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옛 동독 지역이 출산율 회복한 이유는?

2024. 3. 8.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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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호 광주과학기술원 교수·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장

통계청이 발표한 ‘2023년 합계출산율’ 0.72명이 충격을 주고 있다. 특히 지난해 4분기 출산율은 0.65명으로 0.7명 선이 처음 무너졌고, 지난해 출생아 수는 23만명으로 급감했다. 2025년 출산율 전망치를 0.65명으로 발표하면서 초저출산 시대가 상수가 되고 있다.

출산은 종합예술처럼 다양한 요인에 영향을 받는다. 출산율은 그 사회의 문화와 가치관 및 경제 상황 등의 변화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기원전 로마에서도 여성이 노예의 도움을 받아 독신 생활을 즐기고 출산하지 않던 풍조가 있었다. 이에 아우구스투스 초대 황제는 출산하지 않는 50세 이상 여성의 상속권을 인정하지 않았고, 셋째 아이를 낳을 때까지 ‘독신세’를 부과했다.

「 젊은 세대에 결혼·출산은 사치
출산율 단기 반등할 묘수 없어
가족 행복 정책이 저출산 해법

[일러스트=김회룡]

동독의 출산율은 독일이 통일된 1990년에 1.52명에서 1991년에는 0.98로 급락하더니 이후 지속적으로 떨어져 1994년에는 통일 당시의 절반 수준인 0.77명까지 감소했다. 그러나 이후 꾸준히 상승해 지금은 동독 지역이 옛 서독 지역과 비슷한 1.5명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동독 주민은 통일 충격에 적응하기 위해 미래를 위한 투자인 출산을 미루거나 포기했고, 체제 전환 이후 불확실성이 사라지자 이전의 출산 행태로 돌아왔다.

지금 한국사회의 젊은 세대는 개인 행복을 중시하도록 가치관이 변하고 있다. 경제적 어려움마저 겹치면서 결혼을 늦추거나 포기하는 청년이 늘고 있다. 결혼해도 일과 가정의 양립이 어렵고, 자녀가 행복한 사회 환경에서 성장하는 것을 기대할 수 없다고 생각하다 보니 출산을 더 기피한다.

취업과 승진을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하는 경쟁 사회에서 결혼과 출산은 많은 젊은이에게 ‘꿈 같은 사치품’으로 여겨진다. 희망하는 일자리를 구하는 데 필요한 학력과 ‘스펙’을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하다 보니 취업 연령이 늦어져 결혼해도 만혼으로 인한 난임 문제에 직면하는 경우도 많다.

그동안 노동시장과 주택시장, 교육 환경이 악화한 사실을 고려하면 최근의 초저출산 현상이 놀라운 일은 아니다. 안타깝지만 출산율 하락을 단기간에 반등시킬 묘수는 사실상 없다. 지방자치단체의 출산 지원금 같은 현금 살포 정책의 효과도 제한적이다. 끝없는 출산율 하락을 반등시키려면 출산 친화적 사회를 구축하고 젊은 세대의 출산에 대한 인식이 변하도록 저출산 대책의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출산에 직접 영향을 주려는 단기적 정책에서 탈피해 출산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장기적 관점의 정책에 집중해야 한다. 저출산 정책을 가족정책이나 가족행복정책으로 전환할 것을 제안한다. 일본을 제외한 대부분의 유럽 선진국에서 저출산정책 대신 가족정책을 통해 인구정책 목표를 추구한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독일의 가족정책을 보면 4대 목표는 가족의 경제적 안정과 사회 참여, 일·가정 양립, 자녀의 안녕과 지원, 자녀 소망을 실현할 수 있는 사회환경 조성이다. 가족 행복에 중요한 경제적 안정, 주거 안정, 차별 해소 및 자녀 행복 증진을 통해 출산을 간접적으로 유인한다.

최근 한국사회의 미래를 걱정하는 일부 기업의 출산장려금 지원 소식에 많은 국민이 환호하지만, 일·가정 양립을 실현하기 위한 기업의 적극적 참여가 출산장려금보다 출산율 회복에 더 중요하다. 육아 휴직 사용을 보편화하고, 다양한 형태의 근로를 확산하며, 장시간 야근 관행을 개선하는 등 기업의 협조가 요청된다.

정부도 출산의 기회비용이 낮아지도록 출산 전후의 휴가 사각지대를 축소하고, 공공보육시설을 확충하며, 육아 휴직 급여 대상과 급여를 인상해야 한다. 사회 이동성 제고를 위해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임금 격차를 축소하고, 주거 문제를 개선하며, 대학 구조조정과 부실한 전공 교육 개선을 통해 취업 연령을 낮춰야 한다.

초저출산을 극복하려면 사회 환경을 출산 친화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 출산과 밀접하게 연관된 정부 부처, 기업, 언론 및 시민사회단체 등의 참여와 협력이 필요하다. 총리 또는 기획재정부 장관이 책임감을 갖고 출산 정책을 총괄·조정하면서 현실성 있는 정책을 발굴하고 실행할 수 있도록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조직을 대폭 개편할 것을 제안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상호 광주과학기술원 교수·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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