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융합을 통한 창조적 발현과 미래 교육
자동차가 달리면 속도계의 바늘이 움직이면서 속도가 표시된다. 속도가 쉬지 않고 변하므로 바늘도 따라서 흔들린다. 어느 순간에 바늘이 100을 가리켰다면 시속 100㎞다. 그 속도를 계속 유지하면 1시간에 100㎞를 간다는 것이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일정한 속도를 유지한다는 전제가 속도가 계속 변하는 상황과 양립할 수 있는가? 이런 의문은 속도에 미분 개념이 들어있음을 이해해야 풀린다. 미분(微分, differentiation)은 미세(微細)한 차이(difference) 둘을 서로 나눈(分) 것이다. 속력은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이동한 거리를 그 시간으로 나눈 것이다. 100만분의 1시간 동안 1만분의 1㎞를 갔다면, 1만분의 1㎞를 100만분의 1시간으로 나누면 된다. 8/2가 4/1이라는 데서 알 수 있듯이 나누기는 분모를 1로 만들므로, 어떤 시간으로 나눠도 계산 후에 분모는 언제나 1시간이 된다. 100만분의 1시간을 달려도 1시간 동안 100㎞를 갔다는 계산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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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식과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
융합과 창발은 더욱 중요해져
자기주도적 탐구와 도전 위해
과도한 교육 부하는 줄여 줘야
」
이는 미분이 변화율이란 것이다. 경제성장률이 1년 동안 성장하면서 생긴 경제의 변화량이라면, 시속은 1시간 동안 이동하면서 생긴 위치의 변화량이다. 미분의 정의만으로 이를 알아차리기는 어렵다. 차원이 다른 수량이 함께 개입할 때 미분이 변화율이라는 사실이 훨씬 쉽게 파악된다. 이는 수학과 물리 교육이 상호 보완적임을 보여준다. 이런 상호 보완성은 수학과 물리학의 깊은 연관성 때문에 나타나는 특별하고 예외적인 게 아니다. 비유클리드 기하학과 일반상대론, 방사선물리학과 의학, 지구과학과 진화생물학 같은 인상적인 사례뿐 아니라 양자화학, 생화학, 양자계산, 양자정보, 양자암호 등에서 보듯이 서로 다른 학문 분야 사이의 상호 의존과 연관의 관계는 상당히 보편적이다.
이질적인 존재가 서로 의존과 연관의 체계를 이루는 상황은 자연 세계에서도 그렇다. 물 분자는 수소 원자 2개와 산소 원자 하나로 이뤄지는데, 그 속성은 수소나 산소 원자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 어디에서 왔는가? 요소 원자가 화학적으로 결합하면서 창조적으로 발현한 것이다. 창발(emergence)이다. 물질세계뿐 아니라 문명에서도 그렇다. 그리스의 과학과 알렉산드리아의 정밀과학이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을 통해 널리 알려지면서, 서구 사회는 르네상스를 거쳐 과학혁명으로 이어지는 도약의 시기를 경험했다. 그리스와 알렉산드리아가 전해준 지적 충격을 받아들이고 확산시키면서 창조적 발현의 과정을 거쳐 서구 문명은 중세에서 근대로 전진할 수 있었다.
자연 세계나 문명의 역사는 이질적인 요소가 융합하면서 질적으로 다른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는 것을 보여준다. 과학혁명과 같은 거대한 진보가 아니더라도, 서로 다른 요소가 결합하면서 진보를 이뤄낸 사례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았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 그런 진보의 누적적 결과 속에서 살고 있다. 주시해야 할 점은 창조적 발현의 진보가 앞으로는 더욱 크고 빈번하게 일어난다는 것이다. 인류는 융합의 요소가 될 지적 자산을 그 어느 때보다도 풍부하게 쌓아 놓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서로 다른 지적 요소를 융합하기 위해 알렉산드리아에서 오는 문헌을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정보화 시대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선 융합을 통한 창조적 발현이 일상화되면서 진보가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
이 지점에서 교육의 문제가 발생한다. 지식 체계가 변하고 내용이 풍부해지는 변화에 대응하려면 이를 교육내용에 포함해야 한다. 단순히 기존의 교육내용에 첨가한다면, OECD 보고서가 지적하는 것처럼 교육 과부하(overload)의 문제가 발생한다. 이와 관련해 속도계를 제작한다고 생각해보자. 이 글의 도입부를 읽으면서 1만분의 1㎞인 10㎝는 너무 크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미분의 정의로 보면 아주 큰 수지만, 아주 짧은 거리를 재려면 측정 오차가 지나치게 커지므로 현실적으로는 적당한 길이를 써야 한다. 그러면 그게 미분인가? 엄밀하게는 아니다. 미분이 나누기여서, 분모와 분자가 같이 변하면 계산 결과가 같아진다는 점을 활용했을 뿐이다. 속도계를 이해하려면 미분이 필요하지만, 처음 만드는 단계에서는 미분을 몰라도 된다는 것이다. 수학과 공학을 융합시키기 위해선 복잡한 공식을 외우고 어려운 문제를 많이 풀어보는 것보다는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는 일이 훨씬 중요하다.
속도계가 비교적 간단한 문제여서 그런 게 아니다. 양자암호를 하기 위해 물리학 과목을 모두 들어야 하는 게 아니다. 양자 측정에 관한 기본적인 구조만 명확하게 파악하면 된다. 물론 정말 열심히 공부하는 단계를 거쳐야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필요한 건 그리 많지 않다. 융합의 창발을 기대한다면, 기본에 충실하되 학습량을 줄여 교육 과부하의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자기 주도적으로 탐구하고 집중할 수 있는 여유를 확보해야 한다. 너무 많은 것을 배우는 것보다는 미지의 세계를 탐구하고 개척하는 열정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이 중요하다.
양형진 고려대 명예교수·국가교육위원회 미래과학인재양성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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