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 “가장 잘한 것은 아내와 결혼”…조용한 내조의 상징

김기정, 이창훈, 전민구, 김서원 2024. 3. 8.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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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명순 여사가 7일 오후 95세로 별세했다. 사진은 1980년대 손 여사의 모습. [중앙포토]

“인생에서 가장 잘한 두 가지는 군사독재를 물리치고 민주화를 이룩한 것과 60년 전 아내와 결혼한 것이다.”

2011년 3월, 고(故) 김영삼(YS) 전 대통령이 한 말이다. 그는 손명순 여사와의 결혼 60주년 회혼식에서 “맹순이(명순이)가 예쁘고 좋아서 60년을 살았다”며 부인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김 전 대통령은 고된 하루를 마치고 침대에 누울 때면 머리맡의 손 여사에게 종종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맹순이 잘 자래이.”

손 여사가 2015년 YS 서거 9년 만인 7일 오후 95세를 일기로 눈을 감았다. 손 여사는 지난해 12월부터 지병으로 인해 서울대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차남인 김현철 김영삼대통령기념재단 이사장은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정말 편안히 영면하셨다”고 전했다.

1929년생인 손 여사는 경남 김해에서 9남매 중 장녀로 태어나 마산여고와 이화여대 약대를 졸업했다. YS와는 이대 3학년 재학 중 맞선자리에서 만났다. 당시 장택상 국회 부의장의 비서관이었던 YS 역시 서울대 철학과 3학년이었다. 조부모의 결혼 종용을 “아직 결혼할 때가 아니다”라고 버티던 YS를 집안 어른들이 조부가 위독하다며 거짓으로 불러 내렸다.

하루 날을 잡아 경남 출신 이대생 3명과 차례로 선을 봤는데, 마지막에 나타난 사람이 손 여사였다. 2011년 JTBC와의 인터뷰에서 YS는 “문학 얘기를 하는 걸 보면서 ‘참 멋있는 여자’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맞선 뒤 1년이 채 지나지 않은 1951년 3월 비밀리에 결혼했다. 재학생의 결혼을 금지하는 당시 이대 교칙 때문이다. 손 여사는 주변 친구들이 비밀을 지켜준 덕에 재학 중 첫 아이를 낳고도 무사히 졸업했다.

YS 단식 땐 외신기자에게 전화 돌려

1951년 9월 29일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서울대 문리대를 졸업할 당시 이화여대에 재학 중인 손명순 여사와 기념촬영을 했다. [중앙포토]

학생 때 결혼하는 바람에 변변한 신혼여행도 다녀오지 못했다. 1993년 청와대에 입성한 YS는 5년간 거의 매일밤 손 여사와 청와대 경내를 산책하며 “이게 우리 진짜 신혼”이라고 달래곤 했다.

손 여사는 약사 면허증도 땄지만, 약사 일은 한 적이 없다. 결혼 뒤 몇해가 흐른 어느 날 YS가 “약국을 차리는 게 어때”라고 하자 손 여사는 “당신 내조도 바쁜데 내가 어떻게 해요”라고 타박했다. 결혼 후 손 여사는 거의 매일 100여명의 식사를 준비했다.

김기수 전 YS 수행실장은 “어렵게 살던 야당 정치인들이 매일 아침 상도동에 가서 시래기 국밥을 먹었다”며 “손 여사는 ‘배고픈 동지들 와서 양껏 드시고 가라’며 주방을 다 오픈해 놨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명절 땐 시아버지가 보낸 멸치를 포대째로 동지들에게 배달했다”며 “그래서 ‘자녀들이 거제 멸치를 먹고 자라 뼈대가 튼튼해졌다’는 농담을 하곤 한다”고 떠올렸다.

중앙 정치 무대의 스타였던 남편은 늘 바빴다. 그런 YS가 9선을 하는 동안 지역구 관리와 가족들 건사는 손 여사 몫이었다. 손 여사는 청와대에서 지낸 5년 동안 대외 활동은 거의 안 했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손 여사는 단 한 번도 문제를 일으킨 적 없다”며 “동양식 아내의 덕(부덕·婦德)을 실현하신 분”이라고 평가했다. YS도 “화를 잘 내는 내게 언제나 져줬고 한 번도 자신을 내세운 적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중요한 정치적 고비엔 늘 손 여사가 있었다. 1983년 YS가 전두환 정권에 저항하며 23일간 단식 투쟁할 때 외신 기자에게 일일이 전화해 소식을 전한 이가 손 여사였다.

1990년 3당 합당 당시 “군부독재 세력과 손잡을 수 없다”며 합류를 거부하던 최형우 전 의원을 설득한 이도 손 여사였다. 그는 ‘좌형우’로 불린 최 전 의원을 직접 찾아가 “당신은 YS가 왜 3당 합당을 하는지 그 뜻을 모르느냐. 그러고도 ‘좌형우’냐”며 설득했다. YS가 대통령에 당선된 뒤 장관에 임명된 최 전 의원은 YS에게 “저, 형수님 아니었으면 대통령님 안 따라왔심니더”라고 털어놓았다고 한다.

1992년 대선 땐 손 여사도 많은 사람을 만났다. 당시 여당이던 YS 측에는 정보기관이 보내준 ‘선거꾼 블랙리스트’가 있었다고 한다. 어느 날 손 여사가 그중 한 명과 면담하는 것이 비서진 눈에 띄었다. “만나지 말라”는 경고에도 손 여사는 그 사람을 두 번이나 더 접촉했다. 펄쩍 뛰던 비서진은 손 여사가 “나쁜 사람도, 좋은 사람도, 귀한 사람도, 천한 사람도 모두 같은 한 표다”라고 한 뒤에 잠잠해졌다고 한다.

YS는 대통령 퇴임 후 손 여사에게 정성을 쏟았다. 청와대 정무비서관을 지낸 이성헌 서울 서대문구청장은 “퇴임 뒤 김 전 대통령이 기분이 좋을 땐 ‘맹순씨’, 조금 불편할 땐 ‘맹순이’라고 부르곤 했다”며 “다정다감하게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했다”고 전했다. 2015년 11월 YS 서거 당시 손 여사는 장례식장에 휠체어를 타고 와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꼈다.

윤 대통령 “하늘에서도 행복하시길” 애도

장례는 5일간 가족장으로 치러진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조문은 8일 오전 9시부터 받는다. 발인은 11일 오전 8시다. 손 여사는 국립서울현충원 YS 묘소에 합장될 예정이라고 한다. 유족으로는 아들 김현철 이사장 등 2남 3녀가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보내드리는 마음은 안타깝지만, 하늘에서 김영삼 대통령님을 만나 행복하게 계시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이어 “하늘에서도 나라와 국민을 위한 기도를 계속해 주시리라 믿으며 여사님의 영면을 기원한다”고 덧붙였다. 여야도 대변인을 통해 일제히 조의를 표했다.

김기정·이창훈·전민구·김서원 기자 kim.ki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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