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 거기 너 있었는가, 그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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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 십자가의 길을 가셨던 사순절이건만 세상은 바야흐로 선거의 계절이다.
총선이 코앞에 다가오자 정당과 국민은 죄다 선택의 고민에 빠져 있다.
"너희가 그를 데려다가 너희 법대로 재판하라." 빌라도는 그를 정죄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를 선택하지도 않았다.
질문을 던지는 인간에게 던지는 주님의 질문이 따로 있고, 선택하는 인간을 향한 하늘의 선택이 따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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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 십자가의 길을 가셨던 사순절이건만 세상은 바야흐로 선거의 계절이다. 총선이 코앞에 다가오자 정당과 국민은 죄다 선택의 고민에 빠져 있다. 누구를 공천하고 누구에게 투표할지…. 결국은 선택의 문제다. 로마의 가이사 아구스도가 천하를 호령하던 시절, 한 젊은이가 라인강변으로 올라가 게르마니쿠스 군대에 들어가는 선택을 한다. 전쟁이 끝나자 그는 청운의 꿈을 안고 로마로 가는 선택을 한다. 얼마 후 그는 최고 신분으로 수직 상승하는데 기막힌 성공을 거둔다. 그건 운 좋게도 황실 가문과 혼인하게 된 덕분이었다. 곧장 유대 지역을 다스리는 5대 총독 자리까지 하사받는다. 제국의 주요 전략 지역구에 단수 공천을 받은 셈이다. 그 이름하여 본디오 빌라도!
하지만 주후 26년 부임한 그는 강경 통치로 일관하다 세 번에 걸쳐 유대 민중의 극심한 반발을 사는 실책을 연거푸 범한다. 자리만 얻었지 자리에 걸맞은 실력과 인품을 갖추지 못했던 탓일까? 다음 황제의 공천 전망에 그늘이 드리워지자 암울했던 빌라도가 마침 한 사내를 마주한다. 유대인들이 멋대로 조작한 정치 재판이 벌어진 탓이다. 노련한 정치꾼인 빌라도는 알고 있다. 이 사람은 죄가 없다는 것을. 이렇게만 명령한다. “너희가 그를 데려다가 너희 법대로 재판하라.” 빌라도는 그를 정죄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를 선택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는 (자기 비리를 황제에게 상소하겠다면서) 몹시도 압박하던 유대인들을 선택하고 만다. 정확히 말하면 자기 총독 자리를 선택한 것이다.
하지만 “빌라도가… 재판석에 앉아 있더라”(요한복음 19장 13절)에서 “자리에 앉다”의 헬라어 ‘카티조’는 자동사와 타동사로 함께 쓰이던 묘한 단어였다. 그날 빌라도가 재판하는 자리가 아니라 실상은 재판받는 자리에 앉아 있었다는 비밀이다. 이를 두고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는 “당신이 진리에 관해 묻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진리가 당신에 관해 묻고 있다”고 풀이한다. 그날 빌라도는 자신이 놓으려고 힘썼으나 결국 선택하지 않은 대상에게 네 가지 질문만 건넸다.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진리가 무엇이냐? 너는 어디로서냐?” 무언의 주님께서 이렇게 되물으시는 것만 같다. “그대야말로 평생 무엇을 했나요? 총독 자리에 앉아 보니 어떠신가요? 그대에게 진실이 있긴 한 건가요? 어쩌다 여기까지 왔는지 고백한 적은 있나요?”
그렇다. 질문을 던지는 인간에게 던지는 주님의 질문이 따로 있고, 선택하는 인간을 향한 하늘의 선택이 따로 있다. 그건 국가와 국민만 아니라 정당과 교회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존 스토트는 빌라도가 “공적인 직책 수행 면에서 교회와 국가의 정당한 공직자 노릇은 하지 못한 채 그저 흑암의 열정에 의하여 좌지우지되었을 뿐”이라고 평가한다. 판정을 내리는 자리가 결국 판정을 받는 자리라는 준엄한 진실을 알지 못한 채 그는 불과 5년 뒤에 그토록 붙들었던 자리에서 쫓겨나 영욕의 세월을 마감한다. 그렇다면 거기 그때 그의 선택은 오늘까지 무엇으로 남아 있을까? 먼저 유대의 한 극장 계단의 라틴어 석판에 희미하게 새겨진 ‘빌라도의 관직’. 다음으로 대영박물관에 소장된 (얄궂게도 정작 그의 후임 벨릭스의 얼굴이 그려진) ‘빌라도의 동전’. 마지막으로 사도신경을 통해 오늘도 주일마다 전 세계에 울려 퍼지는 ‘빌라도의 이름’이다.
“인간은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를 뿐 아니라 그 미래의 모습이란 게 실은 상당 부분 지금 자신들의 선택에 달려 있다는 것도 모르지. 그들은 오히려 미래에 기대어 지금 선택을 내리려 들지.”(C S 루이스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중에서)
송용원(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조직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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