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석천의 컷 cut] 의도를 그 무덤에서 꺼내라
‘파묘’는 기존의 영화문법에서 비켜서 있다. 공포물인데 사람을 놀래키지 않는다. 무속인과 풍수사가 등장하는데 그들에게서 왠지 어벤저스의 냄새가 난다. 영화 전반과 후반의 분위기도 확연히 다르다. 전반이 ‘전설의 고향’이라면 후반은 ‘명량’을 연상시킨다.
이 이상한 영화가 흥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 추정은 이러하다. 요즘의 관객들은 모호한 미스터리를 좋아하지 않는다. 불분명한 선악 구도가 이어지다 묘한 여운을 남기고 끝나는 건 더더욱 질색이다. 선과 악을 명확하게 나눈 뒤 선명한 결말을 보여주기를 바란다. (※다량의 스포 있음)
그 점에서 주목되는 것이 영화의 터닝포인트(전환점)다. 해리포터가 마법사로 거듭나고 아서 플렉이 조커로 흑화하는 계기가 바로 터닝포인트다. 소설이든, 영화든, 드라마든 전환점의 힘이 8할이다. ‘파격’의 전환점은 주인공들이 개인적인 이해관계를 넘어 공익을 향해 나아가는 장면이다. 풍수사(최민식)는 일제의 거대한 말뚝을 뽑아내자며 동료들을 이렇게 설득한다.
“땅이야. 땅. 우리 손주들이 밟고 살아가야 할 땅이라고.”
이 대사를 처음 접했을 때 너무 노골적인 표현 아닌가, 하는 의문이 스쳤다. 하지만 결심은 유치할수록 빛난다고 하던가. 미국 잡지 ‘뉴요커’를 모델로 한 영화 ‘프렌치 디스패치’에서 편집장이 기자들에게 강조하는 말이 있다. “그냥 의도적으로 쓴 것처럼 써봐.” 누가 글을 읽어도 그 취지를 알 수 있게 쓰라는 것이다. 의도가 드러나게 쓰라는 것이다.
세상이 빠른 속도로 변하고 복잡다단해지기 때문일까. 되새기고 곱씹을 여지를 남기는 게 더는 미덕이 아니다. ‘의도를 무덤 속에 감춰두지 말고 꺼내 보여라.’ 이것이 ‘파묘’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 아닐까. 그렇다면 콘텐트를 만드는 사람들은 어떤 고민을 하고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권석천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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