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커피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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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茶)는 '끓인다'고 하면서 커피는 '탄다'고 말하는 우리 언어 습관은 커피믹스에서 비롯됐다.
커피 알갱이에 설탕과 프림이 섞인 분말을 뜨거운 물에 타서 마시는 일은 1970년대 이후 고도 성장기의 바쁜 한국인에게 중요한 일상이었다.
동서식품이 지금도 커피믹스 포장지에 커피+프림+설탕의 황금비율을 구현했다고 자랑하는 그 맛은 사실 커피의 쓴맛보다 설탕의 단맛에 더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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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茶)는 ‘끓인다’고 하면서 커피는 ‘탄다’고 말하는 우리 언어 습관은 커피믹스에서 비롯됐다. 커피 알갱이에 설탕과 프림이 섞인 분말을 뜨거운 물에 타서 마시는 일은 1970년대 이후 고도 성장기의 바쁜 한국인에게 중요한 일상이었다. 고된 일과 중 짧은 휴식이 허락될 때, 허겁지겁 끼니를 때운 뒤 잠깐의 여유를 누릴 때 종이컵에 담긴 이 커피가 함께했다.
1903년 미국에서 특허 출원한 인스턴트 커피는 2차 대전 당시 미군에 납품돼 전선을 따라 세계로 퍼졌다. 6·25전쟁 때 한국에도 상륙했는데, 동서식품이 1976년 개발한 커피믹스는 거기서 진일보한 발명품이다. 설탕과 프림을 따로 넣을 필요 없게 1회분을 한 봉지에 담는 아이디어를 상품화했다. 물만 부으면 되는 인스턴트 커피의 편리함에 한국식 ‘빨리빨리’ 정서를 가미했다고 할까.
2017년 ‘한국인이 가장 위대하게 생각하는 발명품’을 물은 특허청 설문조사에서 훈민정음, 거북선, 금속활자, 온돌에 이어 커피믹스가 당당히 5위에 올랐다. 편리함만으론 설명키 어려운 이런 평가의 배경에는 한국인 입맛을 사로잡은 ‘달달함’이 있다. 동서식품이 지금도 커피믹스 포장지에 커피+프림+설탕의 황금비율을 구현했다고 자랑하는 그 맛은 사실 커피의 쓴맛보다 설탕의 단맛에 더 가깝다. 실제로 카페인 함량은 아메리카노보다 크게 낮고 설탕이 분말 중량의 절반에 육박하니, 어쩌면 우리는 카페인보다 당분을 섭취하려 믹스커피를 입에 달고 살았던 건지도 모른다. 등산하다 지칠 때 초콜릿 같은 단 것을 먹듯이, 고단한 일상에서 에너지를 얻으려고.
배달의민족 창업자 김봉진씨가 커피믹스 사업에 나섰다. 요즘 힙한 동네에 흔한 에스프레소 바(bar)처럼 ‘믹스커피 바’를 서울 성수동에 차렸는데, 그가 개발한 커피믹스를 타서 마시는 곳이라고 한다. “커피는 원래 타 먹는 거야”를 모토로 아메리카노가 장악한 커피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편리함과 달달함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한국식 커피. 새 시대에 어울리는 새로운 맛을 과연 찾아냈을까.
태원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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