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 폐차 보조금 준 경유차, 시리아인들이 싹쓸이하는 이유
지난달 26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의 인선모터스 자원순환센터. 하루에 100대의 폐차를 처리할 수 있는 국내 최대 규모의 폐차장이다. 넓은 주차장 한쪽에는 ‘판매 완료’ 딱지가 붙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십여 대가 있었다. 2010년식 베라크루즈부터 모하비까지, 한눈에 보기에도 폐차되기에는 멀쩡한 차들이었다.
“조기폐차 대상으로 들어온 차들인데 지금도 도로를 다니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는 차들이죠.” 폐차장 직원이 차를 가리키면서 설명했다. 그는 “이런 차들은 성능이 여전히 좋다 보니 들어오자마자 중동 쪽으로 바로 팔려간다”고 했다.
1.2조 보조금 주고 노후 경유차 138만 대 조기폐차
그 결과 가장 노후한 5등급 경유차는 2019년 148만 대에서 지난해 28만 대로 120만 대가량 급감했다. 이로 인한 초미세먼지 감축량은 수도권 초미세먼지 연간 배출량의 22.1%에 해당하는 1만 370t(톤)에 이른다.
5등급 차들이 도로에서 대부분 사라지자 환경부는 지난해부터 보조금 대상을 4등급으로 확대했다. 올해는 배출가스 저감장치(DPF) 부착 여부와 관계없이 모든 4등급 차량에 최대 800만 원(승용차 기준)의 보조금을 준다. 5등급은 2005년 12월 31일 이전 배출가스 기준이 적용된 유로3 이하, 4등급은 2006년부터 2009년 8월 31일 배출가스 기준이 적용된 유로4 경유차다.
“조기폐차 10대 중 3대 중동 등으로 수출”
정부가 보조금을 주고 퇴출한 노후 경유차들이 해외에서 여전히 대기오염물질을 내뿜으면서 운행되고 있는 것이다. 조기폐차 제도의 취지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임기상 미래차타기자동차시민연합 대표는 “5등급과 달리 4등급은 중고차 시장에서도 인기를 끌 만큼 쓸만한 차가 많다 보니 폐차업체들도 수출을 통해 이익을 많이 남기려고 한다”며 “4등급은 5등급보다 보조금을 더 많이 주지만 정책 효과는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환경부 관계자는 “2020년에 조기폐차 수출을 막으려고 시도했지만, 폐차장 업체들의 반발이 심해 결국 무산됐다”며 “보조금을 차주들에게만 지급하다 보니 폐차 이후의 처리까지 규제하는 건 추가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소형차에 집중된 조기폐차…“제도 효율성 높여야”
익명을 요구한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대부분의 국가는 배출가스 검사를 통해 선별적으로 노후차를 퇴출하지만 일률적으로 등급을 나눠 보조금을 주고 조기폐차를 시키는 건 한국이 사실상 유일하다”며 “조기폐차의 한계가 드러나고 있는 만큼 제도의 효율성을 높일 보완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천권필 기자 fee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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