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국종 "메스 아닌 해머로 갑판서 '깡깡이'…해군, 날 바꿨다"
국내 손꼽히는 외상 전문가인 이국종 국군대전병원장(54·명예 해군 대령)의 해군 사랑은 유명하다. 통상 군의관으로 복무하는 동료 의사들과 달리 그는 해군 갑판병(349기) 출신이라는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해군의 신병 700기 수료를 앞두고 5일 그와 전화 인터뷰를 했다. 이 원장은 “해군은 내가 살아가면서 유일하게 고향이고 집 같은 편안한 감정을 느끼는 곳”이라며 “해군 복무 경험이 삶에 대한 생각을 바꿨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처음엔 해군이 좋아서 지원한 건 아니었고, 끌려가듯이 현실 도피성으로 갔다”고 했다. 의대 본과 2학년이던 1992년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지며 ‘인생의 밑바닥’을 경험했을 때였다.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휴학계를 내고 해군에 병사로 입대했다.
그는 해군 2함대사령부 경기함의 갑판병으로 배치돼 갑판의 정비·보수 임무를 맡았다. 거기서 해머로 부식된 갑판 부분을 때리고 사포로 밀어 평평하게 만든 뒤 방염 페인트를 바르는 일을 했다. 병사들이 ‘깡깡이’라고 부르며 힘들어 하는 임무다.
함정의 3층으로 된 비좁은 침대도 난생 처음 경험했다. 이 원장은 “땅에 발 붙이고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결코 경험해 볼 수 없는 경험을 했다”며 “‘인생이 아무리 어려워도 헤쳐나가야겠다’는 자극을 받았다”고 했다.
해가 진 후 함정의 엄폐를 위해 등화관제(함정의 모든 불을 끔) 했을 때 갑판에 나가 쏟아질 듯한 은하수를 본 것도 그 때가 처음이었다. 이 원장은 “수평선도 가늠되지 않는 어둠 속에 별을 보면서 우주와 하나가 된 듯한 느낌을 처음 느꼈다”고 했다.
다만 이 원장은 부친이 6.25전쟁에 참전한 국가유공자 자녀여서 복무 기간이 6개월이었다. ‘짧고 강렬한 해군 복무’는 인생을 바라보는 태도를 바꿨고, 이후 의대에 복학해 외상 전문가의 길을 걷게 됐다. 이 원장은 2011년 청해부대의 ‘아덴만의 여명’ 작전 당시 석해균 삼호주얼리호 선장, 2017년 귀순 북한 병사 오청성씨를 수술해 살려낸 것 외에도 해군의 여러 작전·훈련에 군의관으로 참여했다.
2019년 11월 해군의 순항훈련전단에 합류해 문무대왕함을 탔을 땐 북태평양에서 거센 겨울 바다를 만났다. 8m 높이의 파도도 만났다. 이 원장은 “그런 혹독한 환경과 비좁은 공간에서 의무병, 간호장교 등까지 말 그대로 운명 공동체로 함께 먹고 자는 것”이라면서 “해군의 해외 파병 제도를 통해 가급적 많은 해군들이 지구 바다 끝까지 가보는 원양 임무를 해봤으면 한다”고 말했다. “스스로를 강하게 만들고, 인생의 여러 국면마다 자신을 지켜낼 힘을 얻는 계기가 될 것”이라면서다.
그는 해군의 경청하는 문화를 특히 배울 점으로 꼽았다. 이 원장은 “함정에선 기관, 사격, 조타 등 각 전문 분야에 따라 병사라도 지휘관에게 직언을 할 수 있고, 그래야 배가 침몰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다”며 “해군에서 오래 근무한 사람 중엔 나쁜 사람이 없다고들 하는 이유”라고 했다.
이 원장은 항공의무후송 훈련, 해군 군함 전상자구조치료함 능력 검증, 의무요원 응급처치 임상 실무교육 등에 참여하며 해군의 의무체계를 개선하는 데도 공을 세웠다. 2015년 7월 명예 해군 대위 계급장을 받은 뒤 진급을 거듭해 명예 해군 대령이 됐다.
그는 “한국 군도 양질의 의무 체계를 확보하기 위해 예비역 제도를 활용해야 한다”는 소신도 밝혔다. “미국은 해군 예비역 장교가 유수의 병원에서 교수로 일 하다가 전쟁이 터지면 해외 파병을 가고 참전을 한다”면서다. 이어 “우리도 국내 최고 대학 병원 교수들이 예비역 신분으로 연평도 같은 최전방 의무 부대, 함정 군의관 등으로 로테이션이 가능하다면 한정적인 국가 의료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근평·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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