영을 상대하기 때문에 KB에게는 큰 핸디캡이 되지 않는다.
통합우승이 목표인 KB 입장에서는 하나원큐와의 플레이오프를 세 경기 만에 끝내고 반대편의 우리은행과 삼성생명 블루밍스의 경기를 분석하면서 챔프전에 대비하고 싶을 것이다. 실제로 KB가 평소 실력을 발휘한다면 하나원큐는 무난하게 이길 확률이 높다. 하지만 KB는 지난 2020-2021 시즌에도 챔프전에서 정규리그 4위 삼성생명에게 패하며 우승을 놓친 적이 있다. KB가 승률 33.3%의 하나원큐를 상대로 결코 방심할 수 없는 이유다.
▲ 두 시즌 연속 최하위였던 하나원큐는 김정은 영입 후 창단 첫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했다. |
ⓒ 한국여자농구연맹 |
강이슬이 에이스로 활약하던 시절 매 시즌 두 자리 승수를 올리며 자존심을 지키던 하나원큐는 강이슬이 KB로 떠난 이후 2021-2022 시즌 5승25패(승률 .167)에 이어 2022-2023 시즌에도 6승24패(승률 .200)를 기록했다. 플레이오프 진출은커녕 5위와도 한참 차이가 날 정도로 두 시즌 연속 독보적인 최하위에 머문 것이다. 그렇게 하나원큐와 봄 농구는 도저히 가까워질 수 없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하나원큐는 이번 시즌을 앞두고 FA시장에서 신세계 쿨캣 시절부터 10년 넘게 팀을 이끌었다가 우리은행으로 이적해 2개의 우승반지를 챙긴 김정은을 재영입했다. 김정은은 개막전부터 안면부상을 당하며 팬들을 걱정시켰지만 27경기에 출전해 10.41득점5.11리바운드2.44어시스트를 기록하며 건재를 과시했다. 무엇보다 젊은 선수가 많은 하나원큐에서 경험이 풍부한 김정은의 존재는 큰 힘이 됐다.
강이슬이 떠난 후 하나원큐의 새로운 에이스가 됐던 신지현도 12.14득점3.9리바운드3.9어시스트 3점슛 성공률 35.8%의 안정된 활약으로 하나원큐를 이끌었다. 정통센터가 부족한 하나원큐에서 가장 많은 출전시간을 기록하면서 12.76득점7.76리바운드2.69어시스트로 활약한 양인영의 투혼도 돋보였다. 여기에 초반 무릎부상으로 결장했던 지난 시즌 신인왕 박소희가 시즌 중반 복귀해 6.57득점을 기록하며 팀의 활력소 역할을 해줬다.
그렇게 여러 선수들이 하나로 뭉친 하나원큐는 이번 시즌 창단 첫 플레이오프 진출이라는 귀중한 성과를 달성했다. 하지만 플레이오프 첫 관문에서 만난 상대가 하필이면 박지수가 버티는 정규리그 우승팀 KB다. 사실 각 포지션마다 선수 개개인의 기량은 물론이고 이번 시즌 위기를 헤쳐 나갔던 노하우, 그리고 선수가용자원까지 하나원큐가 KB에게 앞서는 부분은 거의 없다. 대부분의 농구팬들이 플레이오프에서 KB의 압승을 예상하는 이유다.
하지만 KB가 통합우승이 목표인 반면에 하나원큐는 창단 첫 플레이오프 진출로 이미 이번 시즌의 목표를 어느 정도 달성했다. 다시 말해 플레이오프를 맞는 부담은 하나원큐보다 KB가 훨씬 클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스포츠에서는 승리에 대한 부담이 큰 강자가 마음을 비운 약자에게 덜미를 잡히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 하나원큐도 이 점을 잘 공략한다면 KB를 상대로 충분히 좋은 경기를 펼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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