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 내가 아는 ‘건국전쟁’ 감독
미화만 했다는 평가도 있지만
재평가 기회 제공한 건 긍정적
보수 매체와 감독이 이 작품을
'이념전쟁' 재료로 쓰는 건 유감
2편에선 균형감각 잃지 말고
역사적 사실 더 온전히 전해
더 다양한 관객층에 어필하길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이 110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난 다큐의 내용을 떠나 이를 만든 김덕영 감독이 잘 되기를 바라는 사람이다. 그가 얼마나 힘겹게 지금의 자리에 있게 됐는지 알기 때문이다.
김 감독은 1990년대 초 신촌영화창작소라는 단체를 만들면서 영화 인생을 시작했다. 아직 무명이고, 독립영화에 돈을 대줄 사람도 없던 때라 사비를 털어 영화를 만들었다. 아르바이트도 하고, 집에서 돈도 끌어다 썼다. 성품이 좋은 데다 그의 영화 열정을 응원하려고 무보수 스태프를 자청한 사람들도 많았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영화가 ‘저물어가는 1989년’이다. 김 감독 필모그래피의 첫 장편 영화다. 학생운동이 시들해져가는 풍조에 대한 안타까움, 운동을 둘러싼 80년대와 90년대 학번 간 갈등, 그들이 그 간극을 극복해나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난 이 영화의 배우였다. 이전에 연극 무대에 선 적이 있었는데, 이를 안 김 감독이 날 캐스팅했다. 영화는 대학가와 한총련 행사 등에서 상영됐고, 신촌 거리에서 날 알아보는 사람도 있었으니 무명감독의 첫 작품치곤 나름 반향이 있었던 것 같다.
김 감독은 당시 학생운동을 독려하려고 영화를 만든 건 아니었다. 그보다는 영화라는 장르에 매료돼 작품을 만들었다. 그는 이 작품 전에도 영상물 제작에 심취해 있었다. 늘 제작비 마련에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첫 작품 이후에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작품을 만들어냈다. 어떤 작품은 부산국제영화제 본선에 진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영화 제작으론 생활이 안 되니 중간중간 책을 쓰며 곤궁함을 버텨냈다. 그렇게 고생고생하다 2020년에 나온 게 동유럽에 보내진 북한 전쟁고아들의 행적을 다룬 다큐 ‘김일성의 아이들’이다. 이 역시 북한 정권을 비판하려고 만든 이념물이라기보다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역사적 사실을 캐내 세상에 알리려는 다큐 저널리즘적 의도가 더 많이 깔린 작품으로 보였다.
다행히 ‘건국전쟁’으로 김 감독이 비로소 주목받고 있다. 과거 그가 생활이 어려울 때 펴낸 책 ‘뒤늦게 발동 걸린 인생들의 이야기’와 꼭 닮았다. ‘건국전쟁’은 4·3 사건이나 3·15 부정선거의 과오 등은 제대로 다루지 않고 이승만 전 대통령의 좋은 측면만 드러내 ‘반쪽 다큐’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극우파 학자 목소리가 너무 많이 들어가 편향돼 보인다는 평가도 있다. 그래도 난 이 다큐가 나름 의미가 있다고 본다. 농지개혁, 여성 투표권 부여, 의무교육 도입 등을 비롯한 이승만과 관련해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많이 담겼기 때문이다. 이승만을 싫어하든 좋아하든 당대 사회와 이승만을 이해하는 데 분명 도움이 된다. 그동안 우리 국민들이 이승만을 너무 몰랐고, 또 일부러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런 풍조를 깨뜨리려는 시도만큼은 평가받을 만하다.
난 이 작품이 계속 흥행하길 바라지만 보수 매체들이 ‘건국전쟁’을 이념전쟁의 불쏘시개로 활용하는 것에는 반대한다. ‘이승만 재평가’만 하면 될 것을 구태여 ‘좌파 때리기’를 할 필요가 있겠는가. 그건 순수 예술인으로서 김 감독의 정체성을 훼손하고, 사회도 분열시키는 일이다. 김 감독도 그런 분위기에 휩쓸린 탓인지 얼마 전엔 하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발언을 했다. 그는 “반일주의를 부추기는 영화 ‘파묘’에 좌파들이 몰리고 있다. ‘건국전쟁’에 위협을 느껴 ‘파묘’로 분풀이를 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100만 관객 돌파를 앞둔 시점의 조급함이 섞인 말이겠지만 예전의 그답지 않아 보였다. 무엇보다 본인의 다큐 저널리즘을 흠집 내고 예술을 이념물로 격하시키는 발언이다.
내년 3월에 ‘건국전쟁2’가 나온다고 한다. 여차하면 ‘건국전쟁5’까지 나올 수 있다고도 한다. 우리 국민들이 이승만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후속편이 나오는 건 좋은 일이다. 다만 이승만에 대해 보다 균형 잡힌 시각과 평가가 담겨야 더 큰 응원을 받을 것이다. 아울러 김 감독이든 보수 매체든 ‘예술’ 작품을 이념물로 몰아가지 않는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다양한 관객층이 들 것이다. 지금은 관객들 대부분이 노년층이지만 후속편이 균형 감각을 잃지 않는다면 젊은층에서도 관람 열풍이 불지 말란 법도 없다. 김 감독이 2편을 제작할 땐 순수 영화 예술인이 되기로 한 첫 마음으로 돌아가 보다 폭넓은 관객층에 어필하는 작품을 빚어내길 바란다.
손병호 논설위원 bhs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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