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억의 마켓 나우] 지지부진한 러시아 동결 자산 처분
‘우크라이나의 장기적인 재건을 지원하기 위해 동결된 러시아 자산을 처분하자.’
재닛 옐런(사진) 미국 재무장관이 지난달 27일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회의에서 내놓은 방안이다. 서방선진 7개국(G7)은 이 회의 도중에 별도로 만나 이 문제를 논의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2년 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격 침략하자 미국과 유럽 등 서방 국가들은 2600억 유로(약 376조원)에 상당하는 러시아 자산을 증권과 현금 등의 형태로 동결했다. 이 가운데 70% 정도인 1900억 유로가 벨기에의 유로클리어(Euroclear)에 잠겨 있다. 유로클리어는 국채와 증권 등의 국경 간 거래에 결제 서비스를 제공하는 세계 최대의 국제증권예탁결제기관이다. 러시아 국채와 외환보유액으로 쌓아둔 유로 표시자산 등이 여기에 묶여 있다.
이 자산의 처분을 두고 법적 그리고 국제정치·경제적 논란이 계속돼왔다. 국제법의 국가면책 원칙에 따르면 한 국가나 국가의 대표를 다른 나라의 법원에 기소할 수 없다. 이 원칙은 아주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국가로 하여금 배상금을 지불하지 않게 만들었다. 그렇기에 러시아 동결자산을 처분해 우크라이나 재건 비용으로 쓰는 것은 국가면책의 원칙을 위반한다는 게 중론이다. 그러나 동결자산 처분은 불법 침략에 대한 정당한 맞대응이라는 소수 의견도 있다.
유럽연합(EU) 27개국은 동결자산 처분을 두고 1년 가까이 해법을 모색해왔다. 지난해 유로클리어는 동결된 러시아 자산으로 44억 유로를 벌었다. 유럽중앙은행(ECB)이 기준금리를 계속 올려 이자도 늘었고 일부를 재투자했다. 독일과 ECB는 이런 수익에 ‘횡재세’ 부과 정도는 찬성한다. 반면에 몰수된 자산 전체를 처분해 우크라이나 재건에 지원하는 안에 대해서는 ECB의 반대가 크다. 달러에 이어 두 번째 기축통화인 유로를 각국 중앙은행이 보유 중인데, 유로화 보유가 리스크가 된다면 그 비중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중장기적으로 유로화의 국제적 위상 하락을 초래할 수도 있다.
또 하나는 자산 처분이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는 것. 미국은 해외에 많은 자산을 보유 중이다. 몰수 자산 처분이라는 선례가 생긴다면 러시아나 중국도 비슷한 상황에서 언제든지 이 무기를 휘두를 수 있다.
EU의 행정부 역할을 하는 집행위원회는 이 문제를 지난해까지 매듭짓기 위해 G7 국가 간에 합의를 유도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자산 처분을 강력하게 밀어붙이는 미국과 달리 유럽은 매우 신중하다. 우크라이나가 신속한 지원을 호소하지만, 서방의 원조는 위 논란에서 보듯이 매우 더디다.
안병억 대구대 교수(국제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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